지난 4월18일, 잠실구장에서 열렸던 KIA 타이거즈와 LG 트윈스전에서 KIA 선두타자 김원섭이 1회 초에 홈런을 날렸다. 볼카운트 1-2에서 4구째를 통타, 오른쪽 담장을 넘겼다. 올시즌 들어 처음으로 나온 1회초 선두타자 홈런이었다.
잠실구장 경기운영위원실에서 이 장면을 지켜본 하일성 한국야구위원회(KBO) 사무총장은 “1회 초에 홈런을 친 팀치고 이기는 것을 별로 못봤다”고 말했다. 물론 농담삼아 한 얘기지만, 공교롭게도 그 경기는 LG가 6-2로 뒤집기승을 거두었다.
1회 초 선두타자 홈런. 과연 승리로 연결된 사례가 적은가.
KBO 홍보팀 김유진 과장의 도움을 받아 그 사례를 일일이 뒤져서 승패를 확인하는 작업을 했다. 1982년 프로야구 출범 이래 올해 단 한차례 일어났던 김원섭의 경우까지 1회 초 선두타자 홈런은 모두 164회가 기록됐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85승 6무 73패로 이긴 게임이 약간 더 많았다. 그렇다면, 어째서 1회 초에 선두타자가 홈런을 치면 지는 게임이 많다는 인식을 갖게 된 것일까. 단순한 착각일 수도 있겠지만 2000년대 이후에는 실제로 63번 가운데 30승 33패로 승수보다는 패수가 더 많았다. 특히 2002년과 2004년에는 가장 많은 15차례씩 발생했는데 6승9패와 6승1무8패로 승률이 낮았다.
를 쓴 레너드 코페트는 ‘통계는 야구의 핏줄’이라고 정의를 내렸다. 그는 통계라는 것은 ‘이미 벌어진 것들을 숫자로 셈해놓은 것으로 그 자체에 한계를 안고 있다’고 적시했다. 즉, 아무리 통계가 정확하더라도 그 통계를 활용하려면 주변 요소를 무시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야구는 인간이 하는 운동이고, 인간의 행동은 숫자로 단순화하기가 어려우므로 성취도는 주변의 환경에 의해 좌우된다’고 레너드 코페트는 정리했다.
따라서 통계의 한계를 전제로 깔고 본다면, ‘1회 초 선두타자 홈런=패전의 신호’라는 짧은 생각은 그저 생각일 뿐이고, 실제로는 인식의 오류인 셈이다. 그렇다고 1회 초 선두타자 홈런이 반드시 승리로 연결되지 않는다는 점은 통계에도 나와 있다.
야구경기에서 ‘선취점’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선취점을 뽑게되면 선발투수의 어깨를 가볍게 해주고, 상대편에는 그만큼 부담이 걸리는 것은 당연하다. 자기 팀 선수들에게는 자신감을 불어넣고 ‘기 살리기’ 효과를 낳을 수 있지만, 반대로 상대편에는 속된 말로 ‘야코를 죽이는’작용을 할 수도 있다. 그런데도 생각보다 패전으로 연결된 사례가 많다는 것은, 다른 측면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겠다.
우선 상대 선발투수가 등판하자마자 얼떨결에 큰 것 한 방을 된통 얻어맞게되면 그 후 타자들을 상대할 때 경각심을 가지고 신중한 투구를 하게될 것이다. 호되게 당한 다음 정신을 바짝 차리게 될 터이다.
반면 같은 팀 타자들은 은연중에 상대 투수를 얕잡아보고 자신도 모르게 스윙폭이 커질 수도 있겠다. 너도나도 장타를 의식, 심리적인 측면에서 오히려 역효과를 부를 수 있다는 얘기이다. 그런 점은 1회 초 선두타자 홈런의 가장 큰 부정적인 인식일 것이다. 패수가 승수와 거의 비등하다는 점은 이 통계가 주는 ‘역설(逆說)’이다.
각설하고, 개인통산 1회 초 선두타자 홈런을 가장 많이 기록한 타자는 누구일까.
KIA 이종범이 ‘번개 홈런’에서는 단연 으뜸이다. 이종범은 모두 18차례나 1회 초 선두타자 홈런을 기록했다. 게다가 이종범은 1회 말 선두타자 홈런도 24차례나 기록했고, 1회 초, 말을 합치면 42차례나 된다. 이는 다른 타자의 추종을 불허하는 수치이다. 이종범의 벼락치기 타격은 상대의 투수의 혼을 빼놓고 넋을 흔드는 신묘한 타법이다. (참고로 1회 초 선두타자 홈런 2위는 LG 코치인 유지현의 8개, 1회 말 선두타자 홈런은 한화 이영우의 10개이다)
이종범의 신들린 타격은 이에 그치지 않았다. ‘눈 깜짝할 사이’에 이뤄지는 1회 초, 말 ‘초구 홈런’도 가장 많은 5차례를 기록했다. 1회 초 초구 홈런은 1984년 5월2일 전주구장에서 당시 MBC 청룡의 이해창이 해태의 재일교포 투수 주동식을 상대로 1호를 기록한 이후 모두 22호가 나왔다. 이종범이야말로 1회 초, 말 선두타자 홈런의 귀재이자 독보적인 존재라고 말 할 수 있다.
1회 초 초구 홈런을 기록한 팀의 승률은 4할5푼5리(10승 12패)로 약간 낮았다. 공교롭게도 이종범이 기록한 3경기는 모조리 패전으로 연결 됐다.
1회 말 선두타자 초구 홈런은 모두 36차례 기록됐고 이순철(MBC 해설위원)이 3번, 이종범이 2번 기록했다. 승률은 6할1푼1리(22승 1무 13패)로 높았다.
어어, 하는 사이에 나오는 1회 초 선두타자 홈런, 승패야 어찌됐던 관전자로서는 즐거운 야구장의 풍경이다.
홍윤표 OSEN 대표기자
4월18일 KIA 타이거즈와 LG 트윈스전이 벌어졌던 잠실 구장에서 KIA 톱타자 김원섭이 1회 초 선두타자 홈런을 기록하고 동료들의 축하를 받으며 덕아웃으로 귀환하고 있다./윤민호 기자ymh@osen.co.kr
이종범은 1회 초, 말 선두타자 홈런의 귀재이자 독보적인 존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