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이 마지막 가는 길에 경호원에게 건넸다는 “담배 있는가?”라는 말이 가슴을 아리게합니다. 그 말 한마디가 이토록 마음에 여울질 줄은 몰랐습니다. 문득 고 신동엽 시인의 이라는 시가 떠오릅니다.
들길에 떠가는 담배 연기처럼
내 그리움은 흩어져 갔네.
사랑하고 싶은 사람들은
많이 있었지만
멀리 놓고
나는 바라보기만
했었네.
들길에 떠가는
담배 연기처럼
내 그리움은 흩어져 갔네.
위해주고 싶은 가족들은
많이 있었지만
어쩐 일인지?
멀리 놓고 생각만하다
말았네.
아, 못 다한
이 안창에의 속 상한
드레박질이여
언제이던가
이 들길 지나갈 길손이여
그대의 소맷 속
향기로운 바람 드나들거든
아퍼 못 다한
어느 사내의 숨결이라고
가벼운 눈인사나, 보내다오.
-고 신동엽 시인의 시 전문 인용.
노무현 전 대통령, 이제 그는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그의 친근한 미소와 소탈한 모습도 더 이상 볼 수 없게 됐습니다. 그가 추구했던 이상향은 그 정신만 살아 남아 우리들의 가슴을 마냥 적시겠지요.
치열하게 부대끼면서 열기를 피어올렸던 그의 이승에서의 삶은 ‘들길에 떠가는 담배 연기처럼’ 허공으로 흩어졌습니다. 저 먼 나라로 가시기 전, “담배 있는가?”라는 마지막 말로 우리네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었던 그였습니다. 이 세상 속에‘담배 한 대’ 가 던진 잔잔한 울림은 우리를 절로 눈물짓게 만들었습니다.
소박한 고향살이 속에서 가끔 담배 한 개비를 입에 물었을 그의 모습이 피어납니다. 2008년 3월 고향 마을 구멍가게에 앉아 담배를 입에 문 그의 모습은 우리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웃들의 그것과 전혀 다르지 않았습니다. ‘담배 한 개비’속에 깃든 그의 애환, 고통, 번뇌, 회한, 타는 목마름이 눈에 선연하게 떠오릅니다.
추모기간 중 어느 방송이 방영했던, 이웃들과 농사일을 함께하고, 일을 거든 후 그가 푸념처럼 슬몃 던진 말이 새삼 가슴에 와닿습니다. “일하고 딱 한 대 피는 재민데, 카메라가 따라오니 피울 수가 있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로 지난 일주일 동안 온 나라가 슬픔에 잠겼습니다. 지지여부를 떠나 험난한 정치 역경을 딛고 최고 통치자의 자리에 올랐던 노 전 대통령의 돌연한 서거는 우리의 가슴을 한 없이 아리게 했고, 한없는 비감에 젖게했습니다.
굳이 노무현 전 대통령과 야구의 인연도 떠올려 봅니다. 2003년 7월 17일 대전구장에서 열렸던 프로야구 올스타전 때 노 전대통령은 시구를 했습니다. 그리고 귀빈석에 앉아 김승연 한화 구단주와 함께 경기를 관전했습니다. 노 전대통령은 당시 김승연 회장이 건네준 야구공 3개에 ‘파이팅 한화 이글스, 노무현’이라고 적어주었습니다.
역대 대통령 가운데 전두환, 김영삼 씨 등은 직접 시구를 했던 이들입니다. 전두환 씨는 1982년 3월 27일 동대문구장에서 열렸던 프로야구 출범 개막식에서 시구를 했고, 김영삼 씨는 1994년과 1995년 한국시리즈 1차전, 1995년 4월15일 잠실 구장 개막전 등 모두 3차례나 시구를 했습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대통령 시구자는 이승만입니다.
해방 이후 이 땅에서 최초로 미국 메이저리그 내셔널리그의 명문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구단이 방한, 1958년 10월21일 서울운동장에서 한국대표팀인 전서울군과 친선경기를 가졌습니다. 카디널스 구단은 한국일보사의 초청으로 해방 후 처음으로 한국 땅을 밟은 메이저리그 팀이었습니다.
카디널스와 전서울군의 경기에 앞서 이승만 대통령이 스탠드에서 시구하는 진풍경이 벌어졌습니다. 왜 이승만 대통령이 그라운드가 아닌 스탠드에서 백스톱의 철망 일부를 네모로 오려내고 시구했는지는 정확히 알 수가 없습니다.
아마도 당시 자유당 정권이 온갖 부정부패로 정권말기적 증상을 보이고 있었던 점을 감안한다면 이승만 대통령의 경호 차원에서 괴이쩍은 시구 방법을 고안해 낸 것이 아닌가 유추해볼 수 있겠습니다.
정권 붕괴 2년 전이라는 시점에서 이승만 대통령이 보여준 이같은 모습은 비록 야구경기를 통해서이긴 하지만 한 편의 ‘희화(戱畵)’같은 역사를 되돌아보게 합니다.
김영삼, 노무현 전 대통령은 출신 고교가 야구 명문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터여서 자연스레 야구와 접할 기회도 있었을 것입니다.
전두환 씨는 쿠데타로 집권한 후 통치의 방편으로 야구와 축구, 씨름 등을 프로화 시킨 것은 잘 알려져 있는 사실입니다. KBO 총재 자리를 정권의 전유물처럼 여긴 것도 그 때부터였습니다. 그같은 못된 관행은 그대로 굳어져서 역대 대통령들이 한결같이 KBO 총재 자리에 자신들의 사람을 심었습니다.
야구판으로 눈을 돌리면, 아직도 정권에 예속돼 있는 프로야구의 실정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총재 선출조차 자율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정권의 입김과 입맛에 따라 좌우되고 있는 게 엄연한 현실입니다.
야구판이 선수를 포함한 관계자들의 참된 일터로, 갈등과 반목이 아닌 모두에게 즐거움을 주고 미소를 번지게 하는 흥겨운 놀이 한마당으로 자리잡는다면 오죽 좋겠습니까마는, 아직도 요원한 얘기입니다.
두 차례의 WBC(월드베이스볼클래식)에서 드러났듯 한국야구의 실력은 세계적인 수준에 올라 있는데 이를 뒷받침할 행정은 아직도 후진성을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총재 선임권은 야구계에 돌려주어야 마땅한데도 이 정권 역시 그러지 않고 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영원히 떠나는 날의 어두운 단상입니다.
고 노무현 대통령은 29일 영결식을 마치고 하늘나라로 떠났습니다. 이 세상의 무거운 짐은 모두 부려놓으시고 하늘나라에서 부디 편히 쉬소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소서.
홍윤표 OSEN 대표기자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3년 7월 17일 대전구장에서 열렸던 올스타전에서 시구를 하고 있는 모습.
이승만 전 대통령(사진 원내)이 그라운드에 서 있는 김영조 포수에게 백스톱 구멍으로 공을 던지고 있는 장면이다. 사진 출전은 KBO 편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