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최영균의 인사이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를 애도하면서 한 주가 지나갔다.
지상파 방송사들은 국민장 일정 동안 예능 프로그램들을 전면 결방시키고 추모 방송으로 편성을 채웠다. 보통 KBS 1TV가 국가적 관심사를 방송하면 정규 방송을 하던 KBS 2TV도 서거 당일 예능 프로그램을 원래대로 방송하다가 결국 결방 대열에 합류했다. 이번 국민장 기간에 예능 프로그램 전체의 결방이 처음엔 당연해 보였는데 조금 더 생각하니 왠지 복잡한 마음이 남는 것은 왜 일까.
한국의 예능은 추모의 대열에 절대 참여할 수 없는 존재가 돼 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한국의 예능에는 ‘감동이 있는 웃음’이 의미 없는 것이 돼 버렸기 때문이다. 이번 국민장 기간은 한국의 예능이 말초적이고 감각적인 웃음, 오직 가벼운 웃음만이 남아 있음을 보여주는 계기가 됐다.
원래 비극과 희극은 한 몸이라는 고전적인 예술 이론까지 들먹이지 않더라도 얼마 전까지만 해도 페이소스가 있는 웃음은 예능인들이 지향하던 가치였고 가장 높은 수준의 코미디로 인식됐다. 하지만 최근 들어 감동은 예능에서 거추장스러운 장애물이 됐고 극한의 웃음만을 추구하는 방식이 대세가 됐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죽음을 앞두고도 아이를 위해 전쟁놀이 거짓말을 하는 아빠가 나오는 ‘인생은 아름다워’, 실업자 신세를 벗어나기 위해 스트립쇼를 준비하는 중년의 남자들이 등장하는 ‘풀몬티’는 눈물이 그렁그렁 하는 눈 밑의 입가에는 웃음이 고이는 고귀한 경험을 선물하는 ‘코미디’ 영화였다. ‘그건 영화고 예능은 힘들다’고 하기에는 너무 포기가 쉽지 않은가 싶다.
감동이 있는, 웃음과 눈물이 함께 하는 예능도 있었다. MBC의 ‘느낌표’가 대표적이다. 만약 이런 예능 프로그램들이 남아 있었다면 전면 결방 되지는 않았을 수도 있을 것 같다. 물론 이번 예능의 집단 결방에는 미리 제작해 놓은 내용이 추모의 분위기와 안 맞기 때문인 이유도 있다.
하지만 감동과 웃음이 함께 있는 프로그램이 있었다면 긴급 제작을 통해 방송을 할 수도 있었을 것 같다. 결방은 시간의 문제가 아니라 프로그램 성격의 문제도 컸다는 뜻이다. 프로그램 자체가 감동과 웃음을 계속 추구해 왔다면 고인에 대한 웃음의 기억을 되살리는 것에 대중들이 거부감을 느끼지는 않을 것이다.
한국 예능은 수명이 짧은 것도 아쉽다. 외국의 경우 국민이 함께 애도하는 인물이 사망하면 수십 년 동안 계속되는 토크쇼에서 출연했던 자료를 모아 추모 방송을 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노 전 대통령도 해양수산부 장관 시절 ‘일밤’에, 대통령 재임 기간에는 ‘느낌표’에 출연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느낌표’는 없어졌고 ‘일밤’은 노 전 대통령이 출연했던 코너가 사라진 지 오래 됐다.
국민들은 과거의 자료들을 샅샅이 꺼내 인터넷에 올리고 공유하면서 슬픔을 나누었다. 이런 상황에서 예능 프로그램에서의 노 전 대통령도 보면서 눈물과 웃음을 함께 할 수 있었다면 좀더 알찬 추모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실제로 다큐멘터리 프로그램들은 이번 국민장 기간에 과거 노 전 대통령의 인간적이고 유쾌한 모습들을 다시 보여주면서 ‘눈물과 웃음의 추모’를 해냈다.
한국의 예능이 국민적 애도 상황이 발생하면 모두 숨어야 하는 실태는 꼭 방송사만의 책임은 아니다. 시청률과 광고 수입 등에 생존 문제가 달린 방송사는 결국 대중들의 취향에 따라갈 수 밖에 없기에 ‘감동 없는 예능’은 결국 대중 스스로가 만든 측면도 분명 존재한다.
그래도 방송사 예능 관계자들은 대중 탓만 하지 말고 ‘감동이 있는 웃음’을 버리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즉물적이지 않은, 좀 더 고차원적인 웃음, 한 번 도전해볼 만한 일 아닌가.
/대중문화가이드 ck1@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