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윤표의 발 없는 말]4할의 꿈, 정녕 망상인가
OSEN 기자
발행 2009.06.05 11: 28

“연습 때 컨디션이 엉망이어도 막상 경기에 들어가면 상대 투수에 맞게 응용을 아주 잘한다.”
이순철(48) MBC-ESPN 야구해설위원이 코치로 활동했던 제 2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때 지켜봤던 김현수(21. 두산 베어스)를 두고 한 말이다. 이 코치는 올 시즌을 앞두고 김현수가 홈런 증산을 의식해 타격폼을 수정한다는 일부의 얘기를 듣고선 “그 좋은 폼을 왜 바꾸려고 하느냐”는 소리도 했다. 그만큼 김현수의 타격에 대해 매료됐다는 뜻이다.
2008시즌 타격왕으로 우뚝 섰던 김현수는 일각의 우려를 씻어내고 올 들어서도 여전히 타율 고공 행진을 하고 있다. 5월 4일 광주에서 열렸던 KIA 타이거즈전에서 시즌 11호 홈런을 작성, 이미 작년도 홈런수(9개)를 넘어섰고, 3타수 2안타로 타율 4할대( .402)를 다시 회복했다. WBC에서 뛰었던 타자들 가운데 다치지 않고 온전하게 제 구실을 해내고 있는 타자는 김현수가 유일하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4일 현재 로베르토 페타지니(38. LG 트윈스)에 이어 타격 2위에 올라 있는 김현수는 쉽게 지치지 않는 강인한 체력과 투수의 구질을 가리지 않고 안타를 제조해내는 ‘무심타법’으로 타격 평균율을 유지해가고 있다.
타율 4할 9리의 리딩히터 페타지니는 김재박 감독의 표현에 따른다면 “작년이 국내 무대 스트라이크 존에 적응하는 기간이었다면 올해는 적응기를 마치고 확실하게 실력을 내뿜는 기간으로 볼 수 있다. 시즌 전부터 재계약을 맺고 각오를 단단히 한 끝에 시즌을 맞았아 좋은 성적을 내고 있다.”
페타지니는 김현수와 마찬가지로 타구의 질이 좋은데다 타구 방향도 어느 한켠에 치우치지 않고 좌, 중, 우로 고루 분포 돼 있다. 타격감이 절정에 이르러 있다. 문제는 나이를 감안한 체력유지.
김재박 감독은 얼마 전 4할 타율, 200안타 기록 달성 자체에 회의적인 전망을 내놓은 바 있지만, 다른 감독들도 4할 타자 탄생에 대해서는 고개를 가로 젓는다. 페타지니가 최근 같은 고타율을 지속하자면 ‘여름철 고비’를 어떻게 넘기느냐가 관건이 될 것이다.
이들이 과연 언제까지 4할대 타율로 타격왕 다툼을 이어갈 수 있을까. 현재로선 아무도 장담, 예측할 수 없다. 막상 기록이 눈 앞에 보이면 그에 대한 부담감도 훨씬 가중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아직 시즌의 3분의 1을 조금 넘은 시점에서 섣불리 4할 기록 운운하는 것 자체가 시기상조이긴 하다. 그래서 두산의 김경문 감독은 김현수의 타격감이 흐트러질까 우려한 나머지 아예 4할 타율에 대해선 언급 자체를 꺼려하는 기색이다. 당연한 일이다.
그렇다고, 4할 도전의 꿈마저 접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4할대 타율은 타자로서는 감히 엄두조차 내보기 어려운, 멀고 아득한 기록인 것은 분명하지만 ‘시지프스의 바위’ 처럼 포기할 수 없는 꿈이다. 메이저리그에서도 1941년 테드 윌리엄스가 그 고지를 밟아본 것이 마지막이었다.
일본에서는 5월 28일 쿠사노 다이스케(33. 라쿠텐 이글스)라는 ‘늦깎이 타자’가 규정타석을 채우고 4할타율을 기록, 일본 매스컴이 들썩거렸지만 6월 4일 현재 3할8푼1리로 퍼시픽리그 타격 1위에 올라 있을 뿐이다.
김현수와 페타지니, 2강 구도 속에 돌발 변수로 떠오른 타자가 박용택(30)이다. 박용택은 부상에서 회복, 뒤는제 팀에 합류한 이후 연일 맹타를 휘두르며 페타지니와 더불어 LG 타선을 이끌고 있다. 지난 5월 29일 규정타석을 채우고 제도권에 진입했던 박용택은 타격 3위( .388)로 도약, 4할대를 넘보고 있다.
김현수나 페타지니와 달리 박용택은 타석수가 많지 않아 타율의 등락폭도 클 수밖에 없다. 몰아치기에 따라 급상승이 가능한 것이다. 페타지니는 70안타 가운데 내야안타가 단 한개도 없고, 김현수는 72안타 중 내야안타가 4개에 불과하다. ‘발로 만들어내는 안타’가 거의 없는 이들의 타율 흐름에 그래서 더욱 눈길이 간다.
김현수, 페타지니. 박용택, 이들 좌타 3인방의 타격 경쟁이 올해 야구판에 또 다른 재미를 주고 있다.
홍윤표 OSEN 대표기자
6월 4일 광주 무등경기장에서 열린 KIA전에서 김현수가 3회초에 우월 2점 홈런을 날린 뒤 덕아웃의 동료들로부터 축하를 받고 있다. /광주=김영민 기자ajyoung@osen.co.kr
>페타지니가 6월 3일 잠실 구장에서 열렸던 한화전 도중 덕아웃에서 정성훈과 얘기를 나누고 있다./잠실=윤민호 기자ymh@osen.co.kr
박용택이 6월 3일 잠실 한화전에서 8회말 LG 이진영의 내야 땅볼 때 3루에서 홈인, 조인성(왼쪽)의 환영을 받고 있다. /잠실=윤민호 기자ymh@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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