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일평의 아이& 메모]부상 속출 각 구장, 의사와 척추보호카트 구비 시급하다
OSEN 기자
발행 2009.06.09 08: 55

16년 전 일어난 아시아나 항공기 목포 추락 사건을 기억하십니까?
1993년 7월 26일 오후 4시께 승객과 승무원 106명을 태우고 김포공항에서 목포 공항 도착 직전 보잉 737기가 안개와 강풍으로 전남 해남군 화원면 마산리 뒷산에 떨어져 68명이나 사망했던 끔찍한 사건입니다.
난데없이 항공기 대형 사고를 떠올린 것은 올해 들어 유난히 프로야구 선수들의 경기 도중 부상이 연발하는데 응급 대처 능력과 준비가 미흡하기 때문입니다.
당시 여객기가 추락하자 생존자 구조 작업이 대대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TV 생중계 중 구조 헬리콥터가 산속에 실신해 쓰러진 30대 초반의 여성을 구조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구조대는 쓰러진 여성을 부랴부랴 밧줄로 허리 부근을 묶고 헬리콥터에 태우려다 여의치 않자 30여m 가량의 길다란 밧줄로 묶은 채 한참 동안 날아가 마치 특공대 구출 작전 영화의 한 장면 같더군요.
그 부상 여성을 저는 몇 개월 후 신촌 세브란스병원에서 만났습니다. 저도 1984년 LA 올림픽 취재를 갔다가 교통사고를 당해 척수손상을 입고 하반신이 마비돼 재활치료를 하러 갔다가 만난 것입니다.
담당 의사들은 그 여성이 척수손상으로 하반신 마비는 물론 다른 부위도 여러 군데 크게 다쳤다고 말했습니다. 항공기가 추락하면서 다쳤는 지 등 부상 경위가 확실치 않으나 당시 구조 상황은 너무나 무지했다는 게 의사들의 한결 같은 지적이었습니다. 허리를 밧줄에 묶고 한참동안 비행하면 어떤 사람도 척추를 크게 다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최소한 들것에 실어서, 목 등을 고정 시킨 다음 후송했어야 마땅했다고 하더군요.
프로야구에서 선수 부상이야 다반사이지만 올해는 베이징 올림픽과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맹활약 했던 KIA의 이용규와 개인 통산 최다 도루에 최다 안타 2위를 달리고 있는 히어로즈의 전준호가 시즌 개막하자마자 큰 부상을 입고 석 달이 지난 현재까지도 출전하지 못해 본인은 물론 구단과 팬들을 안타깝게 하는 등 부상이 유난히 많아졌습니다.
올해 들어 크게 다친 선수는 채종범, 서재응, 장성호(이상 KIA), 박명환, 이범준, 최원호(이상 LG), 손민한, 조성환(이상 롯데), 김태균, 신경현, 이범호(이상 한화), 안지만(삼성), 이숭용(히어로즈), 정근우(SK), 김동주, 이종욱, 고영민, 최준석, 최승환(이상 두산) 등으로 8개 구단 모두 줄부상으로 비명을 지르고 있습니다.
선수들 모두가 주전으로 살아남기 위해, 국제대회에서 우리나라가 좋은 성적을 올리자 자극을 받아 너도나도 허슬플레이가 많아졌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이들 중 특히 WBC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장타력을 과시한 김태균은 4월 26일 잠실 두산전에서 홈으로 뛰어들다가 포수와 충돌하며 뇌진탕을 일으키고 열흘 후에 다시 출장을 했으나 며칠가지 않아 심한 두통이 계속돼 경기에 제대로 나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종욱은 6월 2일 광주에서 수비 도중 동료 유격수 김재호와 충돌, 기절하고 김재호의 무릎에 목을 크게 다쳐 엄청난 피를 흘려 보는 사람들도 충격에 빠졌습니다. 턱관절이 골절돼 최소한 2개월은 출장하지 못하게 됐습니다.
올해 롯데에서 옮겨 와 좋은 활약을 펼치는 이원석도 6월 5일 고향팀과 경기에서 포수와 부딪혀 한때 기절을 하고 병원으로 후송 됐다가 회복했습니다.
경기 중 부상은 필연적으로 일어나지만 특히 선수들이 뇌진탕을 당하거나 목 부위에 심한 충격을 받고 쓰러지면 신속한 응급 처치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지난 2000년 4월 18일 잠실 LG와 경기에서 임수혁(롯데 포수)은 2루주자로 나가 있다가 갑자기 쓰러져 아직까지 의식불명 상태입니다. 당시 응급 조치라곤 간호사가 그라운드에 나와 안절부절하다가 들것에 실어 구급차로 옮겼는데 부정맥 증세가 있었던 그에게 심장 마사지를 빨리 해주고 안정된 들것에 옮겨 후송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이 사건 후 각 구단에서는 더디나마 응급 구조 조처를 취하기 시작했고 요즘은 1급 응급 구조사와 앰뷸런스는 대부분 대기 시켜 놓고 있습니다. 의사는 KIA구단이 광주구장에 한국병원의 협력을 받아 1명이 유일하게 지켜보고 있습니다.
선수들을 제대로 돌보려면 숙련된 의사와 간호사, 응급구조사, 트레이너가 함께 나와 있어야 마땅합니다. 현재 우리 구장에서는 사고가 나면 먼저 팀 트레이너 2명이 뛰어나가 상태를 살펴보고 심판과 상의한 후 의료진을 부르는데 실신을 하거나 목과 허리에 심한 충격이 가해졌으면 무조건 의사가 달려나가 빠른 판단이 따라야 합니다.
그리고 아직은 엉성한 들 것에 부상자를 눕히고 덜렁덜렁 밖으로 나가는데 머리와 목, 허리를 다친 선수에게는 위험한 이동 방법입니다. 선수가 쓰러지면 억지로 일으키거나 부축하지 말고 의사가 상태를 살펴본 뒤 반드시 척추보호판(Spine Board)이 장치된 들 것이나 카트가 들어와 부상자의 머리와 목 등을 고정 시킨 다음 옮겨야 합니다.
지난 3월 WBC가 열린 펫코 파크 등 미국 메이저리그 구장에는 의사 4명이 상시 배치돼 있고 X-레이 등 촬영 장비 등 의료 기구도 설치돼 있으며 아예 의료 시설이 마련돼 있어 검진부터 치료까지 실시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당시 이용규가 일본전에서 심하게 머리를 다쳤지만 구장 안에서도 치료를 충분히 할 수가 있었습니다.
각 구단이 의사를 배치하지 않거나 스파인 보드 등 첨단 시설을 갖추지 않은 것은 비용 때문입니다. 현재 체제로만 운영하는데도 1일 25만~40만 원 가량의 돈이 들어가 연간 구단마다 이 부문 경비로 2000만 원 정도가 소요됩니다.
의사들도 하루 4시간 정도 특근을 해야 하는데 10만~20만 원의 일당은 기피하는 경향이 있어 숙련된 의사는 배치하기가 쉽지 않다고 합니다.
메이저리그와 같은 수준의 응급 조치를 하려면 구단마다 연간 1억 5000만 원 이상의 경비가 추가로 필요해 우리 구단이 손을 놓고 있는 실정입니다. 선수들의 생명을 보호하고 회복 시기를 앞당기는데 1억여 원이라면 한번 투자를 해볼만 하지 않겠습니까?
천일평 OSEN 편집인
지난 4월 7일 광주 SK전 수비 도중 펜스에 부딪혀 발목 부상을 입은 이용규가 그라운드에 쓰러져 있다./사진제공=KIA 타이거즈
6월2일 광주에서 열렸던 KIA전에서 8회말 김종국의 중견수앞 플라이때 두산 중견수 이종욱과 2루수 김재호가 수비 도중 충돌, 이종욱이 큰 부상을 입고 병원으로 긴급 후송되고 있다. /광주=김영민 기자ajyoung@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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