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의 박찬호(36. 필라델피아 필리스)도, 이종범(39. KIA 타이거즈)도 피해가지 못한 일이 있었다. 바로 스트레스였다.
지난 2004년 5월께 텍사스 레인저스에 몸담고 있던 박찬호는 부상자 명단에 오른 이후 마이너리그에서 재활하는 동안 스트레스로 인해 경미한 원형탈모증을 겪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종범도 1999년 일본 주니치 드래곤즈 시절 잘 나가다가 오른팔꿈치에 상대 투수의 공을 얻어맞아 불의의 부상을 당한 이후 부진에 빠졌다. 당시 호시노 센이치 주니치 감독이 포지션 변경(유격수에서 외야수로)을 압박하는 등 심한 심적 부담감에 시달리던 나머지 원형 탈모증에 걸려 애를 먹은 적이 있다.
이처럼 유명 선수들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심적인 중압감으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사례는 많이 있다.
이승엽(33. 요미우리 자이언츠)도 최근 마음 고생이 심하다. 타격이 부진하다보니 주전 자리마저 위협을 받고 있다. 하라 다쓰노리(51) 요미우리 감독은 공공연하게 이승엽을 타박하고 있는 형국이다. 이중고를 겪고 있는 것이다. 주니치의 이병규(35)도 현재는 주전 경쟁에서 밀려나 1군 무대에 변변히 서보지도 못하고 기약없는 2군 생활을 계속하고 있다.
성과를 내지 못하면 내침을 당하기 십상인 게 외국인 선수의 신분이다. 이승엽도 그 굴레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요미우리 구단은 올해 일본시리즈 제패를 외치고 있다. 6월 12일 현재 센트럴리그 2위 야쿠르트와 5게임 차이로 앞서 있는 요미우리지만, 하라 감독은 닫는 말에 채찍질하듯 닦달을 멈추지 않는다.
성과에 의해 입지가 좌우될 수밖에 없는 프로 세계에서 그같은 처사를 탓할 수만은 없다. 그렇다하더라도, 감독의 심한 지청구는 선수를 지레 주눅들게 한다. 가뜩이나 중압감에 시달리는 외국인 선수가 감독의 신뢰감마저 잃어버린다면, 절로 위축되기 마련이다.
하라 감독은 진득하게 기다리지 않는다. 이미 이승엽의 기용법에서 그는 변덕스런 지도자의 모습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근본 원인이야 선수 자신에게 있겠지만, 시즌 초반엔 플래툰시스템으로 이승엽을 어렵게 만들더니 최근엔 선수 자존심마저 뭉게버리는 들쭉날쭉한 기용으로 이승엽의 심적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
이승엽의 타격 부조는 심리적인 요인과 기술적인 요인 두 측면이 복합된 것으로 보인다.
백인천 SBS 스포츠 해설위원은 최근 이승엽 경기를 지켜보고 난 다음 이렇게 진단했다. 백 위원은 “타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리듬과 타이밍인데, 이승엽이 하체 중심을 받쳐놓고 치지 못하고 상체로 치려다보니 공을 쫓아가고 폼이 흐트러지는 경향이 있다”면서 “백스윙에 너무 신경을 쓰고 상체가 앞으로 쏠린다”고 지적했다.
며칠 전 이승엽과 직접 통화를 하면서 조언을 건넸던 백 위원은 “교류전 들어와 타격감이 좋았는데 자신의 파울타구에 오른 복숭아뼈 부위를 얻어맞은 이후 오른발 보호대를 차고 나온 것을 봤다. 발목보호대는 무게가 1킬로그램 정도 나가는데 스파이크 한짝을 더 신고 타격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통증이 있어서 그런 것인가, 보호차원에서 댄다면 안하는 게 낫다’고 물어봤더니 ‘아프지는 않다’고 말했다”면서 “타격은 아주 작은 일에도 영향을 받는다. 타자가 자신의 파울타구를 얻어맞는 것은 대개 몸쪽 공을 타격할 때 일어난다. 한 번 얻어맞으면 아무래도 신경을 쓰게되고 두려움도 생기게 마련”이라고 분석했다.
백 위원은 “이승엽은 오른발을 들고 치는 타자이다. 정상적일 때는 오른쪽 무릎이 배위로 올라 가는데, 지금은 그렇지 못하고 어정쩡하게 들었다가 바로 내린다. 타구가 맥히자 빨리 치려다보니 상체가 앞으로 숙여지고 하체가 흐트러진다”고 설명했다.
백 위원은 타격 상식이지만 잊기 쉬운 것, “백스윙에 신경쓰지 말아라, 백스윙은 마음으로 하는 것, 즉 타격 시에 마음 속으로 ‘하나, 둘, 셋’을 헤아리며 타구를 미리 판단해야한다는 것” 등을 이승엽에게 주문했다.
결국 현재 이승엽이 겪고 있는 어려움은 그 자신이 이겨내고 헤쳐나가야 한다. 사실 이승엽은 일본 무대에서 뛰었던 여느 한국 선수들보다도 으뜸가는 성과를 올렸다. 손가락 부상 등으로 고전하긴 했지만 올해 재기의 나랴를 활짝 펼 것으로 주위의 기대를 모았다. 비록 여러 이유로 타격이 롤러코스터를 탄 듯하지만, 극복하지 못할 까닭은 없다.
올해로 일본무대 진출 6년째인 이승엽은 요미우리와의 계약도 아직 1년 더 남았다. 누가 뭐래도 한국이 낳은 불세출의 타자가 일본 야구판에서 성공적인 결실을 거두도록 주변에서 따뜻한 시선으로 격려하고 지켜보는 게 필요한 시점이다.
홍윤표 OSEN 대표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