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6월 26일 현재, 한국 프로야구는 야전 부상병동이다. 8개구단이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한결같이 주전 선수들의 크고 작은 부상에 신음하고 있다.
선수들에게 가장 무서운 적은 두 말할 나위조차 없이 부상이다. 운동세계에서 부상은 공공의 적이다. 올해 들어 프로야구판은 유난히 부상 선수들이 속출하고 있다. 일일이 손에 꼽아보기도 어려울 만큼 부상자가 많다. 몸이 재산인 선수들의 부상은 불가항력적인 것도 있지만 대부분 ‘인재(人災)’라는 점에서 프로야구판에 몸담고 있는 지도자, 선수, 관계자들의 재인식과 각성이 요구된다.
한국 최고의 포수로 제2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한국의 세계 2위를 앞장서 이끌었던 박경완(37. SK 와이번스)이 지난 24일 광주 KIA전에서 주루 도중 왼쪽 발목이 접질려 아킬레스건 파열로 수술을 하는 중상을 입었다. 비단 박경완 뿐만 아니라 각 구단의 핵심 선수들이 시즌 초반부터 잇달아 부상으로 전열에서 이탈했다.
KIA 타이거즈 이용규(24)는 지난 4월 7일 광주 SK전에서 수비 도중 오른발 복사뼈 골정상을 당해 수술을 받고 재활 중이다.
롯데 자이언츠 주장 조성환(33)은 4월 23일 문학 SK전에서 채병룡의 투구에 맞아 안면 얼굴 골절로 엔트리에 빠졌다가 수술과 재활로 한달 열흘이 지난 6월 2일에야 1군에 복귀했지만 아직도 제 구실을 못하고 있다.
WBC에서 거포 본능을 재인식 시켰던 한화 이글스 김태균(27)의 부상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아찔하다. 4월 26일 두산 베어스와의 잠실 경기에서 김태균은 홈으로 뛰어들다가 두산 포수 최승환(31)과 충돌, 태그 아웃 되는 과정에서 머리를 그라운드에 부딪히면서 기절, 온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김태균은 그 후유증으로 2군으로 내려가 재활 훈련을 받으며 장기간 결장 중이다. 한화는 김태균에 이어 이범호마저 부상을 당해 차, 포를 떼고 경기를 치르는 형국이어서 맨꼴찌로 처졌다.
두산 이종욱(29)은 6월 2일 광주 KIA전서 8회말 수비도중 KIA 김종국의 뜬공 타구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2루수 김재호와 부딪혀 그라운드에 쓰러졌다. 검진 결과, 부위가 2~3cm 가량 찢겨졌고 턱 관절 두 군데가 골절되는 중상이었다. 결국 이종욱은 6월 5일 서울 삼성의료원에서 수술을 받았다.
8개 구단 가운데 두산과 삼성, KIA 주전 선수들의 부상이 가장 심각하다.
두산은 이종욱을 비롯 주포 김동주와 고영민, 최준석 등 상위 타선이 모조리 부상으로 빠져 있다. 게다가 상위 타선에서 나홀로 지탱해왔던 김현수(21)마저 쇄골 통증으로 정상이 아니다. 김현수는 지난 21일 문학 SK전에서 3번 타자 겸 좌익수로 선발 출장, 2-1로 앞선 3회말 2사 1루서 박재홍의 잘 맞은 타구를 잡아내는 호수비를 선보였지만 그 과정에서 강하게 펜스에 부딪혀 부상을 당했다.
두산은 시즌 초 이종욱-고영민-김현수-김동주-최준석으로 이어지던 선발 라인업이 완전히 바뀌었고 매 경기 타순을 조정하느라 애를 먹고 있다.
삼성은 포수 진갑용이 6월 17일 롯데전에 앞서 왼쪽 허벅지 통증으로 출장하지 못한데 이어 유격수 박진만이 21일 LG전에서 종아리 근육 파열로 이탈, 시름이 가둑하다. 삼성은 이들 외에도 조동찬이 21일 LG전에서 1루수 페타지니와 부딪혀 뇌진탕 증세를 호소해 우려를 자아냈고, 잘 나가던 새내기 김상수가 간염 증세로 빠졌다. 그 외에도 안지만, 권오준 등 주전 투수들도 부상으로 2군에 내려갔다.
이용규가 아직 복귀를 하지 못하고 있는 KIA에서는 장성호가 늑골미세골절로, 김선빈이 오른발목 부상으로, 김원섭이 높은 간염수치로 이탈, 득점력과 타선의 안정감이 부쩍 떨어졌다.
선발요원 박명환이 어깨 수술 후 재활을 마치고 복귀했다가 허벅지 통증으로 다시 2군에서 재활중인 LG는 최동수가 손목에 공을 맞아 빠졌고, 이범준은 오른팔꿈치, 최원호는 이동 도중 휴게소 계단을 헛디뎌 발목을 다쳤다.
그나마 롯데와 히어로즈는 조금 나은 편이다. 롯데는 주전 포수 강민호가 팔꿈치 부상으로 이탈했으나 큰 이상이 없어 주말에 복귀할 예정이고, 외국인 가르시아가 손목 타박상으로 25일 두산전에 뛰지 못했다.
선수 부상의 원인은 크게 3가지, 낙후된 구장 시설, 선수들의 수비 기본의 망각, 동업자 정신을 무시한 빈볼을 포함한 몸에 맞는 볼 등으로 나눌 수 있겠다. 올해 광주 무등구장에서 선수들의 부상이 잇따르고 있는 것은 구장 시설과 관리 미흡이라는 지적이 많다. 오죽했으면 메이저리거 출신인 봉중근(29)이 25일 기자들에게 “목동, 대구, 광주 구장은 미국 마이너리그 싱글 A 수준”이라고 쓴소리를 던졌겠는가.
선수들의 과잉 투지도 부상을 촉발 시키는 요인이다. 의욕이 앞선 나머지 기본을 잊고 무리한 수비를 하다가 부상 당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외야에 뜬 타구를 내야수와 외야수가 서로 잡으려다가 충돌, 큰 부상을 당하는 사례도 자주 눈에 띈다.
타자주자가 1루에 헤드퍼스트 슬라이딩으로 미끌어져 들어가는 장면이나 포수가 홈으로 들어오는 주자의 진로를 아예 가로막고 베이스를 타고 앉아 블로킹을 하는 장면 등은 위태롭기 짝이 없다.
김시진(51) 히어로즈 감독은 “외관상 타자주자가 1루로 갈 때 헤드퍼스트 슬라이딩이 빠르게 보이고 허슬플레이로 관중들에게 어필할 수는 있겠지만 전력질주하는 것에 비해 빠르다고 할 수 없다. 부상 위험이 커 우리 팀은 가급적 1루 슬라이딩을 하지말도록 주문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감독은 포수의 홈 블로킹도 “주자가 뛰어들어오면 포수는 홈을 열어줘야하는 게 원칙”이라면서 “서서 블로킹하는 포수들도 있는데 이는 심판들이 제재를 가해야 한다. 의욕을 앞세워 주자의 권리를 무시하고 홈플레이트가 안보이도록 가로막는 바람에 주자가 우회해서 터치할 수밖에 없어 부상 우려가 크다”고 지적했다.
외야 콜플레이 역시 기본을 잊고 있기 때문에 자주 일어난다. 김 감독은 “외야 뜬 공은 낮은 타구에 문제가 생긴다. 뜬 공이 인필드를 넘어서면 외야수에게 우선권이 있다. 아무래도 내야수는 뒤돌아서서 뛰기 때문이다. 콜 플레이는 평소 훈련 때 외야수가 ‘마이볼’을 외치면 내야수는 빠지게 돼 있다. 다만 외야수는 콜 사인을 빠르게 해야하는데 관중석 소란 등으로 잘 안들리는 때가 많다보니 자칫 선수생명을 위협할 수 있는 큰 충돌이 일어난다”고 설명했다.
구단마다 70게임 안팎을 소화, 반환점을 돌아선 올해 프로야구 페넌트 레이스는 선수들의 부상에 따라 희비가 엇갈릴 전망이다. 부상 없이 한 시즌을 치르는 것은 그라운드에서 뛰고 있는 선수들의 간절한 소망이다. 구장 시설이나 뒤틀린 플레이로 선수들이 부상당하는 일이 생겨서는 안된다.
홍윤표 OSEN 대표기자
큰 부상으로 괴로움을 겪고 있는 이종욱, 이용규, 김태균(위로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