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의 자격'과 김태원, 그 준비된 예능, 예능인
OSEN 기자
발행 2009.07.26 07: 59

예능의 모든 자격을 갖춘 김태원과 '남자의 자격' [OSEN=정덕현의 명랑TV] 처음에는 우연처럼 생각됐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김태원이 예능으로도 부활에 성공한 건 우연이 아니었다. '남자의 자격'에서 보여주는 그의 활약은 사실상 그가 현 예능이 요구하는 거의 모든 조건들을 이미 갖추었었다는 것을 말해주기 때문이다. 그는 독특한 입담에서부터 그 존재 자체가 드러내는 몸 개그를 두루 갖추었으면서, 동시에 어쩌면 가장 중요한 자격이라 할 수 있는 자존감까지 갖고 있는 보기 드문 예능인이다. 현재의 '남자의 자격'에서 도드라지는 김태원의 존재감은, 마치 현 예능계에서 차츰 부상하고 있는 '남자의 자격'이라는 예능 프로그램과 유사한 점이 있다. 김태원의 화법과 '남자의 자격'의 화법 예능에서 그가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그의 독특한 말투 때문이다. 자신을 객관화시키는 "~합니다"라는 어투에 "~응"하고 꼬리를 올리는 특유의 말투는 그의 토크가 가진 내용을 차치하고라도 주변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물론 말투는 늘 내용과 상관관계를 갖는다. 이런 말투가 말하는 것은 그가 살아온 굴곡진 인생담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것이며, 이제는 그것을 여유 있게 관조하며 유머로 풀어낼 수 있는 그 시간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속에는 로커라는 자존심도 숨겨져 있다. 바닥으로 추락했던 경험들을 객관화해서 남 얘기하듯이 툭툭 털어내는 그것은 즉각적으로는 웃음을 준다. 하지만 그 이야기는 한번쯤 그 속사정을 생각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것이 김태원이 작곡한 곡들과 연결될 때, 그의 말이 전해주었던 웃음은 어떤 감동으로 변화하게 된다. 경륜과 어법, 그 두 측면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김태원은 예능인으로서의 입담을 두루 갖추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은 바로 '남자의 자격'이라는 프로그램이 가진 토크의 스타일과 유사하다. '남자의 자격'의 테마들을 보면 알겠지만 이 프로그램의 출연진은 저마다의 어법 속에 나름대로의 삶의 경륜을 담고 있다. 이것은 가장 중심에서 이 프로그램을 이끌어가는 이경규의 토크 스타일이기도 하다. 따라서 김태원은 어쩌면 바로 이 스타일에 가장 잘 어우러지는 멤버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김태원의 몸 개그와 '남자의 자격'의 몸 개그 그렇다면 예능에서 또 한 축이 되는 몸 개그는 어떨까. 김태원은 현재 국민약골 이윤석을 능가하는 할머니 캐릭터로 부상하고 있다. '남자의 자격'에서 보여준 그의 저질 체력은 늘 상상하는 것 그 이상을 보여주었다. 줄넘기 한 번을 넘기기 어려워 안간힘을 쓰는 모습과, 선착순하면 아예 포기하고 천천히 걷는 모습은 김태원만의 귀차니스트로서의 몸을 캐릭터화해 주었다. 귀가 어두워 잘 듣지 못한다거나 조금만 움직여도 숨이 차는 등의 저질 몸은 그 자체가 몸 개그가 되었다. 김태원을 할머니 캐릭터로 만든 요소 속에는 저질체력과 닮은 외모뿐만이 아니었다. '남자의 자격'에서 보여준 그의 형편없는 상식 수준(이것은 실제로 그런지는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예능 캐릭터로서는 분명 유리한 요소다)은 그를 할머니 캐릭터에 부합하게 만들었다. 엉뚱한 답변은 물론 그의 사차원 정신세계로 인해 나타나는 것이지만, 이를 갖춤으로써 김태원은 예능인이 갖추어야 할 저질 몸과 캐릭터를 강화시킬 수 있는 저질 지능을 갖게 되었다. 그런데 김태원이 보여주는 이 같은 나이나 체력 같은 육체적 조건에서 비롯되는 몸 개그는 역시 '남자의 자격'이 보여주는 몸 개그와 궤를 같이 한다. 물론 여기에는 이정진이나 김성민 같은 정상 그 이상을 보여줌으로써 비교점을 만들어주는 캐릭터가 존재한다. 하지만 그 근본적인 몸 개그의 틀은 바로 이 김태원이 보여주는 것처럼, 저마다 가진 육체적 조건에서 비롯되는 몸의 한계에서 터져 나오는 것이다. 김태원의 자존감, '남자의 자격'의 자존감 이 모든 것들을 하나로 관통해보면 김태원은 현재 뭐 하나 정상적인 것이 없는 사람처럼 그려지게 된다. 만일 김태원의 캐릭터가 여기에 머문다면 그것은 바보 같은 캐릭터가 될 수는 있어도 어떤 독특한 매력을 발산하는 지금의 김태원 캐릭터는 만들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김태원은 이런 저질의 몸과 체력과 지능을 보여주면서도 자신이 음악인이라는 것을 늘 강조한다. 음악인으로서의 자존심, 예술인으로서의 끼를 놓지 않은 것이다. 이것은 다른 부족한 부분들을 모두 상쇄시켜 매력으로 전환시켜주는 중요한 점이다. 또한 김태원은 여러 토크쇼에 나와서 아내와의 남다른 금슬을 과시했다. 그의 따뜻한 면모는 예술인으로서의 남다른 정신세계를 구축하고 있으면서도, 어딘지 부족해보이고 또 그것이 친근한 아저씨 인상을 부가시켰다. 우리 록의 전설이라는 아우라를 갖고 있으면서도 그것이 친근해 보이는 그 독특한 이미지는 김태원만이 가진 장점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은 역시 '남자의 자격'이 가진 독특한 품격과 닮아 있다. 아마도 국민개그맨이라고 할 수 있는 이경규가 자리한 것이 바로 그러한 품격을 만들어내는 요인이 될 것이지만, 그들의 웃음 속에는 나름의 삶의 페이소스 같은 것이 묻어날 때가 많다. 무엇보다 김태원과 '남자의 자격'이 닮은 것은 이들의 모습이 꾸며진 것이 아니라 리얼 그 자체라는 점이다. 스스로도 밝혔듯 삶 자체가 드라마틱했던 김태원은 지금 그 드라마틱한 삶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만으로 충분한 예능인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으며, '남자의 자격'이 우리에게 주는 웃음도 리얼 버라이어티로서 당연한 것이지만 절대로 쉽지는 않은 그 '그대로 보여주기'에 충실하다는 것이다. 현재 '남자의 자격'이 차츰 부상하고 있는 것은, 어느 날 갑자기 외계인처럼 등장해 예능계를 휘젓고 다니는 김태원처럼, 사실은 갑작스러운 것이 아니라 이미 충분히 준비되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 토양에는 물론 이경규가 자리하고 있고, 그 위에서 쑥쑥 자라고 있는 것은 김태원이다. 현재 전체 예능에서 이경규가 차츰 세력을 넓히고 있는 양상을 염두에 둔다면, '남자의 자격'은 마치 그 토양에서 자라고 있는 김태원처럼 비상할 가능성이 높다. /정덕현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mansuri@osen.co.kr 블로그 http://thekia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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