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윤표의 발 없는 말]김재현, ‘선산을 지키는 굽은 나무처럼’
OSEN 기자
발행 2009.08.07 08: 01

“두 돌이 갓 지난 딸(혜빈)이 전화로‘아빠, 이겨야 돼, 빨리와’라고 말하는데 너무 귀여워요. 물론 엄마가 시킨거겠지만요”. ‘캐넌 히터’ 김재현(34)이 딸의 재롱에 흠뻑 빠져 있습니다. 한창 말을 익혀가고 있는 딸을 보노라면 한 순간에 피로가 싹 가신다고 합니다. 야구의 즐거움을 넘어 삶의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는 김재현의 요즈음입니다. 김재현은 SK 와이번스 주장입니다. 주장이었던 박경완(37)이 지난 6월 24일 KIA전 도중 아킬레스건 파열로 수술을 받고 장기간 팀을 이탈하는 바람에 대신 차게된 것입니다. 2007시즌 SK가 창단 8년만에 한국시리즈에서 첫 우승을 따낼 당시 혁혁한 공로를 세우며 최우수선수(MVP)로 빛났던 김재현은 두산 베어스와의 2008년 한국시리즈에서도 1, 2차전에서 연속 홈런(2007년 6차전 포함 시리즈 3연속 홈런 신기록)을 쏘아올리며 팀의 2연패를 이끄는 데 앞장섰습니다. 노련미로 다져진 그의 활약이 없었다면, SK의 이태 연속 우승도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완장을 찼다고 해서, 그의 야구 일상이 크게 달라진 것은 없습니다. 평소 군말을 싫어하는 그는 묵묵히 자신의 임무를 수행하고, 주장으로서 선수단과 구단간 가교역도 충실히 해내고 있다는 게 SK 구단 관계자의 전언입니다. 비록 김성근(67) 감독의 플래툰시스템에 따라 출장이 들쭉날쭉하긴 하지만, 김재현은 자신이 나가는 경기에선 팀 승리의 조역을 자임하며 선임자의 몫을 충분히 소화하고 있습니다. 비근한 예가 지난 8월 4~6일 히어로즈와의 3연전이었습니다. 부상자가 속출하고 있는 가운데 ‘엎친 데 덮친’격으로 에이스 김광현의 불의의 부상으로 SK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는 마당에서 맞이한 히어로즈전에서 김재현은 4일 혼자서 3안타, 2타점을 올리며 팀 역전승의 디딤돌을 놓았습니다. 특히 1-5로 뒤져 있던 5회에 날린 2타점 적시타는 경기 흐름을 반전시키는 계기가 된 중요한 일타였지요. 김재현의 진가는 5일 경기에서 더욱 두드러졌습니다. 5-6으로 이끌려가던 7회에 박재상의 적시 2루타로 동점이된 다음, 이호준의 대타로 나선 김재현이 적시타로 7-6으로 전세를 뒤집은 것입니다. 이틀 연속 팀 승리의 결정적인 구실을 해냈던 김재현은 6일엔 ‘묘기’에 가까운 타격기술을 선보였습니다. 2-2로 팽팽하던 6회 선두타자로 나서 히어로즈 선발 황두성의 빠른 공이 목 언저리 높이로 날아왔지만 눈깜짝 할 새에 방방이를 휘둘러 우전안타로 만들어낸 것입니다. 녹슬지 않은 캐넌히터의 참모습을 확인하는 순간이었습니다. 김재현은 최근 5경기에서 12타수 7안타로 타율 5할8푼3리를 기록하며 고감도 방방이를 과시했습니다. 중요한 고비마다 어김없이 터지는 그의 왕성한 타력 덕분에 SK는 여전히 KIA, 두산과의 선두 다툼 3파전을 지탱하고 있다고해도 그리 지나치지 않을 겁니다. 김재현의 야구인생은 이제 성숙한 단계를 넘어 가히 달관의 경지에 올랐다고 해도 좋겠습니다. 지난 7월 중순 팀이 7연패에 빠졌을 때도 김재현은 담담한 어조로 한 마디를 툭 던졌습니다. “분위기를 타는 거죠. 젊은 선수들이 의욕이 앞서고, 너무 조급해져 있어요.” 어차피 쌓아놓은 실력이 있는데 애달캐달할 것이 없다는 뜻이었겠지요. 서두르지 않고 가다보면 자연스레 연패를 벗어나게 된다는, 그야말로 도통한 듯한 발언이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SK는 7월 16일 LG를 잡고 연패의 늪에서 탈출했습니다. 김재현은 FA 신분이 된 작년 말 SK와 재계약에 합의, 그대로 눌러 앉았습니다. 계약금 2억 원, 연봉 5억 원에 재계약했던 김재현은 지난 5월 23일 일시적인 타격 부진으로 2군으로 내려갔다가 6월 5일에야 1군으로 올라왔습니다. 그 때에도 김재현은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고 자신의 처지를 받아들였다고 합니다. 자칫 불만을 내비칠 수도 있는 후배들을 다독거리는데도 게을리하지 않는 김재현은 예의도 밝습니다. 자신이 도움을 받으면 반드시 인사성을 차립니다. 김재현은 후배들에게 자주 이런 말을 건넵니다. “순간을 즐기면서 야구를 하자.” 이쯤되면, 일정한 경지에 이르렀다고 해야겠지요. 그를 보면, ‘굽은 나무가 선산을 지킨다’는 옛말이 생각납니다. 야구판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김재현은 온갖 풍상을 다 견뎌내고 꿋꿋이 버티고 선 늘 푸른 소나무를 연상시킵니다. 8월 7일, 태풍의 영향으로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잠시나마 그라운드의 열기를 식히고 숨을 고른 뒤 다시 맞이하게 될 야구판은 김재현같은 선수가 있기에 즐겁습니다. 올해 홈런 5개를 기록한 김재현은 개인통산 200홈런고지에 14개를 남겨놓고 있습니다(8월 6일 현재 186개). 그가 앞으로 어떻게 200홈런 고지로 한발 한발 다가서는지 지켜보는 것 또한 야구를 보는 재미를 더해줄 것입니다. 홍윤표 OSEN 대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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