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문화’, 나아가 ‘가요’와 ‘예능’의 대통령, 고 김대중 전대통령
OSEN 기자
발행 2009.08.24 08: 32

[OSEN=최영균의 인사이더] 김대중 전 대통령이 23일 영원한 안식에 들었다.
김 전대통령의 업적은 너무 많아 이루 헤아릴 수가 없다. 민주주의 발전과 평화 통일을 위한 끝없는 노력, 경제 위기 극복과 지역 감정 해소를 위한 화해와 용서…. 이러한 거대 담론 측면에서의 업적도 굵직굵직하고 폭 넓지만 좀더 세부적인 영역으로 들어오면 김 대통령에게 바쳐야 될 수식어가 하나 더 추가된다. ‘대중문화 대통령’이 그것이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지원은 하되 간섭은 않는다’는, 대중 문화를 정권 홍보의 수단 정도로 여기던 이전 정권과는 달랐던 문화 정책은 영화 산업을 질적, 양적으로 모두 성장시켰다. 질적으로는 집권 시절 이창동 감독의 영화 ‘오아시스’를 시작으로 이후 해외 주요 영화제 수상작이 잇따라 나오고 한국 영화를 책임질 수많은 인디 감독들이 자라날 터전을 만들었다.
양적으로도 임기 직후 도달하는 1000만 관객 시대의 기틀을 마련하는 한국형 블록버스터 작품이 줄줄이 나올 수 있도록 폭넓은 지원과, 자유로운 상상력의 발휘를 위한 규제 철폐에 나섰다. 일본 문화를 개방하면서 향후 한류가 크게 발전할 수 있는 디딤돌을 놓기도 했다.
이처럼 대중문화 전반에 걸쳐 전무후무한 업적을 쌓은 김 대통령에게 ‘대중문화 대통령’이라는 호칭이 붙는 것은 지극히 당연해 보인다. 그런데 여기서 멈추지 않고 김 대통령이 대중문화에 기여한 업적 중 눈 여겨 봐야 할 부분이 또 있다. 그것은 이전 정권까지는 무시되거나 경시 받던 가요와 예능이라는 장르의 위상을 높인 대통령으로도 기억되어야 할 것이라는 점이다.
김 대통령 이전까지 가요와 예능은 알게 모르게 대통령에게나 대중들에게 경시되는 분위기가 존재했다. 영화나 드라마에 비해 가요와 예능은 낮게 인식되는 측면이 있었다. 이전 대통령들이 영화를 보러 극장을 가고 영화에 대한 언급은 종종 해도 동시대 인기 가수들에 대한 관심은 보이지 않았다.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진화한 예능 프로그램도 천박하다며 규제나 간섭만이 있었을 뿐이다. 하지만 김 대통령은 DJ DOC의 히트곡을 선거 로고송으로 쓰고 서태지에 대해 커다란 관심과 애정을 보였다. 예능 프로그램은 후보 시절 ‘일밤’에 갑작스런 출연 요청을 받아들인 것은 물론 당선 후 최초로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한 대통령이 됐다.
이런 모습들이 젊은 층의 표를 공략하기 위한 정치 공학적인 행동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서민과 젊은 층의 장르인 가요와 예능 프로그램에 대한 애정과 관심은 당선 후에도, 임기 종료 후에도 계속 됐다. 그러니 정치적으로만 해석할 일은 아닌 듯싶다.
이러한 김 대통령의 애정은 (동시대 젊은 가수들의 인기) 가요와 예능에 대한 장년층들의 시각이 긍정적으로 바뀌는데 분명 기여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가요와 예능은 김 대통령 시절 산업적으로나 영향력 측면에서도 전성기를 열었다.
가끔 가요계 한편에서는 IT 시대를 연 김 대통령에 대한 원망을 털어 놓는 이도 만날 수 있다. 인터넷 시대가 열리면서 불법 복제 문제 때문에 가요계가 어려워졌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이런 시각은 정확한 평가라고 받아들이기에는 다소 편협하다. IT시대는 문명의 발전상 필연적으로 올 수 밖에 없는 흐름이다.
이를 앞당겼다고 해서 잘못됐다고 평가할 수는 없다. 불법 복제에 대한 대중들의 안이한 인식과 가요 종사자들의 신속하지 못한 대처를 아쉬워 할 수는 있어도 말이다. 그보다는 자유롭게 창작하고 노래 부르고, 소재의 제약이나 자기 검열이 대폭 줄어든 분위기에서 예능 프로그램을 만드는 시대를 열었던 김 대통령을 기억하고 추모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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