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이외수 선생은 “내게는, 타고난 재능으로 고수에 이른 사람보다는 피나는 노력으로 고수에 이른 사람이 훨씬 더 위대해 보이고, 피나는 노력으로 고수에 이른 사람보다는 그 일에 미쳐 있는 사람이 훨씬 더 위대해 보인다. 그러나 그보다 훨씬 더 위대해 보이는 사람은 그 일을 시종일관 즐기고 있는 사람이다.”고 어느 책머리에 써놓았다.
자신이 하는 일을 즐기는 경지에 이르는 것은 말이 쉽지 아무나 흉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즐기는 경지에 도달한 사람은 달인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구대성(40. 한화 이글스)이 바로 그런 범주에 드는 선수이다. 구대성의 진면목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게임이 최근 두 차례 있었다.
9월 1일과 2일 잠실구장에서 가졌던 두산 베어스전에서 구대성은 이틀 연속 등판했다. 1일 경기에선 7회에 등판해 5타자를 상대로 1피안타, 2탈삼진으로 막아냈다. 까다로운 타자 고영민과 김현수를 맞아 허를 찌르는 노련한 투구로 삼진 아웃 시켰다. 2일엔 한 술 더 떴다. 5회 2사 1루에서 등판, 정수빈을 삼진으로 처리했고, 6회엔 이종욱과 고영민을 거푸 삼진으로 물러나게 만들었다. 7회에도 선두 최준석에게 2루타를 내줬지만 후속 이원석과 임재철을 삼진으로 돌려세웠다.
공빠르기가 140㎞대에 못미쳤지만 노련한 수읽기와 특유의 ‘몸비틀기 투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공이 타자들의 예측을 벗어나는 곳으로 파고들었다.
불혹의 나이에도 그런 투구를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놀랍다. 위기상황에서 마운드에 올랐지만 전혀 서두르지 않고 그저 뚜벅뚜벅 걸어가듯이, 자신의 스타일대로 알듯 모를듯한 가벼운 미소를 머금은 채 타자를 상대하는 모습은 능수능란하다는 표현이 딱 들어맞는다.
구대성은 몸이 온전치 않은 가운데서도 올해 63게임이나 등판했다. 등판횟수가 한화 구단 안에서는 물론 가장 많고 8개 구단 통틀어서도 LG 트윈스의 류택현(66게임) 다음으로 많다. 마운드의 마당쇠 노릇을 묵묵히 수행해나가고 있는 것이다. 성적은 46이닝을 던져 7홀드, 47탈삼진 평균자책점 4.50이다. 이닝당 탈삼진율이 1을 넘는다.
구대성은 “그 동안 수술을 3번이나 했고 지겨운 재활 훈련과 싸웠다. 조대현 트레이너와 1주일에 3~4차례 내전근 강화 및 좌우측 균형운동을 실시했고 요즘은 더워서 2차례 정도 실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성기 때의 구위는 아니더라도 스스로 “스피드는 예전에 비해 상당히 줄었지만 볼끝은 예전과 같은 수준으로 돌아온 것같다”는 진단을 내린다.
(구대성은 2007년 제주도 시범경기에서 부상(왼쪽 무릎 내측 측부인대 염좌)을 당했고, 2007년 10월에 대전 S&K병원에서 내측측부인대 재건술 실시했으며 2007년 12월에 핀 제거수술을 받았다. 2008년 4월에도 핀제거수술을 받았고, 그 해 6월 13일에야 잠실 LG전에 등판할 수 있었다. 2007년에 수술할 때는 2008년 5월이면 등판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예상보다 늦어져 힘들었다고 설명했다.)
투수들의 재활론에 일가견을 갖고 있는 김시진 히어로즈 감독은 멀고 험한 재활과정을 이렇게 설명한 적이 있다.
그에 따르면, 통증의 기억은 오래 간다. 김시진 감독 역시 그런 고통을 경험했다.
‘1986년에 부상을 당했는데 병원에 가서 장애인 진단을 받았다. 너무 많이 던지다보니 곧게 펴져야할 팔이 휘어져 있었다. 투수들은 많이 던지고 난 후 충분한 휴식을 통해 근육을 풀어줘야 하는데, 요즘처럼 팔의 중요성을 크게 못느껴 그러질 않은 것이 결국 고질병이 된 것이다. 일종의 투수 직업병이었다. 재활은 시간과 자기자신과의 싸움이다. 재활 시간은 길고 더디다. 고통을 이겨내지 않으면 재기가 힘들다. ‘오늘은 적게 던지고 내일 많이 던져보자’하는 마음이 시도 때도 없이 불쑥불쑥 솟아 오른다. 자신과 끊임없이 갈등하고 타협한다. 그런 시간들을 견뎌내야한다. 차라리 고통을 즐길 수 있는 수준까지 가야한다.’
김시진 감독이 설파한 재활론의 골자이다.
구대성은 견뎌냈고,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고 돌아왔다.
한화는 송진우(43)를 비롯 정민철(37), 문동환(37) 등 노장 투수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마운드에서 떠나갔다. 이제 구대성만이 남았다.
구대성은 솔직하게 자신의 투수 생명에 대해 “모르겠다”고 말했다. “게임 때 안타를 맞을 때도 있지만 중간에 등판하는 지금 보직의 경우 연투능력이 안될 때는 그만둬야 하지 않겠나?”하고 반문했다. 그렇지만 “지금은 체력이 충분히 된다고 자부한다”고 단호하게 덧붙였다. 계속 뛸 수 있다는 자심감을 드러낸 것이다.
구대성은 “내년에는 몸 안 아프고 계속 체력을 보강하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한 시즌을 마치는 게 목표”라고 선언했다.
김인식 감독도 구대성의 선수생활 연장에 선뜻 동의했다. “저만한 원포인트 릴리프가 없다”는 게 김 감독의 생각이다.
구대성이 계속 던진다면, 내년 시즌 현역 최고령 투수가 될 것이다. 비록 ‘대성 불패’ 소리를 들었던 시절은 저만치 멀어졌지만 그는 여전히, 변함없이 한화 마운드의 일각을 떠안을 참이다.
홍윤표 OSEN 대표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