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콘’ 10주년…한국 예능의 4대 혁명, 가장 긴 생명력의 혁명
OSEN 기자
발행 2009.09.07 07: 25

[OSEN=최영균의 인사이더] 관계자들과 이야기를 나눠 보면 한국의 방송 예능에는 크게 네 번의 전환점이 있었다. 사람에 따라 조금 다른 평가가 나오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 네 번의 전환점은 특정 프로그램이 등장하면서 시작됐다.
1980년대 중반까지 한국의 예능은 MBC의 ‘웃으면 복이와요’로 대표되는 ‘코미디’라고 간략하게 정의돼 있었다. 그러다 1980년대 말 MBC의 ‘일밤’이 등장하면서 ‘버라이어티’라는 개념이 생겼다. 이어 ‘자니윤쇼’가 SBS에서 시작되면서 토크쇼라는 장르가 한국에도 토착화됐다(혹자는 교양과 예능 사이에서 경계가 모호했던 ‘자니윤쇼’ 대신 ‘서세원쇼’를 예능 분야에서의 토크쇼 아이콘으로 봐야 한다는 견해를 내놓기도 한다).
그리고 세번째가 바로 ‘개콘’, KBS의 ‘개그 콘서트’다. 버라이어티에 밀려 멸종돼 가던 정통 코미디를 한국에서는 개념조차 희미했던 스탠드업 코미디 형식으로 되살려내면서 이후 ‘웃찾사’ ‘개그야’ 등 아류 프로그램이 등장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그리고 한국 예능의 4대 혁명 중 마지막은 리얼 버라이어티로 예능의 트렌드를 바꾼 MBC의 ‘무한도전’이 꼽힌다. 누군가는 1990년대 중반 MBC의 김영희 PD가 ‘양심 냉장고’로 문을 연 ‘공익형 예능’을 포함해 5대 혁명으로 꼽기도 하지만 대개 이 네 차례의 전환점을 주목한다.
이중 ‘개콘’이 6일 방송 10주년을 맞았다. 10년을 기념하는 성대한 방송을 화려한 출연진과 함께 선보였는데 ‘개콘’은 화려하기 그지없는 기념 방송분이 무엇인가 양에 안 차는 느낌이 들 만큼 지난 10년 간 상상을 초월한 괴력의 행보를 보여왔다.
앞서 언급한 예능의 4대 혁명 프로그램들은 이런저런 부침을 겪었다. ‘일밤’의 경우 현재 겪고 있는 위기를 과거에도 여러 차례 맞으면서 새로운 포맷을 개발하는 것으로 극복을 해왔다. 토크쇼 장르는 거의 사양 장르가 됐다가 최근 ‘무릎팍도사’로 간신히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반면 ‘개콘’은 10년을 한결 같이 정상에 있었다. 10년 평균 시청률이 19%라는 기적 같은 수치에서 알 수 있듯 이렇다 할 큰 위기가 없었다. ‘개콘’의 뒤이어 등장한 ‘웃찾사’나 ‘개그야’가 인기를 얻다가도 바닥을 경험하는 동안에 늘 한결같았다. 아마도 예능 뿐 아니라 방송의 모든 분야를 통틀어서 단일 컨텐츠가 이렇게 오랜 기간 변동 없이 높은 인기를 유지한 경우는 찾기 힘들 것이다.
‘개콘’의 이런 초현실적인 성과는 특정 스타에 의존하지 않는 시스템이 구축돼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핵심 출연진의 타방송사 이탈 사건 등 많은 위기가 있었지만 이름값에 의존하지 않고 철저히 경쟁 체제를 통해 웃음 경쟁력 있는 소재를 무대에 올리는 ‘개콘’만의 시스템이 아무래도 10년 동안 권좌를 유지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아닐까 싶다.
‘개콘’의 이런 장기 집권은 바람직하다. ‘개콘’은 모든 예능의 원형인 스탠드업 코미디다. 스탠드업 코미디는 희극 공연의 원형 같은 형식이다. 가장 접근하기가 쉬운 포맷이다. 시청자들의 나이나 성별, 사회 계층에 상관없이 가장 넓은 범위의 대중이 즐길 수 있는 희극의 형태다.
예능인들에게도 스탠드업 코미디는 고향 같은 것이다. 현재 ‘MC킹’ 유재석은 2002년 A급 MC로 자리잡자 마자 ‘코미디천국’이라는 스탠드업 코미디 형태의 프로그램으로 달려갔다. 당시 프로그램은 실패했지만 유재석은 최근 인터뷰에서 아직도 코미디에 대한 꿈을 꾸고 있다고 털어 놓았다.
MC를 하는 것보다는 몇 배나 에너지, 시간 소모가 많은데도 코미디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 진정한 예능인의 본능으로 보인다. 이처럼 시청자에게나 예능인에게나 웃음의 원형질 같은 스탠드업 코미디가 예능계의 한 기둥을 굳건히 지키고 있는 상황은 유행에 따라 한쪽으로 쉽게 쏠리는 한국 예능계에서 분명 웃음의 다양화를 위해 바람직한 일이다.
‘개콘’, 지금처럼만 해라. 그리고 20주년 때 또 보자.
/대중문화가이드 ck1@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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