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욕시의 양키 스타디움에서 필라델피아 필리스가 뉴욕 양키스에 2승4패로 무너진 2009 월드시리즈 6차전 직후 미국 전역에 경기를 생중계를 한 의 카메라맨은 진 팀의 덕 아웃 분위기를 스케치 하면서 박찬호에게 잠시 초점을 맞췄다. 화면 상 수염이 덥수룩한 박찬호의 얼굴 표정은 언뜻 보기에는 무덤덤한 것 같았으나 더할 수 없는 안타까움이 그대로 읽혀졌다. 그는 36세의 나이에 처음으로 월드시리즈 우승 반지에 도전했으나 결국 놓치고 만 억울함으로 눈물마저 흘릴 것처럼 보였다. 그래도 가 비록 짧은 순간이나마 박찬호를 주목한 것은 의미가 있다. 그가 이번 월드시리즈 동안 필리스에서 중요한 몫을 해냈다고 하지만 한 때 잊혀지기까지 했던 베테랑 불펜 투수임을 감안하면 이례적인 관심이 분명했다. 바로 메이저리그에서 박찬호의 달라진 위상을 잘 보여준 것이다. 월드시리즈 무대를 밟는다는 것 자체가 미(美) 전국구 스타로 인정받는 것이어서 어쩌면 박찬호는 1994년 메이저리그 데뷔 이후 가장 화려한 순간을 경험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메이저리그가 박찬호에게 주목한 여러 사연들이나 이유 중의 하나는 그 나이에 다시 시속 96마일(154km) 이상의 공을 던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박찬호보다 두 살 위이기는 하지만 필라델피아의 제 2선발로 2경기에 등판해 2패에 평균자책점 6.30을 기록한 페드로 마르티네스(38)는 부상에서 회복한 후 최고 구속이 시속 91마일(146km)에 머물렀다. 전성기에 가까운 볼 스피드를 전혀 찾지 못하고 있다. 반면 박찬호는 재 장착한 시속 96마일의 패스트볼을 앞세워 월드시리즈에서 4경기에 등판해 3⅓이닝을 던지며 탈삼진 3개 포함 2피안타 무자책점으로 방어율 0을 기록했다. 양키스가 자랑하는 메이저리그 최고 슈퍼 스타들인 데릭 지터, 마크 테셰이라 등을 상대하면서 구사한 투심과 포심 패스트볼이 모두 타자와 승부할 수 있을 만큼 위력적이었다. 필자는 김병현이 애리조나의 마무리 투수로 뉴욕 양키스를 상대로 월드시리즈 경기를 펼쳤던 피닉스 뱅크 원 볼파크 인근에서 TV로 월드시리즈 6차전을 지켜봤다. 김병현이 홈런을 허용하고 마운드에 주저 앉았던 장면도 저절로 떠올랐다. 문득 텍사스에서 샌디에이고로 트레이드 된 후 재기에 피 땀을 흘리던 박찬호의 힘겨웠던 여정을 회상하게 됐고, 그러다가 무려 2년 10개월 여 전인 2007년 1월, LA에 있는 USC 대학에서 훈련하던 중 박찬호 자신이 밝힌, “앞으로 시속 96마일을 다시 던질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당시로서는 불가능하게 느껴졌던 말이 생각났다. 박찬호는 텍사스와 계약한 후 허리 부상 등의 이유로 한 동안 최고 시속이 92마일(약 148km) 이하에 머물기도 했는데 다시 스피드가 빨리질 것이라는 예상이 마침내 2009시즌에 현실화 된 것이다. 그 때 박찬호는 돌이킬 수 없는 마지막 도박이 될 수 있는 투구 폼 변경 작업을 시작하면서 성공할 경우 그 효과를 내다 본 것이다. 박찬호가 무려 3년 가까이에 걸쳐 투구 폼 변경 작업을 완성하고 최고의 무대인 월드시리즈에서 수염을 휘날리며 시속 96마일의 강속구를 다시 구사하게 된 것을 보면서 야구에 대한 그의 집념에 새삼 감탄하게 됐다. 2007년 1월 30일 USC 구장에서 치열하게 펼쳐졌던 도전을 소개한다. 당시 34세의 박찬호는 USC 대학 팀인 트로잔스 타자들을 상대로 연습 투구를 마친 후 구장 3루 쪽 덕 아웃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지난 2006년 제1회 월드베이스볼 클래식(WBC)에서 한국의 후배 투수들이 던지는 것을 보고 새롭게 깨달은 것이 있다. 오승환을 비롯해 한국의 투수들이 아주 인상적으로 포심 패스트볼을 던졌다. 중요한 것이 바로 그것이다. 내가 좋았을 때 나는 타자 앞에서 떠오르는 포심 패스트볼과 날카로운 커브를 던졌다”고 밝혔다. 이어서 그는 USC 트로잔스 타자를 상대로 던진 투구의 구위에 대해 “밸런스가 좋아졌다”고 만족해 했다. 당시 시점은 샌디에이고에서 자유계약선수(FA)가 된 그가 새 팀을 찾지도 못하고 있었을 때이다. 그렇게 어려운 처지에서 박찬호는 투구 폼 변경 작업을 시작했다. 박찬호는 필자가 “어느 정도 진전이 되고 있느냐?”고 묻자 “아직은 바꾼 투구 폼이 몸에 완전히 익혀지지 않았다. (어느 팀이 될 지 모르지만) 스프링캠프에 가서 메이저리그 타자를 상대로 본격적으로 투구를 하면 확실하게 자리를 잡게 될 것으로 본다”고 대답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투구 폼을 바꾸고 있는가?”하는 질문에 대해 박찬호는 “먼저 투구에서 내 딛는 스트라이드의 폭을 넓혔다. 발 길이를 기준으로 4개 정도의 폭이었던 것을 6개로 늘렸다. 그랬더니 릴리스 포인트가 홈 플레이트 쪽으로 가까워져 볼 스피드가 빨라진 느낌이다. 내가 빠른 공을 던졌을 때는 스트라이드 거리가 넓었다. 그런데 허리가 아프면서 소극적이 됐고 위 아래로 떨어지는 투심 패스트볼 투수로 바뀌었다. 텍사스 레인저스에서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으면서 부정적인 생각과 나쁜 투구 버릇이 생긴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샌디에이고에서 뛰었던 전 년도인 2006 시즌 초반에 구위가 좋았는데 왜 투구 폼을 바꾸느냐?”고 의문을 제기하자 당시 박찬호는 웃으며 “샌디에이고로 와서 포심 패스트볼을 다시 많이 던지기 시작했다. 역시 WBC에서 포심을 위주로 던지는 우리 한국의 후배 투수들을 보고 배운 것이다. 그리고 이번에 USC에서 훈련을 시작하면서 이 대학 출신의 야구 인들과 얘기를 할 기회가 있었는데 역시 같은 조언을 들었다. 스스로 생각해도 포심 패스트볼을 잃어 버린 뒤 투수로서 급격하게 노화 현상이 온 것 같다”고 답변했다. 마지막으로 “그럼 새 투구 폼으로 예전의 스피드를 찾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박찬호의 대답이 인상적이었다. 혹시 그럴지도 모르겠다는 말로 흘려 들어버렸던 일이 오랜 시간이 지나 2009년 필라델피아에서 마치 예언이라도 한 것처럼 현실화된 것이다. 박찬호는 그 질문에 “물론 96마일(154㎞) 이상이 다시 나올지는 모른다. 그러나 홈 플레이트 앞쪽으로 릴리스를 하게 되면서 볼의 움직임이 살아나는 것 같다. 볼의 회전도 많아졌다. 2000년 시즌에 18승을 할 때도 포심 패스트볼과 커브를 섞어 삼진을 많이 잡았다. 높은 쪽으로 떠오르는 포심 패스트볼이 효과적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텍사스로 가면서 투심을 낮게 던지려는 데만 신경을 쓰다가 가운데로 몰려 두들겨 맞았다”고 덧붙였다.(현재는 결별했으나 당시 박찬호의 개인 트레이너로 재기 훈련과 투구 스케줄을 관리하던 이창호 트레이너는 릴리스 포인트가 1인치, 약 2.54㎝ 홈 플레이트에 가까워지면 시속 2마일, 약 3.2㎞ 구속이 빨라지는 효과가 있다고 설명해줬다. 위의 인터뷰 내용은 당시 필자의 기사를 바탕으로 구성한 것이다.) 박찬호가 2009 월드시리즈에서 보여준 구위를 보면 내년 시즌 당장 한국프로야구 무대로 가도 37세의 나이에 볼 스피드까지 최고로 인정 받을 수 있다. 아내가 해주는 매운 낙지 볶음이 비결이라는 얘기까지 나올 정도로 배경에 관심이 모아졌던 그의 볼 스피드는 새로운 투구 폼의 완성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상당 기간 유지될 것으로 예상된다. 박찬호가 아주 매운 낙지 요리를 좋아하는 것은 사실이다. 과거 서울 무교동에 단골 집이 있었다. 박찬호가 2009시즌의 화려한 부활을 발판으로 과연 어느 팀과 계약을 하고 어떻게 2010 시즌을 시작할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애리조나 피닉스에서, 전 일간스포츠 편집국장, MLB 특파원 2009 월드시리즈에서 필라델피아의 핵심 불펜 투수로 화려하게 부활한 박찬호의 덥수룩한 얼굴은 2007년 1월 그가 USC 대학 구장에서 투구 폼 변경 작업을 하던 모습과 비슷하다. 다만 그 때는 팀을 찾지 못해 고민이 많았다. 당시 사진의 표정에도 잘 드러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