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최영균의 인사이더] MBC ‘황금어장’의 ‘라디오스타’가 실제로 ‘고품격 음악 방송’이 됐다.
‘라디오스타’는 코믹한 자학과 인신공격으로 MC와 출연자의 가식을 벗겨내며 웃음을 선사하고 있다. 유쾌한 ‘막말 방송’이지만 스스로를 ‘고품격 음악 방송’이라 역설적으로 규정하면서 또 다른 웃음을 덤으로 제공해 왔다. 하지만 이번에는 진짜 ‘고품격 음악 방송’이 됐다. 그렇다고 원래 목적인 웃음도 놓치지 않았다. ‘김현식 트리뷰트’편이 그러했다.
‘라디오스타’는 이번 ‘김현식 편’으로 가수에 대한 회고나 추모가 부족했던 한국 예능의 허점을 잘 메워주는 방송을 선보였다. 가수는, 다른 한 축인 MC들과 함께 한국 예능의 양대 기둥 노릇을 해왔다. 연기자에 비해 손쉽게 섭외가 가능한 게스트로 또는 패널로 예능 프로그램이 성립될 수 있도록 만들었다.
하지만 예능 프로그램의 한 줄기인 가요 프로그램에서조차도 현재의 인기 가수들 소화하기에 바빠 가요계의 전설들에 대한 기억을 되살리는 일은 소흘했다. 점점 더 자극적인 웃음만을 찾아가게 되는 다른 예능 프로그램들도 분위기 다운시키는 추모 아이템은 좀처럼 피해가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교양 파트의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정도를 제외하면 전설적 가수들을 다룰 분야는 예능 프로그램 밖에 없다. 더군다나 가수들과 가장 밀접하게 관련돼 있는 예능 프로그램들이 지금은 활동할 수 없는 가요계의 전설들을 외면하는 바람에 그에 대한 예우와 회고, 그리고 남겨진 자산을 지속적으로 환기시켜 다음 세대로 확실히 전달하는 작업은 길을 잃었다.
최근 들어서는 신문 잡지 등 문자 매체에서도 김현식이나 유재하에 대한 추모가 급격히 줄어버린 분위기다. 이런 상황에서 ‘라디오스타’는 김현식을 가장 잘 알면서도 예능에서 웃음도 함께 줄 수 있는 봄여름가을겨울의 김종진 전태관 그리고 이승철을 섭외해 예능이 추모를 어떻게 소화할 수 있는 지를 보여줬다.
중간중간 ‘라디오스타’의 원래 스타일인 김구라 신정환의 가벼운 막말 웃음 코드도 있었지만 전반적으로는 김종진 전태관 이승철이 소개하는 김현식의 에피소드만으로도 충분히 웃음을 유발해 냈다. 거기다 김현식의 뮤지션으로서의 삶, 그리고 가요계에 그가 지닌 영향력을 잘 전달해 추모와 회고도 함께 밀도 높게 펼쳐졌다.
‘라디오스타’의 이런 김현식 추모는 갑작스럽게 튀어나온 것은 아닌 듯 싶다. ‘라디오스타’는 그간 변진섭 윤상 유영석 같은 가요계의 전설적인 뮤지션들, Ref 룰라 노이즈처럼 한 시대 절정의 인기를 누린 스타 가수들, 그리고 예능에 적극적으로 출연하지는 않는 윤도현 클래지콰이같은 ‘음악형 가수’들을 꾸준히 불러 냈다.
이런 가수들이 새 음반을 내놓고 홍보에 필요해 출연한 경우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꽤 있었고 전반적으로 다른 예능 프로그램들과는 다소 다른 기준이 느껴지는 출연자 섭외를 보여왔다. 그리고 이 출연자들을 웃음거리로만 만들고 끝난 경우도 있었지만 대체로 이 가수들과 관련된 추억을 되살리고 스타의 이미지를 벗겨냄으로써 이 가수들이 좀더 대중들에게 가까운 느낌을 줄 수 있도록 했다. 그들의 시대와 그들의 음악을 좀더 쉽게 회고하고 그들에게 관심을 갖도록 만들었다.
그렇다고 ‘라디오스타’가 가요계를 위한 엄청난 사명감을 갖고 출연자를 섭외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라디오스타’는 재미 외에도 종종 묵직한 한 방이 있는 섭외와 진행으로 가수들을 다뤄줬다. 그런 기조가 이번 ‘김현식 편’으로 박수 받을 만한 방송분을 만들어내는 원동력이 됐을 것이다.
아무튼 ‘라디오스타’는 최근 들어, 초기 가장 중요한 MC였던 김구라가 막말을 다소 줄이면서 전체적으로 강렬함이 다소 줄어드는 분위기인 것도 사실이지만 프로그램 전체적으로는 점점 원숙해져 가고 있는 느낌이다. 이번에 바람직한 추모 예능 방송 ‘김현식 편’을 보여줬으니 내년 2월에는 김광석도, 내년 11월에는 유재하도 다뤄줄 수 있는 ‘고품격 음악 방송’이 계속 됐으면 한다.
/대중문화가이드 ck1@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