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국민 타자’라고 불리던 이승엽(33)은 2004년 일본 프로야구 진출 결정에 앞서 메이저리그 LA 다저스를 방문했다. 그러나 결국 일본의 지바롯데 마린스 유니폼을 입었고, 현재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뛰고 있다. 당시 이승엽은 LA 다저스로부터 기대 이하의 평가를 받자 ‘일본 프로야구를 거쳐 반드시 메이저리그에 도전해 자신은 물론 한국 타자들의 진가를 보여주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안타깝지만 앞으로 이승엽이 메이저리그 도전을 시도할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지난 3월 열린 제2회 월드베이스볼 클래식에서 일본 야구계를 놀라게 하면서 메이저리그에서도 통할 수 있다는 평가를 받았던 한국야구의 슬러거, 김태균(27)은 시즌 후 한화에서 자유계약선수(FA)가 되자 공교롭게도 이승엽이 지나 간 길을 그대로 밟기 시작했다. 지바롯데 행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그는 “일본 프로야구를 발판으로 삼아 반드시 마지막 꿈인 메이저리그 진출을 이루겠다”고 밝혔다. 그런데 김태균이 전격적으로 일본 행을 결정하자 메이저리그 LA 다저스 관계자가 ‘우리도 지켜보고 있었는데 아쉽다’는 뜻을 나타냈다. 이러한 부분 역시 이승엽의 과거와 흡사하다. LA 다저스는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초로 한국에서 태어난 투수 박찬호를 데뷔시켰고 이승엽에게도 큰 관심을 나타냈다. 청소년 국가대표 감독을 지낸 안병환 씨가 현재도 LA 다저스의 정식 한국 담당 스카우트로 일하고 있다. 이승엽은 지난 2003년 12월 21일 LA 다저스 구단을 공식 방문했다. 그가 다저스타디움에 모습을 드러내자 한국과 일본의 취재진이 대거 몰려 그의 메이저리그 행 가능성을 주목했다. 우연의 일치겠지만 당시 이승엽의 나이는 현재 김태균과 같은 27세였다. 한국야구가 21세기에 배출한 두 명의 슬러거가 모두 27세의 나이에 한국프로야구를 떠나 더 넓은 무대로 나서는 것을 결심했고 기착지가 일본으로 같은 것이다. 이승엽이 LA 다저스 입단 가능성을 타진했던 때는 박찬호와 LA 다저스가 결별한 후 2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당시 LA 다저스에서 이승엽을 만났던 실무 책임자는 댄 에번스 단장이다. 댄 에번스 단장은 한국어 명함까지 만들어가지고 다닐 정도로 한국 야구에 대해 친밀감을 표시했던 인물이었지만 정작 박찬호의 재계약 포기와 한국인 타자 이승엽의 영입 문제에 있어서는 개인적인 정(情)과 거리가 멀었다. 이승엽에 대해서 어떤 과정을 거쳐 평가를 내렸는지 모르지만 LA 다저스가 제시한 1차 조건은 일본 프로야구의 수준에 훨씬 못 미쳤다. 이승엽이 불쾌함까지 나타내자 메이저리그 엔트리 보장과 계약금 인상 등의 수정안을 내놓았으나 끝내 협상은 결렬됐다. 그런데 일본에서 지바롯데 마린스를 우승으로 이끌고 최고의 명문 구단인 요미우리 4번타자의 영광을 누린 이승엽은 현재 좋지 않은 몸 상태에 자신감 마저 잃고 있는 모습이다. 요미우리가 부진에 빠진 외국인 선수들에게 자극 요법으로 사용하는 특유의 ‘뒤흔들기’로 이승엽은 한국 최고 타자라는 자존심에 더 큰 상처를 받았다. 필자는 문득 만약 이승엽이 일본 프로에 진출하지 않고 곧 바로 메이저리그로 갔다면 현재 그의 위상이 어느 정도가 돼 있을까 의문을 가져 보았다. 그의 타격 기술과 타고난 승부 근성, 그리고 끝없는 노력, 성실함을 고려하면 일본에서보다 더 큰 성공을 거두었을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메이저리그는 박찬호의 재기 성공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선수에게 충분한 기회를 주고 기다린다. 특히 정상급의 자리에 올랐던 선수에 대한 배려와 인정은 더 크다. 40세가 넘어서도 기량만 되면 얼마든지 간판 스타로 존중 받고 있다. 마이너리거에서 일단 메이저리거만 되도 엄청나게 다른 대우에 놀라게 된다. 김태균이 제2회 월드베이스볼에서 활약할 당시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도 예외 없이 상당한 관심을 나타냈다. 물론 이승엽에 대한 과거 평가와 김태균의 경우를 객관적으로 비교하기는 어렵다. 현장에서 취재를 하면서 알게 된 김태균에 대한 공통적인 평가는 풀 시즌을 뛴다고 가정했을 때 당장 20홈런 이상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 정도로는 메이저리그 구단들이 적극적으로 스카우트에 나서기는 힘든 수준이다. 더욱이 그는 수비 부담이 적은 1루수이기 때문이다. 메이저리그 기준으로는 1루수라면 30홈런 안팎을 기록해야 한다. 다만 당시 얘기를 나누었던 모 스카우트는 김태균에 대해 “아시아 야구 타자로는 보기 드물게 공을 끝까지 기다려 몸 쪽으로 최대한 붙여놓고 치는 탁월한 기술을 가지고 있다. 162경기를 치르는 메이저리그를 체력적으로 먼저 극복하고 투수들을 분석하게 되면 30홈런 이상도 가능할 것으로 본다”며 2~3년 후 메이저리그에서 성공할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았다. 그러나 김태균은 시즌 후 메이저리그를 적극적으로 검토하지 않은 것 같다. 물론 메이저리그에서 스카우트 의사를 정식으로 나타낸 구단들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본인이 에이전트를 통해 길을 찾았다면 여러 구단들을 상대로 테스트를 자청할 수도 있었다. 한편으로는 성공 확률과 수입을 안정되게 보장하며 적응이 쉬운 일본 프로야구가 더 편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졌을 수도 있다. 그래도 이승엽에 이어 김태균의 결정은 모두 아쉬움을 남긴다. 27세의 나이라면 더 큰 도전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박찬호가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이후 16년이 흐른 지금도 최고의 스포츠 스타로 인정받는 이유가 당시로서는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무모한 도전’ 때문이다. 그 도전이 보란 듯이 성공해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었다. 물론 본인의 타고난 어깨와 노력이 성공에 결정적으로 작용했지만 메이저리그라는 거대한 시장이 잠재력을 지닌 선수에게, 그 선수가 외국인이라고 해도 충분히 제공하는 ‘기회’도 박찬호의 현재를 있게 만들었다. 한편으로 한국 프로야구가 일본 프로야구의 팜 시스템(farm system)이자 변방이 돼 가고 있는 것이 아닌지 우려된다. 한국의 간판 스타들이 기꺼이 일본의 용병이 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부디 김태균은 일본에서 멈추지 말고 자신의 마지막 꿈인 메이저리그 진출을 반드시 이루겠다는 현재의 각오를 잊지 말기 바란다. /전 일간스포츠 편집국장, MLB 특파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