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당시 고졸 신인 사상 최고의 계약금인 10억 원을 받고 KIA 타이거즈에 입단해 큰 기대를 모았고 그 이상의 실망도 안겨주었던 우완 정통파 한기주(22)가 지난 11월 20일 결국 LA의 프랭크 조브 클리닉에서 ‘토미 존 서저리’를 받았다. 오른 팔꿈치의 파열된 인대를 재건하고 뼈 조각 2개를 제거하는 수술 과정이었다. 조브 박사가 1974년 LA 다저스 투수, 토미 존의 왼 팔꿈치 인대 수술을 성공시킨 이후 ‘야구 수술’에서 가장 폭발적으로 증가한 ‘토미 존 서저리’는 수술을 받기만 하면 투수의 공이 더 빨라진다는 환상까지 갖게 해주고 있다. 한기주가 최소 1년 이상이 소요되는 재활을 성공적으로 마친 다면 이후 과연 어떤 구위를 보여줄지 관심이 모아진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토미 존 서저리’를 받은 후 예전의 기량을 회복한 투수들은 그리 많지 않다. 아니, 극히 일부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반드시 명심해야 할 것은 ‘토미 존 서저리’는 선수 생명을 걸고 마지막으로 해야 하는 수술이라는 사실이다. 미국 야구계에서는 한 때 고교, 대학의 아마추어 투수들과 그 부모들이 ‘토미 존 서저리’를 받는 것을 마치 어떤 훈장을 타는 것처럼 생각해 사회 문제가 되기도 했다. 수술을 받았다는 것 자체가 그 만큼 자신이 대단한 투수였고 또 성공적으로 재활만 하면 과거보다 더 빠른 공을 던질 수 있다는 망상을 가졌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 야쿠르트 스왈로즈의 임창용의 경우는 수술 후 볼이 더 빨라졌다. 그러나 그 자신은 그것이 수술 효과 때문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다만 ‘통증이 없기 때문에 마음껏 던질 수 있게 됐고 그 결과 스피드가 더불어 빨라진 것이 아닌가’하는 의견을 밝혔다. 한기주의 경우는 우완 정통파 패스트볼 투수라는 측면에서 토미 존 서저리의 선례를 삼성 배영수에게서 점검해볼 수 있다. 필자는 지난 2007년12월 LA에서 배영수를 만나 그가 받은 ‘토미 존 서저리’에 대해 집중적으로 토론을 했었다. 배영수는 자신의 팔꿈치에서 빼낸 뼈 조각 사진들을 보여주기도 했으며 그 중 하나를 몸에 지니고 다니며 절치부심(切齒腐心), 재기를 다짐했다. ‘토미 존 서저리’의 창시자인 프랭크 조브 박사는 12월20일 한국프로야구 삼성의 에이스 배영수(26)의 수술 결과를 직접 점검했다. 그는 현재 너무 연로해 직접 수술은 하지 않고 제자인 랄프 감바델라 박사가 집도하는데 결과에 대한 평가 작업에는 반드시 참여한다. 이날도 지팡이에 의지해 배영수의 정밀 검사 결과를 보러 왔다. 배영수는 약 11개월 전인 1월27일 수술 후 2007시즌을 완전히 접고 2008시즌 복귀를 위해 재활에만 집중했는데 괌 마무리 훈련 기간 중 팔꿈치에 약간의 통증을 느꼈다. 정상적인 회복 과정이라는 것이 병원 측의 소견이었는데 본인이 불안해하자 삼성은 배영수에게 직접 LA로 가 결과를 확인해보고 자신감을 가질 수 있도록 배려했다. 이날 감바델라 박사는 ‘수술은 정말 잘 됐다. 통증이 있었던 것은 미세한 뼈 조각들이 아직 완전하게 자리를 잡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안심시켰다. 배영수는 삼성 라이온즈는 물론 한국프로야구를 대표하는 에이스급 투수였다. 경북고를 졸업하고 프로에 뛰어들어 2004년 17승2패, 방어율 2.61의 성적으로 다승 1위, 페넌트레이스 MVP의 영광을 안았다. 선동렬 감독이 2005, 2006년 한국 시리즈 2연패를 달성했을 때의 주역으로 월드베이스볼 클래식 대표였던 그는 수술 전까지 통산 68승44패 2세이브, 평균 자책점 3.66을 기록하고 있었다. 그날 수술 결과를 눈으로 보고 귀로 들은 배영수는 점심 식사 중 필자가 “언제 며칠 전 LA 다저스에 입단한 일본인 투수 구로다처럼 자유계약선수가 되느냐?”고 묻자 “2년 후”라고 대답했다. 삼성의 이문한 스카우트는 메이저리그가 일본프로야구 투수를 집중 스카우트하고 있는 당시 현상에 대해 “컨트롤이 안정돼 있는 것이 가장 큰 이유”라고 설명했다. 필자는 배영수에게 “구로다에게 전혀 뒤질 이유가 없다. 자유계약선수가 되면 메이저리그에서 찾는 투수로 재기해 일본야구의 공급원(팜 시스템)으로 전락해 가고 있는 한국야구의 자존심을 회복해 달라”고 부탁했었다. 당시 LA에서 박찬호와 김병현이 모두 후배 배영수를 만나 재기를 격려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꿈과 필자의 염원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 배영수는 2008시즌, 2009시즌을 마치고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얻었지만 이렇다 할 활약을 펼치지 못해 다른 구단들은 물론 메이저리그나 일본 프로야구에서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토미 존 서저리’ 후 재활이 완전히 이뤄지지 않았는지 볼 스피드도 예상만큼 올라오지 않았다. 오히려 간혹 통증이 재발하자 배영수는 선동렬 감독의 배려로 시즌 중반부터 일찌감치 2010년 재기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내년 시즌 활약 여부에 따라 배영수가 과거의 영광을 재현할지, 아니면 평범한 투수의 길을 걸을 것인지 결정될 전망이다. ‘토미 존 서저리’에 대해 한국과 일본 야구 출신들의 판단이 다른 것도 주목할 만하다. 한국 선수들은 수술에 대해 비교적 적극적이고 긍정적이다. 반면 일본 선수들은 ‘투수 경력이 끝날 수 있다’며 조심스러워한다. 대표적인 예가 LA 다저스에서 마무리 투수로 활약하던 사이토 다카시의 경우이다. 2008시즌 중반 사이토는 팔꿈치 통증으로 장기 결장하는 등 어려움을 겪었다. LA 다저스에서는 ‘토미 존 서저리’를 강력하게 추천했으나 당시 38세였던 그는 근력 강화와 재활을 고집하며 결국 수술을 받지 않았다. 나이가 많아 수술이 무의미하다는 생각으로 거부했던 것이다. 구단 주치의인 조브 박사까지 나서 설득했으나 끝내 실패하고 말았다. 한편으로는 수술을 받은 선수들의 성공 여부를 분석했을 때 한국 투수들은 메이저리그 투수들에 비해 성공 확률이 현저히 떨어진다. 그 이유에 대해 프랭크 조브 박사 팀에서는 ‘한국 선수들은 재활 기간을 충분히 가져야 하는데 마운드 복귀를 서두르는 경향이 강하다’는 견해를 밝혔다. 배영수가 조브 박사로부터 재검을 받기 5일 전인 2007년 12월15일, 그해 일본프로야구에서 12승8패, 방어율 3.56을 기록한 히로시마 카프의 에이스 출신 구로다 히로키(32)가 LA 센티넬라 병원에서 프랭크 조브박사가 이끄는 의료팀으로부터 정밀 신체 검사를 받았다. 어깨와 팔은 물론 전신 검진을 통과한 구로다는 LA 다저스와의 3년 간 총액 3530만 달러(당시 한화 약 328억 원) 계약이 최종 확정됐고 다음 날 다저스타디움에서 입단식이 열렸다. 그는 시애틀, 애리조나, 캔자스시티 등으로부터도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는데 액수가 더 많았던 4년 계약을 본인이 사양하고 3년을 택했다. 구로다는 LA 다저스에서 총액 기준 평균 연봉 1177만 달러(당시 약 109억 원)를 받게 돼 일본에서 그해 받은 약 300만 달러(약 28억 원) 연봉의 4배에 달하는 몸값을 보장받은 현실에 대해 “나도 놀랐다. 부담스럽다”고 소감을 밝혔던 기억이 난다. 필자가 지금도 간절히 기대하고 있는 것은 한국프로야구 출신 투수가 메이저리그에 당당하게 입성하는 것이다. 배영수와 한기주는 한 때 구로다에게 결코 뒤지지 않는 잠재력을 가진 강력하고 젊은 후보들이었다. 그들의 재기를 염원한다. /전 일간스포츠 편집국장, MLB 특파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