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신인왕에 도전했다가 마지막 순간 투표에서 졌지만 한국프로야구에서 고졸 신인으로는 사상 첫 ‘미스터 올스타’가 된 KIA 타이거즈의 우타자 안치홍(19)이 갑자기 ‘스위치 히터’ 도전을 선언하고 맹훈련 중이어서 귀추가 주목된다. 포철공고에서 진행된 KIA의 마무리 특훈 동안 왼쪽 타석에 들어서 타격을 하던 안치홍에 대해 황병일 수석코치는 ‘왼쪽 타석에서 친 타구의 위력이 더 좋다’며 ‘내년 시즌 스위치 히터 안치홍을 보게 될 것’이라고 예고까지 했다. 그런데 필자가 의문을 가지는 것은 프로야구 데뷔 첫 시즌 2할3푼5리 정도의 타율밖에 기록하지 못한 어린 타자에게 왜 더 힘들고 어려운 것을 요구하느냐이다. 물론 본인이 강력하게 도전 의사를 밝히고 한편으로는 고질적인 왼 손목 통증 등의 문제가 스위치 히터로 변신하려는 이유 중의 하나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지도자의 관점에서는 더 신중한 자세로 접근해야 한다. 스위치 히팅은 더할 나위 없는 장점을 가지고 있어 타자에게 확실히 더 많은 경기 출장과 타격 기회를 갖게 해준다. 기술적으로는 변화구(breaking ball)가 타자 쪽으로 가까이 날아와 스위치 히터가 더 치기 유리하다는 매력이 있다. 오른쪽 투수가 던지는 슬라이더의 경우 오른쪽 타자에게는 공이 타석까지 날아와 치려고 할 때면 자신에게서 먼 쪽인 아웃코스로 흘러나가 공략하기 어렵다. 그런데 같은 상황에서 타자가 왼쪽 타석에 있다면 자신으로부터 멀리 도망가는 공이 아니라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공을 칠 수 있다. 스위치 히터 변신 이론에 의하면 언제 적응 훈련을 시작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얼마나 간절하게 생각하고 집중해서 노력하느냐에 따라 성공 여부가 결정 난다는 주장이 유력하게 받아들여진다. 그렇다면 안치홍은 시기적으로 어떨까? 과연 이번 겨울 마무리 훈련과 스프링 캠프 등 최대 3개월 안팎의 연습 기간으로 스위치 히터 변신에 성공할 수 있을까? 스위치 히팅은 주로 오른쪽 타자가 왼쪽 타석에 들어서 왼손 투수보다 훨씬 많은 오른손 투수를 상대하기 위해서 시도하게 된다. 또 좌타석에서는 1루 베이스가 우타석보다 두 걸음 가까워지는 장점 등을 누리려고 우타자가 좌타자 훈련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좌타자가 우타자 훈련을 해서 스위치 히터가 되는 경우는 드물다. 이런 배경에서 안치홍의 스위치 히터 도전은 성공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문제는 치명적으로 실패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필자가 실패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하는 결정적인 근거는 준비 기간이 턱없이 부족하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안치홍은 서울고 재학시절이던 2007년 현 KIA 조범현 감독이 인스트럭터로 왔을 때 스위치 히터 도전을 처음 고려했다고 한다. 그러나 당시 손목 수술로 이어져 시도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 시기라면 안치홍에게도 분명 성공 확률이 더 높았을 것이다. 그리고 프로야구 데뷔 역시 스위치히터로 했을 가능성이 크다. 스위치 히터로의 변신은 정말 어려운 작업이다. 좌우타석에서 보는 스트라이크존의 시각적 차이를 극복해야 하는 것을 비롯해 자신이 선천적으로 타고난 본능을 완전히 거부하고 전혀 생소한 쪽에 적응해야 하는 고통 등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실제로 메이저리그에서 J.T. 스노우, 호세 발렌틴 같은 경우는 하다가 포기해 버렸고 최근에는 ‘타고난 대로 하는 것이 더 하기 쉬운 것 아닌가. 왜 어려운 것을 찾아서 고생하는가’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안치홍은 좌우의 균형이 잘 맞는다는 장점이 있다고 말한다. 그래도 선천적인 왼손타자와 같기는 어렵다. 한편으로는 스위치 히팅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컨택트 능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안치홍의 경우는 2할5푼도 안된 2009시즌 타율만을 놓고 볼 때는 컨택트 감각이 뛰어나다고 할 수는 없다. 타고난 대로 오른쪽 타석에 들어서서도 컨택트 적중률이 떨어지는데 생소한 왼쪽 타석에서 오른손 팔을 축으로 해서 좌우타석이 모두 비슷하게 하기는 어렵다고 봐야 한다. 사령탑인 조범현 감독의 관점에서는 안치홍이 스위치 히터로의 변신에 성공한다면 작전을 구사하는데 매우 유용해진다. 그런데 선수 자신이 어느 정도 적응하고 어떤 수행 능력을 보여줄지는 여전히 미지수이다. 지금도 현역 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LG 박종호의 전성기 만큼 성공할 수 있을까 의문이 간다. 자칫 타석에서 혼돈에 빠져 컨택트 능력, 타격 리듬, 파워까지 모두 잃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혹시 이상적인 결과만을 머리에 두고 욕심을 부리는 것이 아닌지 걱정된다. KIA 유니폼을 입고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끌었던 좌타자 최희섭은 메이저리그 시절 시카고 컵스를 거쳐 플로리다 말린스로, LA 다저스에 이르기까지 상대 선발 투수가 좌완으로 예고되면 선발 1루수 자리를 오른쪽 타자에게 내주고 맥없이 벤치만 지키고 있는 모습을 자주 보여줘 팬들을 안타깝게 했다. 메이저리그 특파원 시절 특히 최희섭이 있기에 항상 플로리다 말린스의 경기를 관심 있게 지켜봤던 필자는 그가 단지 상대 투수가 좌완이라는 이유로 제외되거나 교체될 때마다 ‘만약 최희섭이 스위치 히터(switch-hitter)라면 상대 선발 투수가 좌완이든 우완이든 상관없이 매일 경기에 출장할 수 있을텐데’하는 아쉬움을 가졌다. 최희섭은 시카고 컵스에서 2002년 9월 메이저리그에 데뷔한 이후 그런 차별(?)을 당할 때면 분명히 스위치 히터를 꿈꿔보기도 했을 것이며 뛰어난 스위치 히터를 보면 부러움도 들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필자는 최희섭이 미국에서 성장했다면 메이저리그로 올라오기까지의 과정에서 여러 차례 스위치 히터로의 변신을 권유 받았을 것으로 본다. 그가 우리나라에서 광주일고-고려대를 거치는 동안, 아니면 더 어렸을 적에 스위치 히팅(switch-hitting)에 관한 조언을 진지하게 해준 야구 지도자가 있었을까 궁금하다. 물론 현재의 최희섭도 훌륭하다. 그래도 플로리다에서 잭 매키언 감독이 KIA의 조범현 감독처럼 상대 선발 투수에 상관없이 꾸준히 기용만 해주었다면 196cm, 115kg의 거구에 괴력을 보유한 최희섭은 분명 한 시즌 30홈런 이상을 칠 수 있었다. 그러나 잭 매키언 감독은 좌우타자를 보유한 뒤 왼쪽 투수일 때 오른쪽 타자를, 오른쪽 투수일 때는 왼쪽 타자를 기용하는 이른바 플래툰 시스템(platoon system)의 추종자였다. 스위치 히터가 본격적으로 메이저리그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 이후이다. 1970년대와 1980년대 플래툰 시스템과 상대 타자가 우타자이면 우완 투수를, 좌타자이면 좌투수를 기용하는 상황에 따른 구원 투수 운용법(situational relief-pitching)이 폭발적으로 증가함에 따라 선수 본인은 물론 팀 차원에서도 스위치 히팅을 심각하게 고려하게 됐다. 이에 따라 1960년 한 시즌에 300타석 이상 출장하는 스위치 히터가 겨우 4명 밖에 없었던 것이 1970년 19명, 1980년 31명, 1990년 40명으로 늘어났다. 현재 메이저리그 30개 구단 40명 로스터에는 100명 이상의 스위치 히터가 등록돼 있다. 양쪽에서 친다고 해서 ‘Both’의 이니셜인 ‘B’로 구분하기도 한다. 뉴욕 메츠의 스위치히터 카를로스 벨트란은 마이너리그 싱글A 시절인 1996년 스위치히터로 변신했다. 그는 “나는 항상 메이저리그에서 매일 경기에 출장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적어도 교대로 출장하는 상호 보조 격인 외야 요원(backup outfielder)이 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스위치 히터가 되면 더 많은 경기에 출장할 수 있고 칠 기회, 잘 할 기회가 더 많아진다”고 스위치 히팅의 장점을 설명하고 있다. 애틀랜타의 치퍼 존스도 메이저리그의 대표적인 스위치 히터이며 일본 프로야구 세이부 출신 일본인 타자 마쓰이 가즈오도 스위치히터이다. 마쓰이가 메이저리그에서 버틴 이유 중의 하나도 스위치히터라는 장점이 작용한다. 메이저리그 타자들이 스위치 히터로 변신한 이유도 여러 가지다. 과거 양키스의 거구 1루수 토니 클락의 경우에는 샌디에이고 교외의 초등학교 시절 친구들과 야구를 하다가 친구들이 너무 크고 힘이 세다고 자신을 게임에 끼워주지 않자 ‘그럼 나는 왼손으로 치겠다’며 어울린 것이 오늘날 스위치히터가 된 계기였다. 그러나 야구를 잘 아는 아버지, 혹은 지도자들이 스위치 히팅의 장점을 설명하며 변신을 권유한 것이 대부분 결정적이었다. 선천적 우타자인 치퍼 존스는 아버지 래리 존스가 33인치 길이의 플라스틱 파이프를 들고 오른손 왼손 교대로 테니스 공을 치도록 훈련시켜 스위치히터로 만들었다. 전 양키스의 버니 윌리엄스의 경우는 전 텍사스 레인저스 감독인 벅 쇼월터가 양키스 마이너리그 감독 시절 스위치 히터로 바꾸었다. 버니 윌리엄스는 처음에 완강하게 거부했는데 벅 쇼월터가 양키스타디움의 ‘오른쪽 펜스가 얼마나 가까운가를 생각하라’며 설득을 했다고 한다. 과연 안치홍이 스위치 히터로서의 자질을 갖추고 있는지, 그리고 그의 어려운 도전이 과연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벌써부터 궁금하다. 어린 선수가 성공하기 힘든 목표를 세웠다. 연습과 실전은 다르다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 /전 일간스포츠 편집국장 MLB 특파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