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배우 최고의 발견? 김혜자와 김옥빈
OSEN 기자
발행 2010.01.03 09: 34

[OSEN=이무영의 왼손잡이] 지난 연말 영화인들끼리 모여 시시콜콜한 잡담을 나누던 중 올해 여배우 중 최고의 발견은 누구인가에 화제가 집중됐다. 물론 내가 예상했던 대로 대부분 [박쥐]의 김옥빈과 [마더]의 김혜자를 꼽았다. 무려 45년의 세월이 둘을 갈라놓고 있지만, 김옥빈과 김혜자는 여러 면에서 비슷하다. 우선 둘의 공통점으로 왠지 모를 불긴한 기운을 들 수 있다. 내가 여배우에게서 가정 첫 번째로 찾는 조건이다. 겉으로 악이라곤 흔적도 찾아볼 수 없는 듯하지만, 맘만 먹으면 순식간에 파멸을 몰고 올 것 같은 분위기는 마치 '바다의 요정' 사이렌처럼 거부할 수 없는 치명적 매력으로 다가온다. 김옥빈은 그 매력을 악용하여 거룩한 하나님의 종을 타락의 구렁텅이로 끌어내렸고, 김혜자는 자식을 보호한다는 이유로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죄 없는 영혼을 때려죽였다. 웅크린 채 음산한 기운을 감추고만 있던 둘은 각기 다른 스크린의 마술사를 통해 완벽한 '팜므 파탈'로 거듭났다. 박찬욱은 강렬한 눈매와 관능적인 몸을 갖고도 이전 영화에서 크게 두각을 드러내지 못했던 김옥빈을 위대한 보석으로 다듬었다. 봉준호는 수십 년 동안 무시무시한 본성을 감춘 채 너무도 평범한 '대한민국 엄마', 즉 '대발이 엄마'로 전락했던 김혜자를 텔레비전의 덫으로부터 구해냈다. 김혜자와 같은 위대한 배우를 조그만 텔레비전 화면에 가두는 게 얼마나 큰 죄악이며 대한민국 영화의 손실인지 영리한 봉준호는 잘 알고 있었으리라. '마더'가 되기 위해 김혜자가 연기자로서 자기 자신을 손질한 건 별로 없다. 단지 지금까지 어울리지 않는 옷처럼 자신을 감싸던 '평범한 어머니상'을 벗어던진 것뿐이다. 칠순을 눈앞에 둔 김혜자가 [만추](82년, 감수용 감독) 이전까지 텔레비전 드라마에 헌신하고, 그 이후로도 30년 동안 [마요네즈](99년, 윤인호 감독)정도 밖에 출연작이 없다는 건 정말 대한민국 영화의 크나큰 손실임에 틀립없다. 심은하의 은퇴와 장진영의 급작스런 죽음 등으로 여배우 중 전도연, 하지원 정도가 고군분투 중인 대한민국 영화계에 김옥빈과 김혜자의 등장은 정말로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빛나는 다이아몬드로 새롭게 태어난 김옥빈과 새로운 어머니상을 만들어낸 김혜자의 활약을 지켜보는 것이 대한민국 영화인으로서 새해 가장 크게 기대되는 게 아닐까. 개인적으로 수많은 세월을 속절없이 흘려보낸 김혜자가 가능한 한 최대한 많은 영화에 그 멋진 눈빛을 드러내주길 간절히 소망한다. [영화감독, 대중문화평론가] osenstar@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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