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연말 두산 베어스 투수 김명제(23)가 서울 가락시장 인근에서 운전하던 차량이 6m 높이의 탄천교 아래로 추락하는 사고가 발생해 야구계 전체가 깜짝 놀라고 전도가 유망한 그를 아끼는 팬들의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더욱이 그의 경추 골절상 정도는 무려 12시간30분에 걸친 대수술을 받았을 만큼 심각했다. 현재 모두가 김명제의 쾌유를 빌고 있고 다시 그라운드에 서는 모습을 볼 수 있도록 진심으로 기원을 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9일 서울 수서경찰서가 사고 당시 김명제의 혈중 알코올 농도가 ‘면허 취소’에 해당하는 0.172%로 나타났다고 발표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혈액검사 결과가 나온 것이다. 설마 설마 했던 일이 사실로 밝혀지자 두산 구단도 당황하면서 관계자가 ‘팬들에게 정말 송구스럽고 죄송하다’는 사과를 표시했다. 그런데 문제는 김명제의 음주 운전이 우리 야구계에 미칠 파장이다. 한국야구위원회(KBO) 유영구 총재는 취임 이후 일관되게 ‘클린 베이스볼’을 강조하고 있다. 클린 베이스볼은 정정당당하고 팬 친화적이며 사회에 공헌하는 야구를 의미한다. 선수들의 음주 사고는 한국프로야구 수장이 2010년 새해 신년사에서 거듭 강조한 클린 베이스볼 정책을 참담하게 만드는 것이다. 지난 해는 시즌 중 롯데 정수근이 음주로 물의를 일으켜 구단으로부터 방출 당한 뒤 결국 스스로 은퇴를 결정했다. 당시 사회적으로도 큰 이슈가 돼 한 동안 프로야구 선수들의 품행이 도마 위에 올랐었다. 그러나 음주 자체가 개인적인 일로 치부되면서 구단이나 KBO 차원에서 강력한 대책이나 조치가 내려지지는 않았다. 이제 새해 벽두에 또 다시 프로야구 선수의 사고가 음주가 원인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KBO와 전 구단이 나서 향후 방지책을 강구해야 할 시점이다. 지난 2007년 5월4일 메이저리그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에서 구단의 긴급 조치가 내려졌다. 팀의 클럽하우스는 물론 원정 경기 후 세인트루이스로 돌아가는 전세기 안에서 술을 마시는 것을 전면 금지한 것이다. 이는 4월29일 새벽 세인트루이스에서 운전하다가 견인차를 들이받고 현장에서 사망한 투수 조시 핸콕의 부검 결과가 나온지 몇 시간 후에 곧 바로 나온 결정이었다. 조시 핸콕이 사고 당시 혈중 알콜 농도가 미주리 주의 법정 기준치인 0.08의 2배에 가까운 0.157에 핸드폰 통화 중이었고, 또한 차 안에서 마리화나까지 발견됐다는 경찰의 공식 발표가 있었다. 당시 세인트루이스 구단은 물론 메이저리그 사무국도 충격에 빠졌다. 구단과 메이저리그 사무국이 무엇인가 분명한 실수를 했기 때문이다. 세인트루이스의 토니 라루사 감독도 그 해 스프링캠프 기간 중인 3월 플로리다 주피터에서 음주 운전으로 적발된 바 있다. 신호등이 있는 거리에서 브레이크를 밟은 채로 잠이 들었다가 체포돼 유치장에서 하루를 보내고 보석으로 풀려났다. 일각에서 메이저리그 감독의 음주 운전에 대해 구단이나 사무국이 출장 정지 조치 등으로 반드시 책임을 묻고 넘어가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으나 라루사는 엉뚱하게 다음 날 시범 경기에서 세인트루이스 팬들로부터 기립 박수를 받았다. 개인적인 일이라는 이유였는데 만약 토니 라루사가 술에 취해 브레이크 대신 액설레이터를 밟아 인명 사고를 일으켰다면 어떤 반응이 나왔을까? 조시 핸콕은 사고를 내기 며칠 전인 4월26일 토니 라루사 감독으로부터 엄중 경고를 받은 것으로 밝혀졌다. 그가 훈련과 경기 시간에 늦는 일이 자주 있었기 때문이다. 토니 라루사 감독은 “정말 마음을 열어놓고 대화를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핸콕이 최악의 상황에 이른 것을 보면 음주운전 전과를 가지고 있는 감독의 말이 설득력이 전혀 없었던 모양이다. 조시 핸콕의 사망 사고로 세인트루이스는 오클랜드에 이어 메이저리그 2번째로 클럽하우스에서 음주를 금지한 구단이 됐으며 이 후 거의 전 구단이 음주 결정에 동참했다. 프로야구 선수는 자라나는 어린이들에게 모범이 돼야 하는 대중적인 스타로 ‘공인(公人)’이다. 공인이 저지르는 사고에 대해서는 더욱 엄격한 처벌이 나온다. 세인트루이스 구단이 음주를 공식 발표한 날, 할리우드에서는 세계적인 호텔 체인 ‘힐튼(Hilton)’의 상속녀로 가수겸 배우로 활동하면서 온갖 스캔들을 일으키던 패리스 힐튼이 LA 다운타운에 있는 교통 전담 법정에서 ‘45일간의 실형’을 선고 받았다. 그녀는 음주 운전으로 면허가 정지된 상태에서 운전을 하다가 적발됐다. 마이클 사우어 판사는 “그녀가 사회의 모든 규범을 무시하고 운전을 계속했다. 특별 대우를 불허한다”며 일반 교도소에서 45일을 보낼 것을 명령했다. 미국에는 화려한 시설을 갖춘 사설 교도소가 있어 특별한 인물의 경우 이용을 할 수 있는데 패리스 힐튼에게는 아예 사용 금지 조치가 내려졌다. 메이저리그에서는 선수와 구단 간의 계약 조건에 음주 사고 전력이 반영된 경우도 있다. 2006년 샌디에이고 펫코 파크에서 박찬호와 선발 맞대결을 펼치기도 했던 당시 세인트루이스의 우완 시드니 폰슨은 2003년 네덜란드 왕실로부터 ‘기사(Knight)’ 작위를 받았다. 베네수엘라 파라과나 반도 북쪽 해상에 있는 네덜란드 령인 아루바 공화국 출신으로서 역대 세번째 메이저리거가 돼 활약한 공이었다. 2003년 기준 인구가 겨우 9만2700명인 아루바에서 메이저리거가 됐으니 작위를 받을 만하다. 그런데 ‘기사’ 시드니 폰슨은 2003년 시즌 후 소속팀 볼티모어 오리올스와 2004년부터 2006년까지 3년간 총액 2250만 달러에 달하는 빅 딜을 맺은 후 품행이 달라졌다. 3차례의 음주 운전에 경기 중 덕아웃을 이탈해 홈구장 캠덴 야드의 귀빈실에서 야구를 보기도 하고, 마침내 2004년 12월 보카 카탈리나 해변에서 친구들과 크리스마스 휴가를 즐기다 폭행 사건까지 일으켰는데 피해자가 판사였다. 시드니 폰슨은 10여일 구류를 산 뒤 이듬해 1월5일 풀려났다. 2005년 성적은 부상과 사건 등으로 7승11패(23경기 선발), 방어율 6.21에 그쳤고 시즌 후 구단으로부터 명예를 실추시켰다는 이유로 롯데의 정수근처럼 방출됐다. 볼티모어는 3년 계약의 마지막 해인 2006시즌 연봉 1000만 달러 지불도 거부했다. 당시 우리 돈으로 100억 원에 달하는 돈이었다. 1988년 볼티모어에서 데뷔해 2003 시즌 중 잠시 샌프란시스코에서 던진 것을 제외하고는 줄곧 몸담았던 구단으로부터 졸지에 버림받고 보장된 연봉 1000만 달러도 날려버린 시드니 폰슨은 2005년 12월22일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와 연봉 100만 달러(보장)에 1년간 계약했다. 그런데 계약한 날이 음주운전 처벌로 5일간 교도소 생활을 하고 나온 다음 날이었다. 계약에서 추가로 150만 달러를 더 받을 수 있는 인센티브를 걸었는데 그 조건이 특이했다. 24번째부터 26, 28, 30, 32번째 선발 등판까지 각각 30만 달러의 연봉이 추가 지급된다. 또 음주로 사고 치지 않고 성실하게 야구에 전념했을 때 받을 수 있는 인센티브였다. 투수 김명제의 재기를 기원하며 그의 음주 사고를 우리 야구계 전체가 교훈으로 삼아 진정한 ‘클린 베이스볼’을 실현하기를 기대한다. /전 일간스포츠 편집국장, MLB 특파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