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바타에 숨겨진 제국주의, 혹은 백인우월주의의 위험성
OSEN 기자
발행 2010.01.16 09: 12

[OSEN=이무영의 왼손잽이] 최첨단 영상기술을 자랑하는 ‘아바타’(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흥행돌풍이 쉽게 가라않지 않을 듯하다. ‘마틴루터킹 데이’로 황금연휴를 맞는 이번 주말 여전히 미국박스오피스 1위를 고수하면, 역시 카메론의 작품인 ‘타이타닉’의 최고기록까지도 넘볼 수 있다는 전망이다. 하지만 불행히도 ‘아바타’는 찬란한 영상기술의 혁명을 이뤄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전형적인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편협한 세계관을 뛰어넘지 못하는 안타까운 작품이 돼버렸다. 이 영화를 통해 또 한 차례 드러난 백인영웅이 세계를 구한다는 주제는 진부함을 뛰어넘어 인종차별적인 느낌까지 주기에 참으로 우려스럽다. ‘늑대와 춤을’과 ‘라스트 사무라이’에서의 백인주인공이 미국보다 문명적으로 뒤처진 북미 원주민과 일본 사무라이들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밀더니, 아바타의 주인공은 힘겹게 우주 멀리까지 날아가 다른 행성의 외계인들을 구한다. 이런 할리우드영화에 등장하는 침략을 당하는 세력은 한없이 나약하며 스스로를 방어하고 구원할 능력이 없다. ‘아바타’에서도 나비족 용사들은 백인 주인공의 영웅적인 싸움에 힘없는 조력자 정도로 묘사된다. 마지막에 주인공이 아니라 나비족 여전사인 네이티리가 악당을 죽이는 것이 이런 비판을 예상해서 만들어진 설정이라고 생각하면 무리일까? 어쨌든 이 ‘위대한 백인주인공‘이 개과천선해서 자신을 보낸 지구인들을 배반하지 않았다면, 판도라 행성의 나비족들은 분명 멸망했을 것이다. 이런 진부한 얘기구조가 마치 미개한 종족을 구원하기 위해선 좀 더 우월한 종족의 손길이 필요하다며 침략의 발톱을 세웠던 18-19세기 유럽침략자들의 주장과 흡사해 섬뜩하다. 그렇다면 할리우드 영화에서 침략을 당하는 세력은 자신들을 스스로 구원할 수 없을까? 당분간은 불가능할 듯하다. 미국 내 히스패닉인구가 빠른 속도로 늘고 있지만, 여전히 극장에서 영화를 소비하는 주 계층이 백인들이기 때문이다. 카메론 감독은 “영화 ‘아바타’는 나와 다른 사람들을 인정하고, 존중하자는 메시지를 담은 영화다. 그래야만 화합이 이루어지는 것이다.”고 밝힌 바 있다. 이런 카메론의 의지를 믿지 못하는 건 아니다. 더더욱 그의 마음속에 무의식적 인종차별의 정서가 뿌리내리고 있다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자신의 영화를 소비하는 다수가 미국 백인들과, 아무 생각 없이 백인중심의 미국문화를 추종하는 외국인들이라는 걸 그가 모를 리 없다. 너무 오랫동안 할리우드 영화의 영웅은 모두 백인들 차지였다. 물론 최근 들어 윌 스미스와 덴젤 워싱턴 등의 흑인배우들이 영웅의 자리를 차지했지만, 흑인성이 상당히 거세된 캐릭터들이었다. ‘아바타’에는 미국 백인들의 오만이 곳곳에 배어 있다. 얼마나 먼 미래의 얘기인지 모르나, 수백 광년을 여행해야만 갈 수 있는 판도라 행성에 온 지구인들은 거의 모두 백인들이다. 그리고 그들은 영어를 쓴다. 심지어 화폐단위도 미국달러다. 카메론의 주장이 무색하게도, 다른 언어나 민족에 대한 배려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한 마디로 수백 수천 년이 흘러도 여전히 지구뿐만 아니라 우주 전체의 주도권이 여전히 미국의 것으로 존재한단 얘기다. 지금 전 세계는 미국에서 시작된 경제위기로 몸살을 앓고 있다. 집을 살 능력이 없는 가난한 유색인종들에게 무리하게 대출을 해줌으로 비롯된 서브프라임 모기지 파동이 도화선이 됐다. 경제가 나빠짐에 따라 대출금을 갚지 못하는 서민들로부터 무자비하게 집을 빼앗고 있는 것이 현재 미국사회의 모습이다. 이런 상황 가운데 가장 절실한 것은 미국으로 상징되는 자본주의의 반성이다. 그동안 무엇을 잘 했고 잘못 했으며, 어떤 것들을 수정하고 보완해야 하는지에 대한 겸허한 성찰과 의견들 말이다. 미국이 앞으로도 이 세상의 리더 역할을 자청하겠다면, 뼈를 깎는 고통의 눈물을 흘려야 한다. 상투적인 말이지만 영화는 자본주의의 꽃이다. 그리고 그 꽃의 리더는 할리우드다. 그동안 전 세계를 상대로 장사하며 부를 축적해온 할리우드도 미국 자본주의처럼 이젠 진심으로 자신을 돌아볼 때가 됐다. 그동안 할리우드가 전 세계 영화를 압도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미국의 경제력에서 비롯된 자본과 세계 공통어로 사용되는 영어의 힘이었다. 절대로 할리우드 영화인들이 다른 나라의 영화인들보다 뛰어나서가 아니다. 전 세계가 우리말을 쓰고, 우리 영화에도 엄청난 예산을 동원할 수 있다면 이 나라 영화인들도 ‘아바타’보다 훨씬 더 기술적으로 뛰어난 영화를 만들 수 있다. ‘아바타’가 전국 극장가를 휩쓰는 가운데 인류미래에 대해 훨씬 더 진지한 시각을 지닌 영화 [더 로드](코맥 매카시 원작)가 개봉됐다. 물론 흥행성적은 ‘아바타’의 10분의 1에도 못 미친다. 할리우드에도 이런 삶의 성찰을 담아낸 작품이 있는데, 왜 우린 ‘아바타’와 같은 영화만을 선택할까? 혹시 너무 오랫동안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입맛에 길들여진 건 아닐까? 너무 볼거리에만 치중하는 건 아닐까? ‘아바타’를 보고나서 오랫동안 마음이 무거웠다. [영화감독, 대중문화평론가]osenstar@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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