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인상 놓쳤어도 최고 된 톱가수들 (2)
OSEN 기자
발행 2010.01.17 11: 07

[OSEN=해리슨의 엔터~뷰 (Enter-View)] 1편에 이어 2편에 선정 소개할 2팀은 2010년 한국 뿐만 아니라 아시아 여러나라에서 많은 팬들의 환호를 얻고 있는 최정상 아이돌 그룹이다. 각각 2006년과 2008년 가요계에 등장, 데뷔 연도 신인상은 다른 아티스트들에게 양보했지만, 현재 최고가 되어 있는 그들. 바로 빅 뱅(Big Bang)과 2 PM이다. - 한국에서 못 받은 신인상 일본에서 수상, 명실상부한 최고의 아이콘 빅 뱅(2006년)– 빅 뱅이나 2PM 팬들은 “우리 오빠들, 신인상 이렇게 받았는데, 왜 못 받았다고 해요 ?”라고 해리슨에게 반박의 글을 올릴지 모른다. (기준 자료는 지상파 3사-KBS,MBC,SBS-와 골든 디스크, 서울가요대상, 엠넷 뮤직비디오 페스티벌 등 대중적인 인지도가 높은 6개 시상식으로 한정한 바 있다.) 빅 뱅이 등장한 2006년 SBS를 제외한 KBS와 MBC는 상의 공정성 논란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폐지 요구가 계속 있자 가요 시상식을 축제 형식으로 바꾸게 된다. 빅 뱅을 비롯한 많은 가수들에게 다수의 국민들이 시청하는 시상식을 통해 그들이 한 해 농사를 잘 지었는가 평가 받는 기회가 대폭 줄어든 것이다. YG가 심혈을 기울이며 야심차게 준비한 5인조 아이돌 그룹 빅 뱅(Big Bang)의 시작은 아주 순탄치만은 않았다. 8월에 발표된 첫 싱글 앨범을 2,3집 싱글 앨범에서 수록되어 인기를 모았던 , , ,등 수록곡 대부분이 보컬 보다는 랩핑에 위주를 둔 힙합 스타일의 곡이었기에 폭넓은 계층의 대중들에게 어필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빅 뱅 보다 데뷔시기가 빨랐고, ‘SM고유 스타일의 댄스 음악’으로 무장한 13인조 댄스 그룹 슈퍼 주니어가 2006년 지상파 TV의 유일한 음악 시상식 “SBS가요대전” 신인상 수상을 비롯 남자 그룹 부문에서 대부분 신인상을 수상하였다. 그 다음해 빅 뱅은 완전 180도 바뀌어서 돌아 왔다. 리더인 G-Dragon의 음악은 기존의 힙합에서 완전 변신 시부야 계열의 음악과 일렉트로니카 장르가 결합된 ‘빅 뱅’만이 표출할 수 있는 폭발적인 대중성이 장착된 것이다. 2007년 8월에 발표한 첫 번째 미니 앨범 “Always”의 타이틀 곡 은 원더걸스의 와 함께 2007년 최고의 인기곡이 되었다. 이 곡으로 엠넷 뮤직비디오 페스티벌 (MKMF) 대상 중 한 부분인 “올해의 노래”상을 수상하고, 2008년 연초에 열린 서울가요대상의 대상까지 거머쥐며 2년 만에 최고의 인기 아이돌 그룹으로 급부상한다. 이후, 빅뱅의 발표하는 곡들과 앨범은 모두 정상을 차지하였고, 모든 공연은 매진되고 광고 시장은 물론 출판계에 까지 영향력을 끼치는 ‘시대의 아이콘’이 되었다. 멤버 5명 모두가 두드러진 솔로 활동을 펼치고 있으며, 일본 태국 등 아시아권에서도 커다란 인기를 모으고 있는데, 지난 해에는 한국 보다 일본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친 결과 “일본레코드대상 신인상,과 최우수 신인상”, ”일본유선대상 신인상과 최우수신인상”을 수상하는 등 한국에서 제대로 이루지 못한 신인상 수상의 쾌거를 거두게 된다. 선배 그룹 동방신기의 미래가 불투명한 가운데 “국민 아이돌 그룹”으로 거듭나는 빅 뱅의 앞으로의 활약상이 더욱 주목된다. -2009년 ‘짐승돌’ 신드롬 불러 일으킨 그룹 2 PM (2008년) – 빅 뱅, 동방신기 등 한국을 대표하는 남성 아이돌 그룹들이 해외 활동에 주력하는 동안 SS501, 슈퍼주니어, 샤이니 그리고 짐승돌 그룹 ‘2 PM’ 등이 여성 걸 그룹의 열풍 속에서 정상의 인기를 얻었던 2009년이었다. SM, YG와 더불어 3대 대형기획사로 불리는 JYP가 만들어 낸 그룹 2 PM 역시 공교롭게도 같은 해 데뷔 시기가 조금 더 빨랐던 SM의 5인조 보이 밴드 샤이니에게 주요 음악상 신인 남자 그룹 부분을 양보해야만 했다. 그들이 발표한 싱글 곡 과 로는 ‘누난 너무 예뻐 !’를 외치던 샤이니에게 간 여심을 가져오기엔 뭔가 좀 부족하지 않았을까 ? 1년 뒤 2 PM 역시 변신을 시도했고, 프로듀서이자 작곡가 박진영의 음악은 첫 싱글 앨범에 결핍되었던 대중적인 코드를 충분히 만들어 냈다. 2번째 싱글 앨범의 타이틀곡 으로 마침내 가요 차트 1위를 차지할 수 있었고 후속곡 역시 정상을 기록한다. 무엇보다도, 다른 아이돌 그룹과는 달리 거칠고 남성적인 이미지와 일곱 멤버의 개성있는 매력이 차별화되어 10대는 물론 20~30대 이상의 여성 팬들에게 어필되면서 ‘짐승돌’이란 그룹 닉 네임과 함께 폭넓은 팬 층을 보유하게 된다. 호사다마인지 그룹의 리더인 재범의 연습생 시절의 글이 인터넷을 통해 일파만파로 커져 그룹 탈퇴를 선언하고 미국으로 돌아가야만 하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리더가 빠진 가운데 여섯 명이 준비한 정규 1집 앨범 활동은 많은 팬들의 우려와 걱정 속에서 2009년 하반기 가요계를 강타하는 최고의 사랑을 받게 되었다. 타이틀 곡 는 좀비춤과 함께 등장하자마자 차트 정상을 기록하였고, 빅 뱅처럼 데뷔 2년 만에 엠넷 아시안 뮤직 어워드(MAMA) “올해의 가수상”과 KBS-TV 가요대축제 “시청자가 뽑은 올해 최고의 가요”상을 수상하며 ‘소포모어 징크스’가 아닌 대박을 터뜨리며 란 곡으로 2010년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god에서 2PM까지 필자가 소개한 다섯 팀은 가요계에 커다란 족적을 남기고 있는 명실상부한 대표가수들이다. 평생에 단 한번이라는 신인상 수상의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는 받지 못했지만, 이후 그들에게 주어진 대상 수상의 영예와 팬들의 사랑은 수많은 동료 및 후배 가수들에게 부러움의 대상이다. 앞으로도 멋진 음악과 다양한 활동으로 변함없는 ‘시대의 아이콘’으로 남아 있길 팬으로서 바랄 뿐이다. [글 : 해리슨 / 대중음악평론가]osenstar@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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