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구의 바둑 이야기]프로기사 입단 문호 확장에 대하여(2)
OSEN 기자
발행 2010.01.20 09: 23

입단의 문을 넓히라는 소리가 높다고는 하지만,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들의 숫자가 바둑계 전체로 볼 때 과연 그 퍼센티지가 얼마나 되는지는 정확히 모르겠다. 요즘은 주로 인터넷에 의해 여론이 형성되는데, 인터넷 글, 혹은 댓글이라고 하는 게 주로 목소리 큰 사람들이 열심히 올린다. 긍정은 침묵하거나 넘어가고, 부정은 목소리를 높인다. 입단 문호 확장은 일단 프로지망생들을 교육하는 바둑도장이나 바둑교실에서 주장할 것이다. 그건 이해가 된다. 그러나 그 밖에는? 입단 숫자를 늘리는 건 좋지만, 입단이 다는 아니다. 먹고 사는 문제가 따른다. 바둑 시장은, 다른 분야에 비해 아직은 시장이 아주 좁다. 시장을 넓히는 게 먼저고 입단 문호 확장은 그 다음이라는 얘기가 설득력이 있는 것도 그래서다. 가령 이런 거다. 바둑계는 이를테면 승자독식의 세계여서 타이틀을 따지 못하면 돈도 명예도 별 게 없다. 나이 서른이 넘으면 타이틀에서는 멀어진다. 촉망 받던 기재들도 어느 때부터인가, 스스로 ‘서른이 넘으면 어차피 안 된다’고 생각하고, 스스로 멀어졌다. 서른이 넘어서도 타이틀을 차지하는 사람은 유창혁과 이창호 정도였는데, 그나마 유창혁도 마흔이 넘어서는 타이틀이 어려워졌다. 더구나 최근엔 상금제라는 것이 무슨 획기적인 대안이라도 되는 양 조명을 받고 있다. 예선의 ‘대국료’를 없애고, 본선부터 ‘상금’을 주는 것이 상금제다. 상금제를 시작한 BC카드배의 경우, 예선을 거쳐 64명이 본선에 올라간다. 64강에 들어가야 상금을 받을 수 있다. 첫 판에 지면 64강의 상금, 한 판을 이겨 32강에 올라갔다가 거기서 지면 32강의 상금을 받는 식이다. 64강의 상금을 받고, 또 32강의 상금을 받는 게 아니다. 예선 대국료는 없지만 본선 대국료가 많아졌으니 큰 차이는 없는 것 같지만, 아니다. 본선에 올라가려면 예선에서 통상 대여섯 판을 이겨야 한다. 예컨대 다섯 판을 이겨야 본선행이라면, 네 판을 이기고 마지막 다섯 판째 지나 첫 판에서 지나 예선 결승에서 지나 본선에 못 올라가기는 마찬가지고, 예선은 대국료가 없으니 4승 후 1패한 사람이나 1패를 한 사람이나 수입이 없는 것도 마찬가지가 되는 웃지 못 할 일이 생긴다. 아니, 더 웃지 못 할 일은 현실적으로는 4승1패가 1패보다 손해라는 것이다. 대국하러 가는 교통비, 밥값 등만 더 나가기 때문이다. 4승은 헛수고가 되는 것이며 첫 판에 진 ‘단칼 멤버’가 4승1패를 보며 “거 봐. 글쎄, 뭐 하러 거기까지 올라가냐구…” 하면서 웃는 것이다. 성적을 내지 못 하고, 대개 엑스트라와 같은 단칼멤버에 그치는, 나이 든 기사들은 이제 백수가 된다. “상금제는 빈익빈 부익부지만, 바둑계의 새로운 돌파구를 찾으려면 어쩔 수 없다”고 하는데, 그것도 아니다. 그나마 부익부는 없고, 빈익빈만 남는다. “나이 든 기사들이 기득권을 고집하는 바람에 입단의 문이 넓어지지 못 하고, 나이 든 기사들 때문에 승부의 박진감이 떨어져 기전 스폰서가 잘 나타나지 않는다”는 주장만 반영한 셈이다. 입단 문호를 넓히기 위한 사전 정지 작업의 일환으로 아마추어 출전을 허락하고 상금제를 도입한 취지에 공감해 BC카드배 같은 큰 기전이 생긴 것이고, 실제로 연구생들이 프로를 이기는 모습도 보이지 않느냐, 그게 신선한 자극제가 되는 것 아니냐고 말할 수 있다. 맞다. 어쨌든 그런 식으로 나이 든 기사들을 자연도태시키면서 연구생들을 대거 입단시킨다고 하자. 기전이 늘어나지 않고 규모가 커지지 않은 상태라면 64강에 들지 못하는 숫자가 많아지는 것 아닌가. 경쟁은 갈수록 치열해져 이제는 서른이 아니라 스물다섯 정도만 되면 타이틀이나 성적과는 거리가 생기며 서른이 넘어가면 나이 든 기사들과 비슷하게 되는 것 아닌가. 그렇다면 프로기사는 나이 서른만 되면 수입을 기대하기 어려운 직업이 되는 건데, 그런 직업을 누가 종이 되는 건데, 그런 직업을 누가 지망할 것인지. 나이 먹어서도 할 일이 있고 수입도 보장되는 직업이라야 지망생이 많을 것 아닌가. 문호 개방과는 별도로 시도할 수 있는 연구생 정책에 대해 두 가지 제안이 있다. 하나는 앞서 말했듯 연구생 입단을 15세까지로 낮추고, 덧붙여 ‘학교 수업을 일정 시간 이상 받아야 한다’, 혹은 ‘학업 성적이 일정 수준 이상이어야 한다’는 조건을 달자는 것이다. 이건 연구생을 위한 보다 근본적인 대책이다. 연구생은 프로기사 지망생이기 전에 성장하는 청소년이라는 것에 초점을 맞추자는 것이다. 바둑 잘 두는 프로기사가 되는 것도 좋지만, 삶의 기본을 익히고 그걸 잃어버리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런 제안을 하는 사람들은 “연구생들을 보면 마치 바둑 사이보그 같다”고 말한다. 다른 예체능도 학교 공부는 뒷전이라고 반문할지 모른다. 그렇다. 그러나 ‘바둑처럼은’ 아니다. 그리고 예체능의 그런 좋지 않은 길을 바둑이 꼭 따라갈 이유는 없는 것이며 예체능은 자체에 최소한의 교양을 담고 있다는 점이 다르다. 또 다른 제안은, 프로기사 입단제도를 아예 없애자는 것이다. 아무나 실력 있으면 기전에 나와 상금도 따고 타이틀도 딸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그러면 굳이 문호를 넓히고 말고 할 게 없지 않느냐는 것이다. 제도를 만든 것은 틀과 격(格)을 갖추자는 것인데, 요즘처럼 승부 제일주의라면 구태여 틀이니 격이니 논할 게 없으니까 말이다. 엊그제 연구생 소년이 이창호 9단과 바둑을 두었는데, 백을 들고 이겼다. 이 9단이 96수만에 돌을 거두었다. 불리하고 더 이상 해 볼 데가 없다고 판단해서 던졌을 것이다. 연구생 소년의 승리에 탄성을 지른 사람도 있었고, 망연자실한 사람도 있었다. 승부를 본 사람은 탄성을 질렀을 것이다. 승부는 있으나 금도(襟度)는 없다고 느낀 사람은 망연자실했을 것이다. 입단 문호가 아니라 시장을 넓혀야 한다. 시장을 넓히려면 청소년들끼리의 승부보다는, 바둑이 우리 사회에서 어떤 기능을 할 수 있는지, 우리 사회에 무슨 기여를 할 수 있는지를 보여 주어야 한다. 그런 걸 보여 주려면, 금도를 잃어서는 안 된다. /전 월간 바둑 편집장. 현 일요신문 해설위원. 지난 1월 16일 서울 웨스틴조선호텔에서 벌어진 제2회 BC카드배 월드바둑 챔피언십 64강전(1회전)에서 17살의 한국기원연구생 한태희가 한국 프로바둑 랭킹 1위 이창호를 꺾고 32강에 진출, 파란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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