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티에 희망을'.. 음악은 위대했다
OSEN 기자
발행 2010.01.24 08: 39

[OSEN=이무영의 왼손잡이] 역시 음악의 힘은 위대했다. 급조된 이벤트였지만, 아이티를 돕기 위해 최고 인기 팝 뮤지션들이 총출동한 자선공연(benefit concert) '아이티에 희망을'(Hope For Haiti Now)이 성공적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지구촌 어딘가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신음할 때 팝 음악계는 항상 신속하게 '선한 사마리아인'(Good Samaritan)을 자청하고 나섰다. 때론 오만하고 자주 말썽도 일으키는 뮤지션들이지만, 도움의 손길이 필요할 때마다 항상 그들 몸속에서 뜨겁게 뛰는 심장이 보여줬다.
최빈국의 불행에 뮤지션들이 발을 벗고 나선 첫 대형 공연은 71년 뉴욕 매디슨스퀘어가든에서 열린 '방글라데시를 위한 콘서트'(Concert For Bangladesh)였다. 벵골족 출신의 시타 연주자 라비 샹카는 전쟁과 살인적인 태풍으로 인해 굶어죽을 위기에 놓인 방글라데시를 돕기 위해 친구인 비틀즈의 조지 해리슨과 손을 잡았다. 둘은 각각 '조이 방글라'와 '방글라데시'란 싱글을 내놓았고, 곧바로 공연준비에 돌입했다.
해리슨은 '방글라데시를 위한 콘서트'를 통해 비틀즈의 재결합을 노렸으나 불행히도 불발로 끝나고 말았다. 폴 매카트니는 헤어진 지 얼마 되지도 않아 다시 뭉치는 게 민망하다며 거절했고, 참여를 약속한 존 레넌은 아내인 요코 오노와 다툰 후 공연이 이틀 전 뉴욕을 떠나버렸다. 비틀즈 해체에 크게 기여한 오노를 배제한 채 레넌만 초청하려던 해리슨의 계획에 오노가 반대함으로 역사적 사건이 될 뻔 했던 비틀즈 재결합은 무산되고 말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글라데시를 위한 콘서트'의 라인업은 매우 화려했다. 비틀즈의 드러머 링고 스타를 비롯해 밥 딜런과 빌리 프레스턴, 배드핑거, 리온 러셀, 에릭 클랩튼이 해리슨과 샹카의 초청에 응했다. 클랩튼은 약물중독으로 죽음의 고비를 넘나드는 와중에도 무대 위에서 'While My Guitar Gently Weeps'의 멋진 기타 솔로를 펼쳤다.
'방글라데시를 위한 콘서트'가 자선공연의 기틀을 마련했다면, 85년의 '라이브 에이드'(Live Aid)는 역사상 가장 거대한 규모이며 성공적인 자선공연이었다. 영국 런던 윔블리와 미국 필라델피아 JFK 스타디움에서 거의 동시에 개최된 이 공연은 뉴스를 통해 굶어죽어 가는 이디오피아인들의 참상을 접한 밥 겔도프의 양심에 따른 행동으로 인해 이뤄질 수 있었다. 붐타운 래츠의 보컬리스트인 겔도프는 84년 11월 친구인 울트라박스의 멤버 미지 유어와 함께 에디오피아인들을 의한 싱글 'Do They Know It's Christmas?'를 내놓았다. 이는 선행의 주도권을 영국에 빼앗긴 미국 뮤지션들로 하여금 이듬해 자선앨범 '미국, 아프리카를 위하여'(USA For Africa)를 만들게 하는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전 세계에 에디오피아의 비극을 알리기 위해 머리를 맞댄 양국 뮤지션들은 7월 13일을 '라이브 에이드'의 디데이로 정했다. 너도 나도 참여하겠다고 열을 올렸기에 호화찬란한 라인업은 매우 쉽게 구성됐다. 윔블리 스타디움에는 영국의 맏형 매카트니와 엘튼 존, 퀸, 후, U2, 데이비드 보위, 더 후, 다이어 스트레이츠, 스팅, 폴 영, 엘비스 코스텔로, 스펜더 발레, 애덤 앤트, 울트라박스, 샤데이, 붐타운 래츠 등이, 그리고 JFK 스타디움에는 밥 딜런과 닐 영, 카스, 탐 페티, 카를로스 산타나, 프리텐더스, 비치 보이스, 브라이언 아담스, 주다스 프리스트, 빌리 오션, 런 디엠씨, 조앤 바에즈 등이 열정적 공연을 펼쳤다.
당시 성인잡지에 누드사진이 게재돼 구설수에 올랐던 마돈나는 섭씨 35도 가까운 무더위에도 불구하고 "오늘은 아무 것도 벗지 않겠다."는 농담으로 관객들을 웃겼다. 가수이며 드러머인 필 콜린스는 윔블리 공연을 마친 후 곧바로 비행기로 미국으로 이동, JFK 스타디움의 무대에도 오르는 이벤트를 연출했다. 이 날 거둬들인 수익금은 총 2억8천3백만 달러로 원래 목표의 15배를 뛰어넘는 액수였다.
'할리우드의 양심'인 조지 클루니와 아이티 출신 가수 와이클레프 장 등에 의해 마련된 이번 공연은 아직도 이 세상에 희망과 양선, 구원 등이 의미 있는 단어로 존재함을 입증한 가슴 뭉클한 공연이었다. 뉴욕과 로스엔젤스, 런던으로 나뉘어 진행된 이번 공연에서 브루스 스프링스틴은 60년대 흑인인권운동에 불을 지폈던 'We Shall Overcome'을 '아이티 희망의 찬가'로 바꿔놓았고, 평소 요부의 이미지로 유명한 샤키라는 록밴드 프리텐더스의 히트곡 'I'll Stand By You'를 열창하며 아이티 사람들이 결코 이번 비극을 홀로 감당하지 않을 것임을 약속했다. 존 레전드가 홀로 피아노를 연주하며 부른 대표적인 흑인영가 'Motherless Child'는 부모를 잃은 아이티 어린이들을 떠올리게 하는 가슴 아픈 넘버였다.
'아이티에 희망을' 공연은 뉴 밀레니엄에 들어선 후 불법 다운로드와 MP3의 등장으로 침체된 팝 음악계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은 커다란 이벤트였다. 음악이 단순히 음악팬들의 귀를 즐겁게 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진정으로 도움이 필요한 곳에 손길을 내밀며 상처받은 자들의 영혼을 위로하는 위력적인 도구임을 입증한 쾌거였다. 알리시아 키스와 콜드플레이, 마돈나, 비욘세, 크리스티나 아길레라. 스티비 원더, 메리 제이 블라이지, 데이비드 매튜스와 닐 영, U2와 제이 지, 세릴 크로우, 키드 락, 키스 어번, 저스틴 팀벌레이크, 테일러 스위프트는 10년 1월 22일(미국 동부 시간) 하루만큼은 하늘이 아이티에 보내준 천사들이었다.
'방글라데시를 위한 콘서트'나 '라이브 에이드'에 비해 준비기간도 짧았고 매끄럽지 않은 진행도 노출됐으나, '아이티에 희망을' 공연은 성공리에 마무리됐다. 이제 중요한 것은 수익금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도움이 절실한 아이티인들에게 전달하느냐이다. 세금에 대한 공연진행자들의 무지로 수익금 대부분이 무려 10년 이상이나 미국 국세청에 묶였던 '방글라데시를 위한 공연'과 에디오피아인들에게 전달돼야 할 돈의 상당한 액수가 당시 에디오피아 집권세력의 손아귀에 들어갔던 '라이브 에이드'의 실수를 되풀이해서는 안 될 일이다.
오늘도 지구촌 곳곳에서 신음하는 불운한 사람들은 '아이티에 희망을'에 참여한 뮤지션들의 음악에서 위로를 찾고, 이들의 가슴 속에 뛰는 뜨거운 심장을 느끼며 이 세상을 살아갈 용기를 회복하게 될 것이다.
[영화감독, 대중문화평론가]osenstar@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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