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무영의 왼손잽이] 지난 7-80년대 대한민국 대중음악의 숨은 보석이었던 가수 이남이가 세상을 떠났다. 양김의 단일화 무산으로 629민주화선언의 열매를 따지 못한 이 땅의 젊은 양심들과 올림픽을 앞둔 대대적인 개발로 삶의 터전에서 쫓겨난 서민들을 '울고 싶어라'(88년 곡)로 위로했던 그가 겨우 환갑을 조금 넘긴 나이에 담배의 위력 앞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내가 이남이를 처음 본 것은 79년 사랑과 평화의 정동 문화체육관 공연이었다. 당시 학교 등교와 땡땡이를 거의 비슷한 비율로 실천하던 나는 그날 아예 학교에 가지 않았다.
두 번째 앨범 수록곡 '장미'로 절정의 인기를 누리던 사랑과 평화의 기타리스트 최이철은 공연 중간에 등장한 낯선 콧수염의 사내를 어려운 시절을 함께 보낸 동료라고 소개했다. 베이스 기타를 잡은 이남이는 사랑과 평화 멤버들과 당시 대한민국에서는 결코 볼 수 없었던 초절정의 펑키한 공연을 펼쳤다.
이남이에 대한 나의 첫 인상은 매우 부정적일 수밖에 없었다. 콧수염뿐만 아니라 지저부한 머리에 허름한 중절모는 마치 각설이를 연상케 했다. 또한 나는 미남 베이시스트 송홍섭의 열성팬이었기에, 혹시 이남이가 그 자리를 빼앗으려는 게 아닌가하는 마음에 불안했다. 나에게 그는 무명일 때 팀을 등졌다가 성공한 다음에 나타난 얌체같은 존재였다.
하지만 내가 알던 것과 달리 '한동안 뜸했었지'가 실린 데뷔작의 베이시스트가 사르보가 아니라 이남이이고, 대마초 파동에 연루돼 앨범 출시 직전 그룹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그에게 매우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솔직히 이남이의 진가는 가수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대표적 베이시스트로서 더욱 빛났다. 신중현과 엽전들의 전설적 베이시스트로 명성을 떨쳤던 그는 최이철, 김명곤과 동고동락하며 무명시절의 사랑과 평화를 이끌었지만, 정작 밴드가 최고의 인기를 구가할 때 함께 할 수없는 불운을 겪었다. '사랑과 평화'는 이남이가 지은 이름이다.
긴 공백 이후 이남이에게 재기의 기틀을 마련해준 '울고 싶어라'는 정말 울고 싶은 수많은 이들에게 위로의 손길을 내밀었다. 올림픽을 준비하는 가운데 비약적 경제발전을 이룬 대한민국 사회에서 상대적으로 가진 것들을 박탈당할 수밖에 없었던 서민들에게 '울고 싶어라'는 쓰디쓴 소주 한 잔, 그리고 담배 한 모금처럼 쓰라린 상처들을 보듬는 치료제였다.
지난 01년 딸 이단비와 함께 '철가방 프로젝트'를 결성, 전국을 떠돌며 음악 게릴라로서 활동을 펼친 그는 춘천에서 주기적으로 교도소를 방문하는 등 어두운 곳에 따스한 마음을 전하는데도 게으르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이남이야말로 진정 대한민국의 토종 히피가 아니었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가 암흑 같은 시절에 박제돼 하염없이 세월만 흘려보냈을 테니 어찌 울고 싶지 않았으랴.
이제 울지 않아도 되는 세상으로 갔으니, 그는 좋겠다. 베이스 기타를 들고 건강 걱정 없이 담배를 피우면서, '울고 싶어라'를 부르면 혹시 이승에서의 추억 때문에 눈물이 그리워지지 않을까?
별로 슬픈 일도 없는데, 오늘 밤은 괜히 울고 싶어질 것 같다.
[영화감독,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