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최영균의 인사이더] 걸작, 그 이상이다. 혁명이란 말도 나온다. 맞다. ‘추노’의 주인공들이 세상을 바꿀 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드라마’ 추노는 드라마 세상에 큰 소용돌이를 일으키고 있다. 9, 10부를 통해 여러 출연자들이 떼죽음으로 퇴장하고 송태하와 언년이가 일단 맺어지면서 ‘추노’도 가장 큰 전환점을 맞이한 듯하다. 현재까지의 ‘추노’를 보면 최근 영화계는 물론 산업 영역에서까지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는 영화 ‘아바타’가 떠오른다. ‘아바타’가 영화에 기술적인 혁명을 성공시켰다면 ‘추노’도 한국 드라마 영역에 있어 어떤 대변혁이 될 수 있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추노’는 그 이상도 될 수 있다. ‘아바타’가 테크놀로지 영역에서 영화계에 주로 충격을 줬다면 ‘추노’는 드라마를 구성하는 모든 요소에서 다른 차원을 보여주고 있어서이다. 예술의 어느 분야든 진정한 걸작은 이전 세대와는 다른 혁명성을 내포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작품의 여러 내적인 구조물이 완성도 높게 유기적으로 결합돼야 하고 수용자가 찾을 수 있는 의미(혹은 재미)가 끝없이 다양하게 화수분처럼 샘솟아야 한다. ‘추노’는 이런 조건들을 모두 충족하는, 보기 드문 한국 드라마다. 기술적으로는 화면에 일찍이 볼 수 없었던 다양한 심도와 선명함으로 시청자의 시각적 만족도를 극대화하고 있다. 슬로우 모션의 아름다움이 도드라지는 액션 역시 기존 드라마와는 다른 차원을 창조하고 있다. 계급 사회의 신분 제도에서 나아가 사회 변혁의 진지한 역사 인식과 노비 추적이라는 서스펜스적 요소를 잘 엮어낸 테마도 의미와 오락을 잘 결합한 드문 기획이다. 이 외에도 긴장과 여백을 매끄럽게 오가는 편집도 훌륭하다. 유럽의 예술 영화가 주는 시적인 느낌과, 헐리우드 오락 영화에서 만날 수 있는 재미와 긴장을 가볍게 넘나드는 편집은 감상의 묘미를 더욱 높여준다. 울림과 재미가 있는 명대사, 더불어 스토리 전개로, 대사로, 편집으로 만들어 내는 수많은 반전들, 해학과 재미까지 하나의 드라마에서 한꺼번에 만나기 힘든 풍부한 의미와 재미가 끊임 없이 샘솟는다. 하다 못해 록과 합창 성가, 힙합이 결합된 하이브리드 장르의 주제 테마 ‘바꿔’까지 ‘추노’는 드라마의 거의 모든 관련 영역에서, ‘완성도가 있는 새로움’을 성취해 내고 있다. 조금 단편적인 예를 들어보면 ‘추노’는 출생의 비밀을 다루는 방식도 다르다. 대길이 자신의 집안을 망하게 한 노비 ‘큰놈’이가 알고 보니 자신의 배다른 형제라는 출생의 비밀이 밝혀지지만 이는 다른 드라마에서 밑도 끝도 없이 등장하는 출생의 비밀과는 분명 다르다. 조선 시대 신분 제도와 양반-노비 주종 관계를 생각하면 충분히 개연성을 가지기 때문이다. ‘추노’가 특히 대단한 점은 캐릭터를 다루는 방식이다. 출연 비중과 상관 없이 모든 캐릭터가 그 만의 의미와 개인사, 그리고 인간으로서의 존재 가치를 갖추고 있다. 악인도 사연이 있고 큰놈이나 언년이 같은 노비는 양반보다 더한 위엄이 있고 미천한 삶들에도 각자의 가치가 진하게 배어난다. 그런 생생한 캐릭터들이 ‘추노’ 전체를 관통하는 커다란 이야기의 흐름과도 커다란 기계 속의 오차 없이 작동하는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간다. 이런 식의 캐릭터 구성은 쉽게 시도될 수도 없고 잘못하면 드라마가 밀도를 놓칠 수 있는데 ‘추노’는 이를 잘 소화해내고 있다. 그러다 보니 ‘추노’에는 진짜 사람들이 살고 있는 어떤 사회나 시대를 직접 대면한 것 같은, 그 속에 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크고 작은 캐릭터들 모두에 애정이 생긴다. ‘추노’를 보다 보면 만화 ‘슬램덩크’가 떠오른다. ‘슬램덩크’는 이런 캐릭터 월드를 완벽하게 구현해 내 만화 장르를 뛰어 넘어 20세기를 대표하는 걸작으로 꼽히고 있다. 이 작품 하나만으로도 아직 젊은 곽정환 감독과 천성일 작가는 거장 인증을 받을 듯하다. 또한 레드원 카메라라는 신기술을 도입해 사전 제작의 장점을 최대한 살려낸 ‘추노’로 인해 지금까지 사전 제작에 대한 수많은 시도가 있었지만 별 변화가 없던 한국 드라마의 제작 시스템 또한 영향을 받을 듯하다. 다만 ‘추노’가 한국 드라마사에서 ‘추노’ 이전과 이후를 가를 드라마로 남을 지는, 한국 드라마 세상에서 ‘아바타’ 그이상의 드라마가 될 지는 4월 종영까지 지켜 봐야 될 것 같다. 현재까지의 드라마의 완성도를 끝까지 유지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세상을 바꾸겠다’는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어떻게 마무리 지을 지도 드라마에 대한 최종 평가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기 때문이다. ‘추노’를 보면서 액션에 넋이 빠지는 시청자, 양반들의 어려운 대화에 붙는 해학이 담긴 자막에 웃음을 터트리는 시청자, 등장인물들의 애틋한 사랑에 마음이 가는 시청자, 시대에 대한 대사와 상황에 깊은 생각에 잠기는 시청자, 이 모두를 끌어 안을 수 있는 ‘추노’가 끝까지 걸작의 위엄을 지켜 가길 간절히 바란다. /대중문화가이드 ck1@osen.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