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려 20년에 걸쳐 5번이나 올림픽 메달에 도전했으나 끝내 실패한 한국 스피드 스케이팅의 간판선수 이규혁은 20일 캐나다 밴쿠버 코리아 하우스에서 열린 공식 기자회견에 힘겹게 참석한 모양이었다. 기사를 보면 그는 흐르는 눈물로 말을 제대로 잇지 못하며 “선수로서 느낌이 있다. 내가 우승하지 못한다는 것을 어느 정도 예상했다. 안 되는 것을 도전한다는 게 너무 슬펐다.”고 밝혀 주위를 숙연하게 만들었다고 했다. 그의 나이 이제 32세이다. 2008시즌을 앞두고 피츠버그 스프링캠프에 참가했다가 외부에 알려진 것과는 다른 이유 때문에 스스로 팀을 떠났던 김병현(31)이 샌프란시스코와 마이너리그 계약을 맺고 재기에 나섰다. 이규혁의 인터뷰 기사를 읽으며 김병현을 떠올렸다. 과연 김병현은 ‘안 되는’ 것이 아니라 ‘되는 것’에 도전하고 있는 것일까? 에이전트인 폴 코비가 ESPN과 인터뷰한 바에 의하면 김병현은 메이저리그 스프링캠프가 아닌 마이너리그에서 시작한다. 먼저 마이너리그 캠프에서 준비를 해 여전히 경쟁력이 있다는 것을 증명해야만 메이저리그 복귀 기회가 주어질 전망이다. 김병현은 이규혁보다 한 살이 적다. 야구 선수로서의 나이만으로 보면 그의 재기는 성공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2년 간의 공백을 메우기가 결코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2008년 여름으로 기억한다. LA 코리아타운에 있는 고기구이 집에서 김병현과 점심을 함께 했다. 밤 비행기로 귀국한다고 했던 그는 야구를 중단한 것을 몸으로 보여주듯 흰 얼굴에 살이 올라 있었다. 당시 김병현은 “야구를 그만 두지는 않았다. 다만 쉬고 있을 뿐이다. 다시 하고 싶을 때 야구를 다시 시작 할 것”이라고 밝혔다. 필자는 ‘장기간 쉬어도 메이저리그에서 던질 수 있는 기량을 회복할 자신이 있느냐?’고 질문했다. 20년 이상 야구를 취재했지만 그런 선수를 본 기억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과거 LA 다저스에서 금지 약물인 ‘스테로이드’의 힘을 빌려 메이저리그 정상급 마무리로 활약했던 에릭 가니에도 이번 시즌 자신의 데뷔 팀인 다저스와 마이너리그 계약을 맺고 김병현처럼 재기에 나서고 있는데 차이는 분명히 있다. 가니에는 지난 해 캐나다 독립리그에서 뛰면서 실전을 치렀고 경기 감각을 유지했다. 그런데 김병현은 완전히 2년을 쉬었다. 필자는 당시 김병현에게 ‘한국 프로야구에서 뛰면서 메이저리그 복귀를 준비하는 것이 어떠냐?’고 권유를 했는데 김병현은 다시 야구를 하게 되면 역시 다시 메이저리그에 도전하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했다. 김병현에 대한 지명권은 히어로즈가 가지고 있다. 메인 스폰서로 넥센과 게약한 히어로즈는 향후 김병현의 진로에 관심을 가져볼 만하다. 그가 한국프로야구로 온다면 팬들의 관심이 대단히 뜨거워 질 것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필자의 견해로는 만약 김병현이 올 시즌 내 메이저리그 등판을 이뤄낸다면 그는 분명 ‘천재 투수’이다. 김병현은 필자와 만났을 때 “한 달 정도면 공을 던질 수 있는 몸을 만들 수 있다. 운이 좋게도 유연한 몸을 타고 났다. 야구를 다시 해야겠다는 결심만 서면 빠른 시간 안에 등판할 준비를 할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이제 김병현이 자신의 말을 증명해 보일 때가 됐고 결과가 더욱 기다려진다. 한편으로는 김병현이 일관되게 추구하는 특유의 자유로운 삶을 생각하면 그의 화려한 재기 가능성도 높다고 보여 진다. 지난 2007년 1월 LA의 프랭크 조브 박사 클리닉에서 오른 팔꿈치 인대 접한 수술인 토미 존 서저리를 받은 삼성의 배영수(29)는 당시 LA 코리아타운에서 병원을 오가며 “(김)병현 형은 참 멋있게 인생을 즐기는 것 같다. 열심히 야구를 해서 얻은 것으로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다 하면서 산다”고 부러움을 나타냈다. 배영수는 웨스트 LA에 있는 김병현의 집에도 가보았다. 김병현은 2006 시즌 중에 LA에 집을 구입했다. UCLA 대학이 가까운 고급 주택가에 90만 달러(당시 약 8억5000만 원)짜리 새 콘도를 샀다. 당시 소속된 콜로라도 로키스의 홈인 덴버에서는 월세로 생활했다. 그래서 시즌 후 LA에서 휴식을 취하고 훈련을 하기 위한 목적으로 구입한 것이다. 메이저리그 풀타임 마지막 해였던 2007시즌 콜로라도에서 트레이드 돼 플로리다 애리조나를 오간 그의 연봉은 250만 달러(당시 약 24억 원)였다. 야구를 중단했을 때 그는 “가족들 모두가 풍족하게 생활할 수 있는 돈을 야구를 통해 벌었기 때문에 무엇보다 감사한다.”고 말했다. LA에서 자신이 뒷바라지한 여동생이 아이비리그 명문 대학에 입학했는데 자랑스러운 듯 “학비 댈 걱정을 해야지요.”라며 웃었다. 2007년 1월 삼성의 배영수가 인상적으로 받아들였던 것 가운데 하나는 김병현의 이미지와 자신감이었다. 배영수는 “병현이 형이 예상 밖으로 정(情)이 많다. 소박하게 아낄 것은 아끼고 쓸 데는 과감하게 쓴다. 아픈 후배를 배려하는 마음과 자신을 내세우지 않는 모습도 정말 인상적”이라며 “특히 야구에 있어서는 집중력과 트레이드도 두려워하지 않는 자신감에 놀랐다”고 밝힌 바 있다. 실제 모습과는 달리 오해를 받고 있는 부분이 크다고 했다. 김병현은 투자에도 적극적인 성격이다. 샌디에이고의 유명 일식 레스토랑, 주식, 부동산 등에 소득을 분산 투자해놓고 있다. 1999년 메이저리그에 진출해 아메리칸 드림을 이룬 김병현이 개막을 준비 중인 2010시즌 불가능해 보이기도 하는 재기의 꿈을 이룰지 귀추가 주목된다. 물질이 주는 여유로움이 그의 재기 과정에 과연 변수로 작용할 것인가도 궁금하다. 플로리다에서 개인 훈련 중 햄스트링 부상으로 한 차례 위기를 맞기도 했다. 그의 소속 팀 샌프란시스코의 스프링 캠프지는 애리조나 주 스카츠데일이다. LA에서 승용차로 6시간 거리이다. /전 일간스포츠 편집국장, MLB 특파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