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윤호의 인사이드 베이스볼]박찬호가 잊지 않는 양용은의 교훈
OSEN 기자
발행 2010.03.02 09: 53

2009년 11월20일 오후, 서울 역삼동 비전타워에서 한국인 최초의 메이저리거 박찬호(37)가 참여한 피트니스 전문 스포츠 센터, ‘피트니스 파크 61’의 창립식이 열렸다. 당시 두산 김경문 감독, 요미우리 이승엽, 탤런트 박상원 등이 참석해 박찬호와 함께 테이프 커팅을 하면서 스포츠 사업에 대한 그의 새로운 도전을 축하했다. 박찬호는 항상 그랬던 것처럼 그 자리에서도 ‘팬들로부터 받은 사랑을 돌려드리고 싶다’고 밝혔다. 박찬호는 장학재단 설립을 비롯해 1998년 여름 우리나라에 최악의 수해가 났을 때 1억 원을 LA 한국 영사관에 수재의연금으로 기탁하는 등 어려운 이웃들에 대해 따뜻한 나눔을 아끼지 않았다. 당시 1억 원은 필자의 기억으로 기업이나 단체가 아닌 개인 자격으로는 상당히 많았던 액수였다. 매우 오래 전의 일이기는 하다. 그런데 박찬호의 ‘피트니스 파크 61’의 창립식에 참석해 테이프 커팅을 약속했다가 지각하는 실수를 범한 스포츠 스타가 있었다. 아시아 출신 최초로 PGA 메이저 대회에서 우승한 양용은(38)이다. 그는 작년 8월 제91회 PGA챔피언십에서 독보적인 세계 랭킹 1위 타이거 우즈를 상대로 역전 우승을 차지해 세계 골프계를 발칵 뒤집으며 단숨에 최고 스타로 떠올랐다. 박찬호가 아시아에서 태어난 최초의 메이저리그 투수라는 점에서 양용은과 비슷한 점이 있는데 두 스타 모두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고 최고의 자리에 올랐기 때문에 서로를 깊이 아끼고 있다고 한다. 양용은의 행사 지각은 후일 박찬호를 통해 사석에서 알려졌다. 박찬호는 늦게라도 잊지 않고 찾아 준 양용은에 대해 매우 고마워하고 있었다. 그는 “양용은 선수가 워낙 스케줄이 많아 당초에도 참석이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런데 내가 하는 행사라고 하니까 늦더라도 꼭 오겠다고 했다. 그런데 정말 양용은 선수는 자신이 한 말을 지켰다. 1시간 정도 늦었는데 그 사실조차 너무 미안해 하면서 주위에 양해를 구했다”고 밝혔다. 그런데 박찬호가 더 놀랐던 것은 단지 양용은의 참석이나 그가 약속을 지킨 것만이 아니었다. 박찬호는 “양용은 선수가 ‘피트니스 파크 61’을 떠나기 전에 연간 회원으로 정식 등록을 했다. ‘파크 61’의 직원들이 그의 회원 등록 신청을 받으면서 나보다 더 당황했다. PGA 메이저 대회 우승자로 미국은 물론 전 세계를 오가며 경기를 하는 양용은 선수에게 ‘피트니스 파크 61’의 연간 회원권이 전혀 필요치 않다는 것을 모두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른 참석자들과 달리 회원으로 가입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그런데 양용은 선수는 기꺼이 연간 회원에 가입하고 가입비를 모두 내고 갔다”고 설명했다. 양용은은 이로써 자신을 초대해준 박찬호에게 최상의 선물이자 예의를 표현한 것이다. 박찬호는 “양용은 선수는 다만 직원들에게 자신의 특수한 처지 때문에 피트니스 파크 61에 직접 와서 운동을 못하니까 내 회원권을 다른 분이 사용해도 되도록 양해해달라고 부탁한 뒤 떠났다. 이에 직원들은 당연히 그렇게 예외를 인정해주겠다고 기쁘게 대답했다”고 덧붙였다. 박찬호는 “정말 쉬운 일이 아니다. 만약 같은 상황이라면 나도 그럴 수 있었을까 생각해보았다. 양용은 선수에게는 필요 없는 회원권인데 적지 않은 돈을 내고 기꺼이 가입해주었다. 진심으로 나를 배려해준 것이다. 고마웠다”고 말했다. 양용은을 통해 새롭게 깨달은 것이 있었다는 박찬호는 앞으로 자신이 받은 사랑을 더욱 더 열심히 돌려주겠다는 다짐을 잊지 않았다. 그런데 박찬호의 뉴욕 양키스 행 소식이 전해진 후 미 텍사스주 사우스레이크시에서 놀라운 소식이 날아왔다. 양용은이 자신의 아들이 다니고 있는 더햄 초등학교에 아무도 예상치 못한 기부를 한 것이다. 그는 학부모회로부터 학생들의 생명수업 기자재를 사는 데 필요한 기금을 모으는데 도움을 달라는 전화를 받았다고 한다. 이에 양용은이 내놓은 것은 그 누구도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물품들이었다. 자신이 지난해 미네소타주 체스카 헤이즐틴의 내셔널 콜프 클럽에서 열린 PGA챔피언십에서 우승할 때 마지막 18번 홀에서 가져 온 핀 플래그와 그 때 입었던 티셔츠에 친필 사인을 해 경매 물품으로 기부를 한 것이다. 핀 플래그와 티 셔츠 모두 타이거 우즈의 고개를 떨군 모습과 함께 PGA 역사에 영원히 기억될 물품들이다. 양용은으로서는 ‘가문의 영광’으로 가보로 남기거나 후일 자신의 기념관을 건립할 때 반드시 있어야 하는 가치를 지닌 소장품들이었다. PGA 명예의 전당 박물관에도 갈 만한 역사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다. 그의 기부 사실을 전한 기사에 따르면 학부모회의 이사인 사라 클로스 씨가 ‘사실 양용은이 아들을 생각해서 친필 사인 골프 볼 몇 개 정도를 보내줄 줄 알았다. 상자를 뜯어 물품을 확인하는 순간 여기저기서 비명이 쏟아졌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이 같은 사실은 ‘PGA투어닷컴’이 2월23일 크게 보도하면서 알려졌다. 그런데 양용은은 별 일 아니라는 태도였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아이가 다니는 학교의 자선행사이다. 그 셔츠는 내게도 소중한 만큼 팔면 값어치가 더 많이 나갈 것이라고만 생각했다’는 것이다. 양용은은 인터뷰를 통해 “프로골퍼는 팬들로부터 사랑 받는 만큼 그만한 사회적인 책임을 지닌다. 작은 실천으로 내 아이가 큰 것을 배우기를 원했다. 또 생명 수업을 통해 더 큰 것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농부의 아들로 자라면서 내가 믿게 된 진리다.”라고 밝혔다는 것이다. 필자는 2월 초 일 때문에 미 LA와 세인트루이스를 찾았다. 당시 방문했던 모 세계적인 인형 회사에서는 직원들이 쿠키 판매 행사를 통해 이웃 라틴 아메리카 국가인 아이티 구호 기금 모금을 하고 있었다. 미국인들은 프랑스식 발음인 ‘아이티’라고 하지 않고 영어식 발음으로 ‘해이티(Haiti)’라고 해 처음에는 못 알아들었다. ‘해이티’ 보다 ‘해이리’에 더 가깝게 발음했다. 김연아도 캐나도 토론토에서 올림픽을 대비해 막바지 훈련을 하던 중에도 아이티 참사를 접하고 1억 원을 유니세프에 전달했다. 그리고 밴쿠버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프로 골퍼 최경주는 소니 오픈 참가 상금 전액을 내놓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스포츠 스타들의 사회적 역할이 더욱 더 커지고 있다. 양용은의 교훈을 잊지 않겠다는 박찬호가 양키스에서 우승 반지를 끼기를 기대하면서 다른 스포츠 스타들도 떠올려 보게 된다.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것은 쉬운 노릇이 아니다. /전 일간스포츠 편집국장, MLB 특파원

Copyright ⓒ OSEN.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