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최영균의 인사이더] 제프 벡 다음에 게리 무어라니. 2010년 봄은 록 팬들에게 오래오래 기억에 남을 시간인 듯하다. 이번엔 게리 무어가 온다. 4월 30일 서울 올림픽공원 펜싱경기장에서 첫 내한 공연을 갖는다. 처음이지만 마지막일 수도 있다는 사실은 공연기획사의 과장된 홍보 카피가 아니다. 게리 무어는 많은 로커들이 ‘제2의 고향’으로 여길 만큼 록 공연의 천국인 일본에서의 공연도 이번에 21년 만에 겨우 가질 만큼 장거리 비행을 좀처럼 할 수 없는 특이한 질병을 앓고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게리 무어는 한국에서 가장 인기 있고 친근한 록 기타리스트이지만 한국과는 가장 멀리 존재하는 역설적인 전설이었다. 솔로 명반들을 내놓던 그의 절정기 1980년대에도 이웃 일본에는 다녀갔지만 록 공연 시장이 제대로 형성되지 못했고 록 음악에 대한 사회적 제약이 많았던 한국에서는 그를 보고 싶어했던 많은 팬들을 만날 기회가 없었다. 특히 게리 무어는 한국에서 본의 아니게 ‘국민 기타리스트’였다. 한국 국적 민항기를 소련 공군이 격추시켰던 사건을 다뤘던 노래 ‘Murders In The Skies’ 때문에 당시 한국인들에게 ‘게리 무어’는 단순한 록 기타리스트의 이름 그 이상이었다. 물론 게리 무어가 한국에 대한 특별한 애정이 있어서 이런 노래를 발표한 것은 아니었다. 민간인을 대량 학살한 강대국의 군사 만행에 대한 분노가 동기가 된 것이지만 당시만 해도 약소국인 한국의 억울한 사연을 알아준 세계적인 유명인에게 한국인들은 애정을 쏟아 붓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게리 무어는 ‘Murders In The Skies’라는 노래를 발표하지 않았더라도 한국에서는 국민 기타리스트 대접을 받을 만했다. 한국인들이 좋아하는 애절한 록 발라드 성향의 곡들을 특히 많이 발표했고 이 곡들은 한국에서 큰 사랑을 받았기 때문이다. 아마도 록 기타리스트 중에 에릭 클랩튼 정도를 제외하면 게리 무어만큼 한국에서 히트곡이 많은 가수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Parisienne Walkways’ ‘Empty Room’ ‘Spanish Guitar’ ‘The Loner’ 등 솔로 활동 때의 수많은 곡들이 한국 록 팬들은 물론 일반 음악팬들에게도 이름이 알려질 만큼 사랑을 받았다. 이는 ‘슬픔’의 음악인 블루스에 기반한 그의 록 음악들이 한국인들의 정서에 특히 잘 맞았기 때문이다. 블루스에 뿌리를 둔 전설적인 기타리스트 중에서도 특히 게리 무어가 한국에서 높은 인기를 누린 것은 블루스를 너무 무겁고 끈적이지 않게, 대중의 취향에서도 접근하기 쉽도록 록에 접목을 잘 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게리 무어에 빠진 한국 록 팬들은 그가 솔로 활동을 하기 전에 활동했던 록그룹의 앨범에도 목이 말라 소위 ‘빽판’이라 부르는 해적판 음반을 찾아 세운상가를 헤맸다. 전설적인 하드록 그룹인 신 리지(Thin Lizzy)나 록에 재즈를 비롯한 여러 음악적 요소들을 가미해 프로그레시브 록에 가까운 음악을 구사했던 콜로세움 II(Colosseum II)의 음악에도 관심을 가졌다. 1980년대 게리 무어는 한국 록 팬들에게 록의 입문서 구실을 했다. 가장 대중적이었던 록 그룹 스콜피언스나 한국에서도 불멸의 사랑을 받았던 ‘Stairway To Heaven’의 레드 제플린, 그리고 당시 갑작스런 죽음으로 피지 못한 천재성을 그리워했던 기타리스트 랜디 로즈가 속했던 오지 오스본 그룹 같은 록 그룹들과 함께 게리 무어를 들으면서 록의 세계로 발걸음을 내딛었다. 가장 사랑했으나 만남을 기약할 수 없었던 게리 무어에 대한 한국 팬들의 외사랑은 역설을 끝날 때가 왔다. 지난 달 한국 록 팬들을 절정의 황홀경에 빠지게 만든 제프 벡 기타 소리의 여운이 채가시기도 전에 게리 무어의 처절하고 슬픈 핑거링을 다시 만날 수 있다니 한국에서 록 팬인 사실이 슬펐던 시절은 이제 확실히 끝났나 보다. /대중문화가이드 ck1@osen.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