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리 4집, 아이돌 출신의 ‘가수의 길’에 대한 진지한 질문
OSEN 기자
발행 2010.05.02 08: 06

[OSEN=최영균의 인사이더] 이효리가 가수로 돌아온 지 꽤 됐다. 하지만 본격적인 활동은 이제 시작된 듯한 느낌이다. 천안함 애도 기간이 끝나고 본격적으로 공중파 음악 프로그램들이 막 재개됐기 때문이다. 컴백은했지만 방송을 못 하던 시기에도 역시 연예계를 대표하는 이슈메이커답게 스타일, 퍼포먼스, 뮤직비디오 등 관련된 모든 것들이 동시다발적으로 화제와 논란을 몰고 다니긴 했지만 이제 무대에 오를 수 있게 되면서 이효리 4집의 모든 것을 온전히 만날 수 있게 됐다. 무대는 여전히 강렬하고 이슈들은 정신 없이 떠도는데도 이전 음반 때와는 달리 이번 활동에 가장 도드라지는 부분은 ‘의외로’ 음악이다. 워낙 퍼포먼스나 스타일 등 비주얼적인 측면이 먼저 어필을 해 자칫 놓칠 수도 있지만 이번 활동을 통해 이효리는 좀더 뚜렷한 자신의 음악 세계를 갖추고 싶어하는 것으로 보이고 활동에서 음악이 가지는 무게가 가장 무겁게 느껴진다. ‘이효리가 이번 앨범에서 뮤지션이 되려 한다’는 일부 분석도 있지만 이는 다소 과잉 해석으로 보인다. 그보다는 소박하게 ‘이효리표 음악’의 개념을 잡고 싶어했던 듯하다. 물론 이전 앨범에서도 어느 정도 자신이 추구하고 싶은 음악을 부분 반영해왔지만 이번에는 좀더 대대적으로 이를 실행해보고 있다. 음악에 무게 중심을 두는 것은 당연히 가수라는 자신의 직업에 대한 애착 때문으로 보인다. 여러 번 밝혔듯 이효리는 오래 가수 생활을 하고 싶어한다. 그리고 전환기라 할 수 있는 30대를 맞아 이후 가수 생활을 위해 음악적으로 자기 세계를 갖추는 것에 대한 고민이 뒤따랐을 법하다. 이효리는 그간 남들이 뭐라 하던, 화려함에만 전적으로 의존하지 않고 ‘괜찮은’ 가수가 되기 위해 꾸준히 노력해왔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음반은, 가창 능력을 끌어 올려 지난 해 치러 낸 단독 콘서트의 연장선상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전 음반들의 타이틀이 스타일과 관련된 감각, 감성 영역의 단어들이었던 데 반해 ‘logic(논리)’을 사용한 이번 음반 제목도 같은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향후 롱런하는 가수가 되기 위해 ‘이효리표 음악’을 찾으려는 고심의 결과인 ‘전략’이 음반명에도 반영된 것이 아닐까 추측해본다. 또한 이번 4집에는 ‘이효리표 음악’을 찾기 위해 심사숙고한 흔적들이 느껴져 다시 한번 ‘logic’이라는 단어와 연결된다. 이효리는 자신의 음악을 정립하기 위해 ‘감각’과 ‘노력’에 의지해 보기로 한 것 같다. 실제로도 외국의 좋은 프로듀서 중에는 음악 창작 능력을 갖추지 않았더라도 감각과 노력으로 성공을 거둔 이가 많다. 특히 이효리가 선호하는 힙합 분야가 그렇다. 이효리는 음악적 완성도에 많은 공을 들이고 자신만의 감각으로 음악에 개성을 부여하는 방법으로 ‘이효리표 음악’을 찾고 있다. 완성도 측면에서는 악기 배합, 곡 흐름(구성), 사운드 등에서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투자한 시간과 시도들의 자취가 발견된다. 수록곡들은 대부분 음악적으로 꽉 찬 느낌을 주고 흥미롭게 느껴지는 음악적 시도나 구성들도 눈에 띈다. 마치 박진영이나 이민우 음반이 극도로 대중적이기만 할 것이라는 선입견 아래 들어보다가 만만치 않은 시도들이 발견될 때처럼. 자신 만의 음악적 색깔로는 트렌드를 기반으로 ‘세련됨’과 ‘색다름’을 찾는 길을 택한 듯하다.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진지하게 감상하는 리스너로 알려진 이효리는 자신의 주관심 장르인 힙합에서부터 인디 포크 음악까지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심도 있게 듣는 편인데 어느 장르든 세련된 느낌을 주는 곡들을 선호하는 편이다. 이런 ‘트렌드’ ‘세련됨’ ‘색다름’이 가장 잘 반영된 곡이 ‘그네’다. 다른 힙합곡들에서도 어느 정도 일관되게 눈에 띈다. 이효리는 여기에 자기만의 음악 색깔을 좀더 뚜렷하게 갖추기 위한 장치들을 몇 가지 더 추가하고 있다. 우선 작곡가 선정이 그러하다. 바누스 등 자신이 판단하기에 잘 안 알려진 실력파 작곡가를 발굴해내면서 감식안을 통해 프로듀서로서 음악적 개성을 구현하고자 했다. 더불어 가요계에서 지겹도록 시도됐던 오토튠을 가창에 도움을 받을 수 있음에도 철저히 배제해 ‘똑 같은 음악’이 되길 거부하기 위해 노력했다. 피쳐링 진용 역시 음악성을 유지하면서도 개성을 부여하기 위해 세심하게 선택한 흔적이 보인다. 전반적으로 이번 4집은 괜찮은 음반이고 잘 만든 앨범이다. 음악의 질을 위해, 개성을 위해 많은 공을 들인 음반이라고 평할 수 있다. 근래의 힙합 트렌드를 적절히 반영하면서도 대중성과, 본인이 추구하고 싶은 힙합적 요소들의 비중을 적절히 곡마다 조절했다. 조정은 세심하게 이뤄졌는데 대중성 아니면 힙합의 이분법적 구도가 아니라 타이틀곡인 ‘치티치티 뱅뱅’같은 곡에서는 대중성을 좀더 높이고 ‘100 percent’같은 곡에서는 힙합적인 본질을 좀더 강조하는 식으로 균형에 신경을 쓰고 있다. ‘허세’가 두드러지는 가사 역시 눈길이 가는데 이를 불편해 하는 이들도 꽤 있는 듯하다. 하지만 ‘허세’는 힙합의 본질적 요소 중 하나라 좀더 제대로 힙합을 해보려는 시도로도 보이고 한 겹 더 들어가보면 겉으로는 당당하지만 의외로 소심한 것으로 알려진 이효리가 음악적인 도전에 나선 자신에 대한 쑥스러움, 혹은 자기 다짐을 역으로 표현한 듯한 느낌도 든다. 이효리는 이번 4집을 통해 ‘음반 가수’로 한 걸음 나아갔다고 본다. 단순히 팬심으로, 히트곡 한 두 곡 때문에 음반이 팔리던 가수가 아니라 음악적으로 판단해도 완성도나 듣는 재미 측면에서 전체적으로 들을 만한 음반을 만들어 낸 가수이기 때문이다. 성적도 나쁘지 않다. 젝스키스와 H.O.T의 해체 이후 수많은 아이돌 출신 가수들이 롱런을 위해 프로듀서형 가수로 성장을 시도했지만 1위를 휩쓸며 ‘올킬’을 이룬 가수는 비와 이번의 이효리 외에는 별로 떠오르지 않으니 말이다. 가창이나 랩에서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며 아쉬워하는 반응도 없진 않다. 또 프로듀서 이효리가 선보인 ‘음악 세계’가 뮤지션들의 음악 세계와 비교하면 색깔이 아직 명징하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는 좀더 지켜볼 일인 듯하다. 이효리는 현재 걸그룹의 미래이다. 이효리가 아이돌에서, 롱런하는 프로듀서 겸업 가수, ‘음악인’으로 잘 발전한 사례가 된다면 10년 후 가요계도 좀더 희망적으로 바뀐다. 현재 가요계를 뒤덮고 있는 걸그룹이 뒤를 따를 전례가 마련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가요계는 10년 후 허리가 제대로 없는 기형적인 상태가 될 가능성도 높기에 이효리의 도전은 그래서 중요하다. /대중문화가이드 ck1@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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