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윤호의 인사이드 베이스볼]이종범은 전 포지션 ‘슈퍼 유틸리티맨’ 가능
OSEN 기자
발행 2010.05.03 08: 28

지난 4월23일 탬파베이 레이스 구단이 올 시즌 2루와 외야 수비를 오가고 있는 벤 조브리스트(29)와 5년간 총액 3000만 달러(한화 약 330억 원, 1달러 1100원 환산)에 달하는 장기 계약을 체결해 메이저리그에서는 다시 한번 ‘슈퍼 유틸리티 맨(super utility man)’의 가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벤 조브리스트는 지난 해 무려 7개의 포지션으로 선발 출장한 ‘슈퍼 유틸리티 맨’의 대표적인 선수이기 때문이다. 그의 올 시즌 연봉은 43만 달러에 불과하다, 그런데 내년부터 5년간(2014, 2015년은 구단 옵션) 평균 600만 달러(약 66억 원)의 연봉을 받게 된다. 구체적인 계약 내용은 발표되지 않았다. 벤 조브리스트의 7개 포지션 선발 출장은 2001년 미네소타 트윈스의 데니 호킹 이후 처음이었다. 투수와 포수를 제외하고 내외야 모든 포지션을 오간 것이다. 그런데 벤 조브리스는 다른 ‘유틸리티 맨’과 차별화되는 것이 또 있다. 그가 스위치 히터라는 사실이다. 수비 위치뿐만이 아니라 타석에서까지 좌우를 오가는 강점을 가지고 있다. 탬파베이 레이스의 앤드류 프리드먼 부사장은 “야구 실력 외에도 훈련과 경기에 임하는 자세가 뛰어나고 성품도 좋다. 경기에 필요한 모든 것을 갖춘 선수”라고 벤 조브리스트를 평가하며 이번 계약과 함께 그가 구단의 자선 기구인 ‘레이스 베이스볼 파운데이션’에 45만 달러(약 4억9500만원)를 기부하기로 한 것도 소개했다. 그는 주전 자리를 확보 못해 이리 저리 오가는 선수들과는 차원이 다른 ‘슈퍼 유틸리티 맨’이 분명하다. 벤 조브리스트는 2006년 7월 휴스턴에서 탬파베이로 트레이드 돼 메이저리그에 데뷔했다. 2007년 유격수로 시즌을 시작했는데 초반부터 부진해 곧 트리플A로 떨어지는 시련을 겪었다. 그는 이번 계약을 마치고 가진 인터뷰에서 당시를 회상하며 “내가 바닥으로 떨어졌다는 것을 실감했다”고 밝혔다. 실제로 벤 조브리스트는 2007시즌 내내 구단의 트레이드 ‘최대 실패작’으로 몰렸다. 그런데 지난 해 7개 포지션을 오가면서도 타율 2할9푼7리, 27홈런, 91타점을 기록해 출입 기자단 선정 구단 MVP로 눈부신 변신을 했다. 벤 조브리스트를 말할 때 관심을 가지고 연구해 볼 부분이 하나 더 있다. 그는 전형적인 단타형 타자였다. 메이저리그에는 인형극에서 유래한 ‘펀치 앤 주디 히터(Punch-and Judy hitter)’라는 표현이 있다. 컨택트 능력이 있어 잘 맞히기는 하지만 힘이 떨어져 단타에 그치는 타자를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는 작년 성적(27홈런)이 말해주듯 파워 히터로 변신했다. 연구와 노력에 따라 단타자도 중장거리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슈퍼 유틸리티 맨’은 야구의 진화론(進化論)을 보여주는 선수 유형으로 2000년대 들어 메이저리그에서 번식을 시작했다. 현재는 열 손가락으로 꼽기 어려울 정도의 선수 숫자이지만 벤 조브리스트와 같이 그들 스스로 존재 가치를 보여줄 경우 마이너리그에서부터 급속도로 자리를 잡을 가능성이 있다. ‘유틸리티 맨’은 여러 용도로 쓸 수 있는 선수를 말하는데 ‘멀티 포지션 플레이어(multi-position player)’, ‘유틸리티 플레이어(utility player)’라고도 한다. ‘유틸리티 맨’은 오래 전부터 존재해 왔다. 수비를 전담한다던가, 아니면 대타로 나서면서 수비에 들어가는 등 타격 혹은 수비 가운데 특정한 능력만 뛰어나 그 자질을 필요로 할 때 기용되는 선수들이 ‘유틸리티 맨’이다. 그렇다면 ‘수퍼 유틸리티 맨’은 어떤 선수들을 말할까? 연예에서 ‘엔터테이너’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경우와 같다. 탤런트, MC, 가수 등 모든 분야를 훌륭히 소화해내면서 거의 매일 TV에 나오고 연예인이다. ‘슈퍼 유틸리티 맨’은 바로 그런 스타일의 선수들을 말한다. ‘유틸리티 맨’이지만 주전인 선수이다. 2005년 월드시리즈 우승팀 시카고 화이트삭스의 켄 윌리엄스 단장(GM)은 그 해 12월 구원 투수 다마소 마르테를 주고 피츠버그 파이어리츠에서 롭 맥코비악을 트레이드해왔다. 롭 맥코비악은 2005시즌 피츠버그에서 142경기에 출장해 6개의 수비 위치를 오가면서 2할7푼2리의 타율을 기록한 ‘슈퍼 유틸리티 맨’이다. 2005년 LA 에인절스의 주전으로 1번 선두타자(leadoff man)를 맡으면서 642타석에 들어선 숀 피킨스도 수비 위치가 6개에 이르렀고 밀워키 브루어스의 빌 홀(501타석)도 내야 3곳의 수비를 오갔다. 숀 피긴스가 2005시즌 맡았던 수비 위치는 2루, 3루, 유격수 그리고 외야 세 곳 모두여였다. 신시내티 레즈의 라이언 프릴은 2004년에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의 토니 필립(1992년) 이후 처음으로 10경기 이상에서 5개의 다른 포지션에 출장한 선수가 됐다. 그가 ‘슈퍼 유틸리티 맨’이 본격적으로 번식을 시작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라이언 프릴은 2003년 봅 분 감독을 찾아가 ‘포수도 할 수 있다’고 테스트를 요청해 합격 판정을 받은 뒤 위급 상황에서 포수까지 하게 됐다. ‘슈퍼 유틸리티 맨’을 팀에 보유하고 있으면 선택의 폭이 넓어져 더 변화무쌍하고 재미있는 야구를 펼칠 수 있을 것은 분명하다. 한국 프로야구 선수들 가운데 ‘슈퍼 유틸리티 맨’이 될 수 있는 선수는 KIA 타이거즈의 이종범이 단연 최고의 후보이다. 그는 내 외야 모든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고 강한 어깨로 투수, 포수까지 가능하다. 7개가 아니라 9개 전 포지션이다. 한국야구 사상 첫 ‘슈퍼 유틸리티 맨’이 언제 탄생할 지 기다려진다. /전 일간스포츠 편집국장, MLB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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