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그 아름다운 고통의 시간
(이 글에는 영화의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OSEN=정덕현의 네모난 세상] "시는 정말 어려워요!" 이창동 감독의 영화 '시'에서 주인공 미자(윤정희)는 시 쓰기 강좌의 선생님 김용택 시인에게 자주 이렇게 말한다. 그녀의 진심이 담긴 말처럼 '시'는 정말 어렵다. 그것이 본질을 들여다봐야 하기 때문이다.

영화는 무심하게 흐르기만 하는 강물에서 시작해 바로 그 강물에서 끝난다. 저 멀리서 강물 위로 떠내려 오는 그 무엇은 차츰 화면 가까이 다가오면서 실체를 드러낸다. 한 여중생의 시신. 그 시신 옆으로 이창동 감독이 직접 육필로 썼다는 제목, '시'가 나란히 보여진다. 이 첫 장면은 이 영화의 거의 모든 것을 담아낸다. 우리는 저 멀리 있어서 그저 그런 풍경으로만 생각해오던, 그래서 김용택 시인이 "여러분은 한 번도 본적이 없다"고 말하는 그 풍경의 본질을, 마치 강물처럼 무심하게 흘러가는 이 영화의 영상을 통해 바라봐야 한다. 미자의 마음을 그토록 괴롭혔던 한 꽃 같은 소녀의 속절없는 죽음과, 그 죽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 흘러가는 사람들과 시간들의 잔인하지만 그것이 본질인 삶을 바라봐야 한다.
그러니 어찌 '시(중의적 의미로)'가 어렵지 않을 수 있을까. 영화 속 김용택 시인의 말을 빌리면 시가 어려운 것은 그것이 쓰기가 어려워서가 아니라, 시를 쓰겠다는 그 마음을 갖기가 어려워서다. 즉 속절없는 삶을 아무런 편견 없이 바라본다는 것이 어렵다는 것이다.
저 멀리 그저 소문 속에 있던 여중생은, 미자가 시를 배우기 시작하는 그 즈음, 그래서 김용택 시인이 '사물을 제대로 바라보라'는 그 시 쓰기의 첫걸음을 얘기하는 그 시점에서 차츰 미자에게 다가온다. 그 죽음에 손자가 관련되어 있다는 충격적인 사실은 미자가 여중생을 좀 더 제대로 바라보게 되는 계기가 된다. 추모미사에도 가보고 여중생의 어머니도 만나보면서 미자의 마음 속에 여중생이라는 불특정했던 본질 없는 삶은 아녜스라는 이름으로 본질을 드러낸다. 미자에게 그러니까 여중생이 아녜스라는 이름을 가진 피어나지 못한 꽃이 되는 과정은 그녀가 시를 쓰는 과정과 동일하다. 미자는 추모 미사에서 훔쳐온 아녜스의 사진을 마치 가족이나 되는 양, 자기 집 식탁 위에 올려놓는다.

아녜스 주변의 삶들은 그러나 그저 강물의 흐름처럼 무심하게 흘러간다. 아녜스의 엄마는 밭에서 깻잎을 따고 그 해의 풍작과 흉작에 대해 걱정한다. 절대로 딸의 죽음을 합의금으로 묻어둘 것 같지 않던 그 엄마는 결국 별 저항 없이 합의를 해준다. 아녜스를 죽음에 이르게 한 미자의 손자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밥 투정을 하고 TV를 보며 웃고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며 오락실에게 게임을 한다. 가해자의 부모들은 말로는 아녜스의 죽음이 안타깝다 하지만, 정작 자신들의 걱정은 자기 자식들의 앞날뿐이다.
그런 현실을 목도하는 이제 '시 쓰기의 마음으로 세상을 보는' 미자는 고통스럽다. 그래서 처음 가해자의 부모들이 어느 음식점에서 만나 자기 자식들을 위해 합의금 얘기를 꺼낼 때, 미자는 그 자리를 빠져나와 화단의 붉은 꽃(미자는 이 꽃을 슬픔이라고 하죠)을 바라본다. 아녜스의 엄마가 합의를 해주는 그 자리에서도 같이 앉아있지 못하고 밖으로 빠져나온다. 무엇보다 무심한 손자를 바라보는 미자의 마음은 더더욱 무겁다.
미자는 결국 아녜스의 목소리로 시를 쓴다. 아녜스가 얼마나 세상의 피어나는 꽃들을 사랑했는지를, 그 누구도 아녜스의 죽음 앞에 얘기해주지 않았던 그 이야기를 대신 시로 쓴다. 그 순간 우리는 시가 말하는 '아름다움'의 실체를 보게 된다. 거짓 없이 바라본다는 것, 그렇게 속절없이 사라져가는 것들을 고통스럽지만 안타까운 심정으로 마치 내 일처럼 바라본다는 것이 그토록 아름다운 일이라는 것을 우리는 미자가 불러주는 '아녜스의 노래'를 통해 알게 된다. '내 삶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은 바로 그 누군가의 진심을, 우리 자신의 본질을, 세상의 사라지는 모든 것들의 이야기들을 고통스럽지만 바라보는 그 순간이라는 것.
그래서 이창동 감독의 영화 '시'는 어렵다. 아니 고통스럽다. 마치 미자가 시를 대하면서 경험한 것처럼. 또 세상의 모든 아름다운 시가 그러하듯이.
/정덕현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mansuri@osen.co.kr 블로그 http://thekian.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