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윤표의 발 없는 말]‘준비된 거포’ 최진행, ‘깜짝 거포’ 아니야
OSEN 홍윤표 기자
발행 2010.05.21 09: 02

2010년 한국 프로야구 판에는 미처 예상치 못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타자들의 변화나 특이한 현상 중의 한 가지가 바로 이대호(28. 롯데 자이언츠)의 활황세와 이름이 별로 알려지지 않았던 최진행(25. 한화 이글스)의 돌출이다.
작년 타격왕 박용택(31. LG 트윈스)의 추락이나 안타왕 김현수(22. 두산 베어스)의 부진과 극명하게 대비되는 현상이다. 박용택은 5월20일 현재 규정타석을 채운 타자들 중 최하위인 49위(타율 .220)이고, 김현수는 3할 대 밑으로 내려가 타격 22위(. 292)에 머물러 있다.  
반면 이대호는 타격 3개 부문(타율, 안타, 장타율)에서 1위를 달리고 있고, 홈런( 9개) 공동 3위, 타점(35점) 4위 등 공격 전 부문에서 고르게 상위권에 올라 있다. 이대호야 이미 충분히 ‘검증’된 타자이므로 새삼스레 놀랄 일이 아니지만, 최진행의 홈런더비 1위는 그야말로 뜻밖이다.

최진행은 20일 잠실에서 열렸던 두산 베어스 전에서 홈런 두 발(1회 3점, 4회 솔로)을 날려 롯데의 카림 가르시아(2위. 10개)를 제치고 홈런더비 선두에 나섰다. 일각에서는 지난해 맹위를 떨쳤던 KIA 타이거즈의 김상현(30)을 보는듯하다는 소리도 나온다. 최진행은 5월 들어 16게임에서 6홈런을 양산,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그의 강세는 팀의 상승세와도 맞물려 있다.
잠깐 그의 이력을 살펴보자. 
덕수정보고를 나온 외야수 최진행은 2004년 한화에 2차(2라운드 10순위)로 지명 받아 입단했다. 첫 해 홈런 9개를 날려 거포의 잠재력을 드러내긴 했지만 그 후 빛을 보지 못했다. 가장 큰 이유는 수비불안. 경기 출장이 드물다보니 남의 눈에 띌 일도 없었다.
2006~2007년에는 경찰청 선수로 병역을 마쳤고 한화 복귀 후 2008, 2009년에는 경기에  제대로 나가지 못했다. 어쩌다 얻은 출장 기회에서도 수비 실수를 하는 바람에 감독의 신뢰를 얻지 못했다. 홈런 수는 2009년 2개 포함 11개가 고작이었으니 올해 이미 통산 홈런수와 나란히 한 셈이다. 올해 연봉은 3000만 원으로 8개 구단 4번 타자 가운데 가장 낮다. 연봉대비 대표적인 ‘저평가 우량주’로 불러도 손색이 없다. 
최진행이 제 자리를 못 잡고 방황하는 동안 그의 고교 동기생인 이용규는 2004년 LG에 입단했다가 2005년 KIA 타이거즈로 이적한 뒤 국가대표로도 발탁되는 등 한두 손가락에 꼽히는 톱타자로 자라났다. 이용규의 올해 연봉은 1억 6000만 원으로 최진행과는 거리가 있다.
최진행은 20일 경기 후 인터뷰에서 “고교 동기생인 이용규가 WBC 등 국제대회 대표로 나가 잘 하는 모습을 보고 응원도 했지만, 자극도 받아 분발하게 됐다”고 부러움 섞어 털어 놓았다.  아울러 “프로 들어와 첫 두 자릿수 홈런을 기록해 기쁘다. 홈런 1위가 실감은 안 난다. 팀이 4연승을 올려 더욱 기분 좋다”면서  “장종훈 코치의 조언이 많은 도움이 됐다. 타격에 아직 눈 떴다 말하긴 이르다”며 겸손하게 말했다.
최진행은 “그 동안 (김)태완이 형이 찬스를 많이 만들어줬지만 살리지 못해 미안했다. 상대 투수들이 태완이 형을 피해서 나와 상대하는 것이 나쁠 것 없다. 오히려 찬스가 많이 생겨 좋다”면서 “올 시즌 초반에 수비 실수도 많이 했는데 한대화 감독님이 항상 ‘자신 있게 하라’고 격려해 주신데 힘을 얻고 있다”고 밝혔다. 
한화는 작년 시즌 후 왕년의 거포 해결사 한대화(50) 감독을 새 사령탑으로 영입, 팀 재정비에 나섰으나 타선의 쌍두마차였던 김태균(28. 지바롯데 마린스)과 이범호(29. 소프트뱅크 호크스)가 일본 무대로 빠져나가는 바람에 큰 구멍이 생겼다.
신임 한대화 감독은 고심 끝에 최진행을 4번 타자 후보로 낙점, 공을 들이기 시작했다. 1982년 세계야구선수권대회 일본과의 우승 결정전에서 역전 결승 3점 홈런을 날려 이름을 떨쳤던 한 감독은 해태 타이거즈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최고의 해결사답게 팀의 고민 ‘해결’에 나섰다. 그가 쥔 열쇠 말이 바로 ‘최진행’이었다.
  
최진행을 눈여겨 봐두었던 한대화 감독은 4번 타자 후보로 점찍고 일본 나가사키에서 펼쳤던 가을철 훈련 때 팔소매를 걷어붙이고 손수 지도를 시작했다. 1:1로 특별 학습에 나선 것이다.
최진행은 19일 두산 전에서 오른손 중지를 다쳤다. 20일 경기를 앞두고 한 감독은  최진행을 불러 “방망이는 힘으로 치는 것이 아니다. 손가락 힘을 빼고 쳐봐라” 고 일러주었는데, 감독의 주문을 제대로 소화했다.
최진행의 성장은 감독의 믿음과 자신감 불어넣기가 커나가는 선수에게 얼마나 중요한가를 입증한 표본같은 사례다. 
최진행은 키 188㎝, 몸무게 100㎏으로 체구가 크다. 거포의 조건을 갖췄다. 그는 활달하거나 적극적으로 설치는 성격이 아니다. 한화 오성일 홍보팀장은 “차분하고 조용하지만 성실성은 남들이 따라갈 수 없다”고 칭찬했다.
한화는 1990년대 장종훈(42)이라는 당대 최고의 강타자를 배출한데 이어 2000년대 중반에는 김태균이 그 대를 이었고, 이제 최진행이 ‘거포 3대’의 적자(嫡子)로 발돋움하고 있다. 선수는 감독의 ‘열’과 ‘성’을 먹고 자란다. 최진행은 한대화 감독과 장종훈 코치의 열성적인 지도로 꿈틀대던 ‘거포 본능’을 본격적으로 발휘하기 시작했다.  그런 선수를 보는 즐거움은 크다.  
홍윤표 OSEN 대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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