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7. 김재현, 죽어도 못 보내.”
지난 6월20일, 인천 문학구장에서 열렸던 KIA 타이거즈전에서 SK 와이번스를 응원하는 여성 팬이 관중석에서 피켓을 들고 김재현(35)에게 성원을 보내는 장면이 TV 중계 화면에 잡혔다.
김재현은 올 시즌 개막을 앞두고 올해를 끝으로 선수생활을 접겠다는 뜻을 외부에 공표해버렸다. “예전부터 생각해왔다. 힘 있을 때 좋은 모습으로 은퇴하려고 했다.”는 게 김재현의 ‘예고 은퇴’의 변이다.

그를 아끼는 팬들의 마음은 그래서 더욱 애틋해진 듯하다. 은퇴할 무렵이 되면 선수생활에 더욱 애착이 가거나 진한 미련 때문에 시기를 놓치는 사례를 많이 봐온 터여서 김재현의 그런 선언은 야구계에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실제로 김재현은 올 시즌 들어 누가 물어보면 자신의 의지를 굽힘없이 확인해줬다.
최근 김재현의 ‘생각’과 ‘의지’를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김재현은 “내뱉은 말이 있는데, 무조건 은퇴한다. 번복할 생각이 없다”고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SK가 올해 고비마다 어려움을 딛고 선두를 질주하고 있는 데에는 사실 김재현의 노릇이 컸다. 최근 세 가지 사례만 봐도 알 수 있다. 김재현의 진가를 되새겨보게 하는 장면들은 지난 6월19일과 20일, 그리고 27일에 있었다.
김재현은 6월19일 인천 문학구장에서 열렸던 KIA 타이거즈전에서 대타만루홈런을 날려 팀의 10-4 대승을 이끌었다. 그 다음날(20일)에도 선제 결승 2루타와 쐐기 2점 홈런을 날려 팀의 4-0으로 승리를 주도했다.
김재현은 27일 부산 롯데전에서 SK가 2-1로 한 발 앞서가던 6회 선두타자로 나서 우월 솔로 홈런을 뽑아냈다. SK가 경기의 주도권을 쥐게 하는 귀중한 한 방이었다.
팬들은 그의 이름 앞에 ‘캐넌히터’라는 무시무시한 수식어를 붙여 부르는데, 그 말 그대로 ‘캐넌히터’의 위명을 실감나게 한 장타 시위였다.
김재현의 앞에는 두 가지 ‘달성예상 기록’이 가로놓여 있다. 한 가지는 개인통산 200홈런이고, 다른 한 가지는 개인통산 3할 타율이다. 200홈런 고지에는 불과 두 개만을 남겨놓고 있어서 달성 초읽기에 들어갔다. 비록 선발 출장이 드물고 대타로 자주 나가는 처지이기는 하지만 최근 되살아난 그의 거포 본능을 감안할 때 200홈런 달성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작년까지 191홈런을 기록하고 있던 김재현은 올 시즌 7홈런(5월 3개, 6월 4개)을 보태 200홈런에 두 걸음만 남겨놓고 있다. 200홈런은 역대 타자들 가운데 양준혁을 비롯해 14명만 밟아본 고지다.
1994년 LG에서 선수생활을 시작, 2005년 SK로 옮겨 2009년까지 15시즌을 치르는 동안 김재현은 3할대 타율을 8번 기록했고, 통산타율은 2할9푼5리(5443타수 1604안타)였다.
올 시즌에는 6월27일 현재 3할4푼5리(139타수 48안타)의 고타율로 통산타율을 2할9푼6리로 끌어올렸으나 3할에는 못 미친다.
김재현은 “3할 타율을 기록하고 싶지만 쉬운 것이 아니다”고 말했다. 한 타석 한 타석이 더 없이 소중할 수밖에 없는 김재현. 몇 가지 궁금한 것들은 그에게 직접 들어보았다.
-막상 은퇴를 한다고 그러니까 주위에서 더욱 애틋해하는 모양이다. 은퇴의사를 바꿀 생각은.
▲번복할 생각이 없다. 무조건 은퇴한다.
-시즌 후 팬들이나 구단 등 주위에서 강력히 만류한다면.
▲한 번 뱉은 말이 있는데…. 예전부터 생각한 것이지만, 힘이 있을 때 좋은 모습으로 은퇴하겠다. 올해도 아직까지 성적이 괜찮으니까. 많은 분들이 은퇴에 대한 얘기를 물어보시는데 이런 조건에서 은퇴하는 것이 보기에도 좋은 것 아닌가.
-개인통산 200홈런은 눈앞에 두고 있고, 3할 타율도 바라보고 있다.
▲기왕이면 3할 타율과 200홈런을 다 하고 싶은데, 타율은 쉽지가 않겠다. 올해 3할4푼을 치더라도 2, 3리 부족해 달성이 어렵다. 홈런은 생각하면 잘 안 나오므로 의식하지 않고 치려고 한다. 신경 안 쓰고 따라오게끔 해야지 연연하면 더 안 된다.
-요즘 보면 예전의 배트 스피드가 되살아난 것 같다. 방망이 무게는.
▲880~890그램짜리다. 거의 비슷한 배트를 계속 쓰고 있다. 젊은 선수들 사이에서도 배트가 가벼워지는 추세 인 것 같다.
-체력 유지는 어떻게 하는가.
▲항상 같다. 여름에 힘드니까 많이 뛴다.
-은퇴한다면, 어떤 길을 가려고 하는가. 야구 지도자 생각은 없는가.
▲야구 생각을 안 한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두 가지 길이 있다. (지도자 생활을 염두에 둔)야구에 대한 공부를 하는 것과 다른 분야 진출을 생각해 어학공부를 하는 것이다.
김재현은 “시간이 많지 않다.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팬의 기억에 오래 남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선수로서 그의 남은 시간은 짧을지 몰라도 그의 야구 인생은 길다. 2007년 SK 와이번스가 창단 후 첫 한국시리즈 정상에 서는 데 김재현은 일등공신 노릇을 했다. 그리고 최우수선수로도 뽑혔다. 팬들의 아낌없는 굄을 받아온 ‘선수’ 김재현은 차츰 다가오고 있는 종착역을 바라보면서 차분하게 자신의 앞날을 설계해 나가고 있다.
홍윤표 OSEN 대표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