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윤호의 인사이드 베이스볼]박찬호, 박지성과 한국 월드컵 4강의 추억
OSEN 홍윤표 기자
발행 2010.07.12 07: 30

세월은 무심하게 흘러갔다. 한국이 2002 월드컵 4강 신화를 썼을 당시 지금은 뉴욕 양키스의 불펜 투수가 돼 있는 박찬호가 29살이었다. 그로부터 8년이 흘러 프리미어리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박지성이 캡틴을 맡은 한국 축구 대표팀은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 사상 첫 원정 16강의 쾌거를 이룩했다.
지난 6월11일 개막돼 한 달 간 전 세계 축구팬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남아공 월드컵은 12일 새벽 네덜란드와 스페인의 결승전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2002년 월드컵 포루투칼 전에서 환상적인 슛으로 세계 축구계에 혜성처럼 등장했던 박지성도 어느덧 29살이 됐고 한국스포츠의 상징적인 스타 반열에 올랐다. 그는 8년 전 박찬호를 떠오르게 하는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물론 스타는 탄생한다. 그러나 박찬호, 박지성 급의 슈퍼 스타는 적어도 10년에 한 번 나올 수 있는 급이다. 흥미롭게도 현재 박찬호가 소속된 뉴욕 양키스, 박지성의 맨유는 각각 야구와 축구에서 세계 최고의 구단이다. 이제는 박지성 사인 받기가 옛날 박찬호만큼이나 어려워졌다는 소리도 들린다.

 
2002년 6월22일 오후 3시30분 광주 월드컵 경기장에서 한국과 스페인의 8강전이 시작됐다. 2002 한· 일 월드컵이 열린 해는 박찬호가 텍사스 레인전스와 5년간 총액 6500만 달러의 초대형 빅딜을 맺고 에이스의 기대를 온 몸에 받으며 시작한 아메리칸 리그 첫 시즌이었다. 그러나 부담이 엄청났던 모양이다.
스프링캠프를 그 어느 해 보다 강도 높은 훈련으로 마친 것이 오히려 화를 불러 들였다. 개막과 동시에 햄스트링이 생겼고 허리 부상 등이 겹치면서 그 해 6월22일 시점에서 2승3패로 최악의 부진에 빠졌다. 육체적인 고통과 주위의 혹독한 비난으로 생긴 상처에 스스로에 대한 실망까지 겹쳤던 박찬호는 한국과 스페인의 준준결승을 앞둔 시점에 미 동부 피츠버그 원정 중이었다. 한국에서의 경기 시작 시각인 오후 3시30분은 피츠버그 시각 새벽 4시30분이다. 열성적인 축구팬들이 아니면 모두가 잠들어 있는 시간이다. 게다가 아무리 월드컵이라 해도 다음 날 경기를 앞둔 메이저리거들이 경기를 볼 가능성은 사실상 전무하다.
당시 박찬호도 어떻게 해야 할지를 쉽게 결정하지 못했다.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었다면 모를까 너무 나쁜 상황이어서 다음 등판에 집중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는 이틀 후인 24일, 피츠버그를 상대로 시즌 3승에 도전하게 돼 있었다. 그러나 박찬호는 결국 한국과 스페인의 월드컵 8강전 응원을 결심했다. 전 세계의 한국인들이 모두 하나가 되는 역사적인 날 자신도 빠질 수 없다고 판단했다. 박찬호는 피츠버그 다운타운에 있는 호텔에서 그날 새벽 충혈 된 눈으로 한국이 월드컵 4강 신화를 이룩하는 감동을 지켜봤다. 연장전까지 0-0, 그리고 승부차기에서 스페인의 호아킨이 실축을 하고 홍명보가 쐐기골을 터뜨려 5-3 승리를 거두고 나니 밖은 환한 아침이었다. 그 시각 박찬호를 동행 취재하던 많은 기자들도 피츠버그의 한국인 식당 ‘스시 김’에서 모기에 뜯겨 가며 밤을 지새웠다.
그날 오후 피츠버그 PNC 파크에서 기자들과 박찬호가 만났을 때 서로 말로 표현 못할 기쁨을 나누었다. 모두 잠을 못 자 눈이 빨갰다. 야구를 목숨만큼이나 소중하게 생각하고 사랑하는 박찬호도 "가슴이 벅차 올라서 눈물이 날 정도였다"고 소감을 말했다. 당시 독일은 미하일 발락의 결승골로 미국에 1-0 승리를 거두고 4강에 올랐는데 한국은 독일에 0-1로 져 신화는 중단됐다. 독일은 이번 남아공 월드컵에서 아르헨티나를 4-0으로 일축하고 4강에 진출했으나 스페인에 0-1로 덜미를 잡혔고 우루과이를 3-2로 눌러 3위를 기록했다.
박찬호는 당시 한국 축구의 월드컵 4강 진출의 기운을 온 몸에 받고 24일 피츠버그전에 등판 6이닝 4안타 2실점의 수준급 투구 내용으로 시즌 3승째를 따냈다. 당시는 5년 장기 계약의 첫해였고 팀도 텍사스 레인저스였는데 그 후 샌디에이고, 뉴욕 메츠, LA 다저스, 필라델피아를 거치는 긴 여행을 하고 현재는 뉴욕 양키스 유니폼을 입고 있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 때 박찬호와 박지성이 무엇을 하고 있을지, 그리고 그들의 위상과 모습이 어떻게 변해 있을 것인가 흥미롭다. 세월 앞에서는 스타도 어쩔 수 없기 때문이다. [이상 과거 기사 참조]
 
/보경S&C㈜ 대표, 전 일간스포츠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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