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서부 지역 최대의 일간 신문인 LA 타임스에서 1996년부터 자신의 칼럼을 쓰고 있는 빌 플라스키는 미국 최고의 스포츠 칼럼니스트로 인정받고 있다. 필자도 LA 다저스를 9년간 현장 취재하면서 그의 취재 활동을 옆에서 지켜봤다. 조용한 분위기에서 나오는 날카로운 질문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영향력 또한 대단하다. 그의 공격 대상이 되면 버텨내기 힘들다. 그러나 사람들의 이야기를 쓴다는 그의 글에는 세상을 향한 따뜻한 마음이 담겨 있어 감동을 준다.
빌 플라스키는 다저스타디움을 지키는 88세 실비아 피스크, 그리고 그녀의 동생인 83세의 에스터 로젠 자매의 사연을 지난 8월7일치 자신의 칼럼에 썼다. 필자도 인상 깊게 그 글을 읽어 내용을 짧게 나마 소개하고자 한다.

칼럼의 제목은 ‘These Teams are the winningest team at Dodger Stadium(이들 팀이 다저스타디움에서 가장 많은 승리를 하는 팀이다)’이다. 플라스키는 자매를 팀(team)이라고 생각했다. 플라스키 칼럼의 주요 부분을 발췌했다.
‘실비아 피스크(88)와 에스터 로젠(83) 자매는 50년 째 함께 살고 있다. 그런데 이들 자매를 묶어 놓은 가장 강력한 요인은 LA 다저스를 공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 자매는 1972년부터 경기가 있는 날이면 다저스타디움을 찾아 게임을 본다. 1972년은 언니인 실비아가 다저스타디움 구내 매점에서 일을 시작한 해였는데 아직도 일을 하고 있다(필자는 미국 나이 88세, 우리 나이 89세인 할머니에게 일할 기회를 주는 미국 사회가 대단하다고 느낀다).
이 자매는 경기가 있는 날이면 언제나 다저스타디움에서 만난다. 장소는 맨 꼭대기 엘리베이터 옆이다. 8월5일 목요일 오후 5시20분이었다. 동생 에스터 로젠이 엘리베이터 옆 콘크리트 벽에 기대 있었는데 언니가 엘리베이터에서 나왔다.
그리고는 동생의 오른 손을 자신의 왼 팔꿈치에 끼고 함께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자매는 5층 높이인 랏지(lodge) 층에 내려 팔짱을 끼고 복도를 걸어 조심조심 동생의 지정석이 있는 129 섹션으로 이동했다. 한 명이 쓰러지면 둘이 함께 넘어지기 때문에 더 조심스럽다.
언니는 동생을 지정석에 앉히고 무릎에 햄버거가 담긴 봉지를 올려 놓아줬다. 그리고 어깨를 만지며 인사를 한 뒤 자신이 일하는 구내 매점으로 걸어갔다. 이날 샌디에이고전이 진행되는 동안 그녀가 계산원으로 근무해야 하는 곳이다. 경기가 끝날 때까지 휴식 시간은 한차례 10분 동안 밖에 없다. 이 때 그녀는 동생에게 달려 가 혹시 배고프지 않은가, 아니면 화장실에 가야 하는 가를 물어 필요하면 도와줘야 한다. 동생은 이런 언니에게 미안해서 “그렇게 까지 안 해도 된다. 혼자 할 수 있다”고 말하지만 언니는 “나도 네가 잘 할 수 있다는 것은 안다(그래도 와보고 싶다)”고 대답한다.
경기가 끝나면 언니 실비아는 빨리 매출 정산을 마치고 동생에게 가 그녀와 함께 장애인 주차구역으로 이동한다. 그리고 차를 운전해 함께 사는 피코 리베라 길에 있는 집으로 돌아간다. 자매는 거실에서 뉴스를 본 뒤 2층으로 가 한 침대에서 잠을 잔다.
다음 날 아침 눈을 뜨면 이들 자매는 전 날 했던 일을 다시 할 준비를 한다. 매일 반복되는 이들의 일상이 바로 자신들이 살아있음을 증명해주는 것이다. 자매는 이미 38년 동안 다저스타디움의 공기를 함께 마시고 있다. 다저스타디움이 이들에게는 가족이 돼 버렸다.
40년에 가까워지고 있는 자매의 이런 생활은 화려함을 위한 것도 아니고 돈 때문도 아니었다. 언니 실비아는 시간 당 13달러(약 1만5600원)를 받는다. 그런데 동생의 시즌 티켓 값으로 5000달러(약 600만 원)를 지출한다. 하루 주차비도 가까운 위치에 해야 하기에 15달러(1만8000원)이다. 이들은 동료 직원들과도 가족처럼 지낸다. 시즌 개막일에는 활짝 웃으며 만나 10월이 되면 눈물로 헤어지며 다음 해를 기약하는 일을 반복하고 있다.
동생 에스터는 “나는 언니에게 결코 일을 그만두지 못할 것이라고 얘기한다. 왜냐하면 내가 야구장 가는 것을 멈출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언니는 야구장 나들이가 “우리가 아침에 눈을 뜨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다저스타디움은 사람들이 단지 야구를 보기 위해 오는 장소가 아니라 함께 세월을 보내고 인간적인 정을 나누는 곳이 돼 있다.
언니 실비아가 일하는 매점의 매니저는 “함께 살기 위해 어떤 일이든 하는 두 자매를 보면 우리 모두가 감동한다”고 말했다.
이들 자매는 LA에서 성장해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후 헤어져 살았다. 그러다가 20대 때 다시 만나 이후 50년 이상을 함께 하고 있다. 언니 실비아는 남편과 사별했고, 동생은 이혼녀이다. 그런데 둘 모두 자식들이 없다. 세상에 그들 둘 뿐이었다.
그런데 언니 실비아가 1972년 다저스타디움에서 일하게 됐을 때 그녀는 동생을 여러 가지 건강상의 이유 때문에 혼자 집에 남겨 둘 수가 없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일터로 동생을 데리고 나오게 됐다. 이후 지금까지 그렇게 하고 있는 것이다.
처음에는 팬들에게 다저스타디움을 개방할 시각이 될 때까지 동생을 주차된 차 안에 남겨 놓고 2시간 정도 기다리게 해야 했다. 그러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사연이 알려져 다저스 구단이 배려를 해줬다. 그래서 동생은 경기 전 꼭대기 층에 있는 미디어, 취재 기자들의 출입구 안에 들어와 그늘에서 정식 입장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릴 수 있게 됐다. (필자도 1996~2001년, 2006~2008년 다저스타디움을 출입했다. 항상 서둘러 다니던 습관에 이들 자매를 본 기억이 나지 않는다. 동생 에스터는 항상 이곳에서 급하게 지나가는 기자들을 보고 있다고 플라스키는 소개했다.) 이제 다저스타디움 직원들 가운데 그녀를 모르는 사람이 없고, 모두들 도와주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 자매는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지 함께 다저스타디움을 찾고 세상을 떠날 때까지 함께 할 것이다.’(빌 플라스키)
플라스키가 칼럼에 소개한 것처럼 야구장에는 수 많은 사연들이 숨어 있다. 승부에만 집착하면 야구장에서 야구 보다 더 소중한 사람들을 느낄 수가 없다. 안타까운 점은 수없이 많이 쏟아지는 야구 기사에 야구장 사람들의 이야기를 찾아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필자도 반성을 하고 있다.
/보경S&C㈜ 대표, 전 일간스포츠 편집국장
<사진>다저스타디움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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