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시즌 개막을 앞두고 발표된 현역 연속경기 출장기록 보유자 명단에서 LG의 박용택은 이범호(당시 한화, 560경기)에 이어 2위자리에 이름을 올리고 있었다. 박용택의 당시 기록은 378경기.
그러나 2009시즌이 시작되고 약 한 달이 지났을 무렵인 4월 29일, 박용택의 연속경기 출장기록행진은 404경기에서 조기 정지되고 말았다. 2005년 4월 2일 잠실 두산전을 시작으로 만 3년간 끌어온 나름대로 의미 있는 기록이 아쉽게도 중도에 잘린 것인데, 이날 경기에 박용택은 분명히 출장한 것으로 기록지에 당당히 이름이 올라있음에도 연속기록이 끊어지게 된 이유는 어디에 있었을까?
당시 4월 29일 기록지에 적혀있는 박용택 이름 석자 앞에는 한자 ‘走(달릴 주)’가 따라붙어 있었다. 이 한자는 기록법상으로 대주자를 의미하는 글자다.

연속기록에 관해 규정하고 있는 야구규칙 10.24 (c)에 의하면 연속경기 출전은 한 이닝의 수비에 출전하거나, 타자로 나와 출루나 아웃으로 한 타석을 완료해야만 계속 기록이 이어지는 것으로 되어 있다. 대주자로서 출전한 것만으로는 연속경기 출전기록이 이어지지 않는다.
따라서 박용택의 연속경기 출전기록이 계속 이어지려면 ‘주’자 뒤에 수비로 나갔다거나, 이후 타석에 들어섰다는 추가 증빙자료가 필요했는데 박용택은 이날 8회초 2사 1, 2루에서 볼넷으로 출루한 5번타자 포수 조인성 대신 1루 대주자로 나왔다가 잔루상태로 이닝을 마친 후 그대로 경기에서 물러났고, 결과적으로 연속기록 규정에 의해 연속출장 기록은 중단되고 말았다.
전에도 언젠가 진행 중이었던 이범호의 연속출장 기록을 떠올리며 대주자가 연속출장 기록의 걸림돌이 되는 이유에 대해 극단적인 예를 들어 설명한 적이 있다. 대주자도 어엿한 선수인데 왜 수비나 타자는 되고 대주자는 인정을 해주지 않는 것일까?
야구는 타격과 수비라는 두 개의 큰 틀을 기본 개념으로 해서 이루어진 운동이다. 달리기도 물론 공격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수단이기는 하지만, 누군가를 대신해서 뛴다는 행위 하나 만으로는 경기에 정상적으로 출장한 것으로 인정하는데 있어 뭔가 미진한 느낌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대타로 나와 한 타석만을 완료하고 경기에서 물러난 것을 한 경기에 출장한 것으로 인정해주는 동시에 연속 출장기록에 있어 연속기록을 살려주는 것도 마땅치 않은 마당에 대주자까지 인정해주는 것은 추측컨대 야구규칙 제정 당시의 정서에도 그다지 썩 내키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혹자는 그러면 대주자로 나와 도루, 그것도 최종회에 홈스틸을 성공시켜 팀이 이겼다고 해도 출장기록이 인정되지 않느냐고 물어올 수도 있다. 당연히 인정되지 않는다. 기용 결과보다 선수기용 의도가 중요한 잣대가 된다.
이쯤에서 연속경기 출장과 경기출장의 차이점을 구분 지을 필요가 있겠다. 대주자로 나온 것은 경기에 출장한 것으로 간주하지 않는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 대주자로 출전해도 경기 출전 인정에는 변함이 없다. 통계상으로도 출장경기에 ‘1’이 가산된다. 다만 연속으로 경기에 출전한 것으로 인정하는 판단기준에 한해, 단순 대주자로 기용된 것은 제외시킨다는 말이다.
처음 대주자 형태로 경기에 기용되었다 해도 이후 수비로 나가 온전한 한 이닝을 마쳤다거나, 자신의 차례가 돌아와 타석에 들어서 한 타석을 완료했다면 연속 출장기록은 계속된다.
1014 경기 연속출장 기록을 보유하고 있는 최태원(당시 SK)이 2002년 막판 당시 연속기록을 늘려가는 과정에서 간혹 대타나 대수비로 출장하는 것을 놓고 기록 연장의 가치에 대해 이러저러한 말들이 오갔던 것을 기억한다.
이를 반대로 해석하자면 연속경기 출장기록은 아무나 세울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실력이 우선 전제되어야 하고 큰 부상을 당하지 않는 것은 물론, 오랜 기간의 철저한 자기관리가 뒷받침되어야 세울 수 있는 기록이다.
2010년 4월 18일, 일본프로야구의 가네모토 도모아키(42. 한신 타이거즈)가 요코하마전 선발 라인업에서 빠지며 1999년 7월 21일부터 10년 9개월 동안 이어온 연속경기 무교체 출장기록 행진을 멈춘 바 있다. 경기수로 따져 1492경기, 이닝으로 따지면 1만3686이닝 동안 단 한 차례도 다른 선수와 교대하지 않고 경기를 뛴 것으로, 기록이 담고 있는 의미가 그 어떤 대기록에 견줘도 밀리지 않을 아주 특별한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관련기록 정황상 가뭄상태인 한국프로야구 출장기록사를 새로 쓰게 될 진정한 철인 탄생의 그날은 과연 언제쯤이 될런지, 300경기를 겨우 넘긴 선두 강정호(넥센)의 병아리 걸음에 아쉬운대로 눈길이 끌린다.
윤병웅 KBO 기록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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