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의 승패는 결국 신(神)이 결정하는 것일까?
금년 고교야구 전국대회에서 우승한 8개 팀들이 참가한 가운데 서울 목동야구장에서 열린 2011년 고교야구 주말리그 도입 기념, 대한야구협회 KBS 공동 주최 ‘KBS 고교야구 최강전이 초고교급 투수 유창식이 선발을 자원해 완투한 광주일고의 우승으로 11일 막을 내렸다. 유창식은 한화와 이미 7억 원에 계약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아프다는 핑계를 대고 던지지 않으려는 일부 선수들과 달리 몸을 사리지 않고 모교와 고장의 명예를 위해 등판을 자청하는 당당함을 보여줬다.
내년부터 고교야구는 전기리그와 전기 왕중왕전, 후기리그와 후기 왕중왕전 방식으로 주말에 열린다. 고교 선수들의 학습권을 보장해줘야 한다는 것이 주말리그의 근본 취지이다.

필자는 24년째 야구를 취재하고 있다. 그런데 이번 대회 첫날 8강전 1라운드에서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해프닝들을 경험했다. 과거 봉황대기를 취재하던 시절 이후 하루 4경기를 본 것도 처음이다. 물론 이 ‘사건’을 과학적이나 이성적으로, 혹은 야구 기자의 관점에서 접근한다면 터무니 없는 주장이 될 것이다. 소개할 것인가 고민을 하다가 야구팬들께서 ‘이런 일도 있었구나’ 하고 생각해주시기를 바란다.
첫날 경기는 4일 목동구장에서 광주제일고-휘문고, 제물포고-대구고, 북일고-상원고, 경남고-부산고전 순으로 진행됐다.
그에 앞서 태풍 곤파스가 목동구장에도 피해를 입혀 전 날인 3일 예정됐던 넥센-LG전이 열리지 못했다. 곤파스가 좌측 외야 그물망의 지지대 7개를 모두 쓰러뜨려 안전망이 붕괴됐기 때문이다. 고교야구의 경우 아직 타자들의 파워가 장외로 홈런 타구를 날릴 정도가 아니어서 고교 최강전은 열릴 수 있었다.
좌측 외야가 3루 덕아웃 쪽이라는 점을 주목해보면 흥미로운 결과가 나왔다. 이날 열린 1라운드 4경기에서 태풍 곤파스가 덮친 좌측 외야 쪽 3루 덕아웃을 사용한 팀들이 모두 졌다. 4팀이 모두 패한 것이다. 3경기 정도라면 그럴 수도 있겠지 했는데 4번째 마지막 경기였던 경남고-부산고의 라이벌전도 경남고의 승리로 끝나자 관계자들도 “정말 희한한 일이다. 4경기 모두 이런 결과가 나올지 몰랐다. 정말 태풍을 맞은 쪽이 진 것일까?”라며 신기해 했다.
여기까지는 그래도 단순한 우연의 일치로 여겨, ‘설마’할 수 있겠다. 그런데 필자가 야구 취재를 하면서 하루에 2번 누(壘, 베이스)의 공과(空過)를 본 것은 이날이 처음이었다. 한시즌에 한번 보기도 쉽지 않은 것이 누의 공과이다. 누의 공과는 ‘타자가 분명히 안타라고 여겨지는 공을 쳤지만 진루의 의무를 지닌 주자(이 경우 타자가 주자가 된다)가 밟아야 할 누를 밟지 않고 지나칠 경우 상대팀(수비팀)의 어필에 의해 아웃이 적용되는 규칙’을 말한다.
첫 경기에서 휘문고는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3루 공과로 고교 랭킹 1위 투수 유창식(광주일고)을 상대로 5-4 역전승을 거둘 기회를 놓치고 1라운드에서 탈락했다. 연장 10회 승부치기에서 광주일고에 4-9로 진 것이다.
휘문고는 3-4로 뒤진 8회말 2사 2, 3루 기회가 4번 조용성까지 이어졌다. 7회 중전안타를 친 그는 유창식과 2-3 풀카운트 접전 끝에 역전 2타점 좌전 안타를 뽑아냈다. 스코어 보드에는 곧 바로 2득점이 기록돼 5-4, 휘문고 역전승 분위기로 바뀌었다. 그러나 2루에 있던 주자 박휘연이 3루를 돌면서 삐끗하고 3루를 공과해버려 어필 아웃되고 말았다. 양팀은 9회 무득점으로 4-4 동점에서 10회 승부치기가 펼쳐졌고 광주일고가 10회초 대거 5득점해 승부를 결정지었다. 경기 후 휘문고 전형도 감독은 “3루를 공과한 것이 맞다”며 깨끗하게 인정했다.
4번째 경기에서 부산고는 2-3으로 뒤진 4회말 1년생 포수 이경재가 동점 솔로 홈런을 치고도 홈 플레이트를 공과해 아웃 되는 어이없는 일이 벌어졌다. 3-3 동점이 됐다면 분위기가 반전돼 부산고의 상승세가 예상된 상황이었는데 결국 경남고가 추가점을 올려 부산고는 탈락했다. 부산고 김민호 감독은 1학년 포수가 고교 데뷔 첫 홈런을 치고 흥분한 나머지 홈을 공과한 것으로 보고 바로 선수 교체를 하지 않는 인내를 보여줬다. 1루 코치가 홈 플레이트에서 하이 파이브를 하려고 기다리자 이경재가 좋아서 팔짝 뛰면서 하이 파이브를 하다가 정작 밟아야 할 홈 플레이트를 넘어 버린 것이었다.
이날 3번째 경기에서 이정훈 감독이 이끄는 북일고가 상원고에 8-0으로 7회 콜드 게임 승리를 거둔 것도 이변이었다. 북일고는 무등기, 상원고는 대붕기 우승팀으로 콜드게임으로 승패가 날 정도로 전력 차가 나지 않는다. 상원고 선발 박찬수가 1회초 등판하자마자 연속으로 볼만 8개 던지면서 볼넷 2개를 내주자 박영진 감독이 교체에 나섰고 마운드에서 투수가 공을 주지 않으려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하루 4경기에서 무려 2개의 누의 공과가 나와 팀의 승패를 결정하고, 3루 쪽 덕아웃을 사용한 4팀이 전패를 한 기현상이었다.
그런데 다음 날인 5일 열린 4강전은 태풍 ‘말로’의 영향권으로 바뀐 탓인지 덕아웃의 위치에 따라 승패에 별다른 이상이 나타나지는 않았다. 광주일고와 경남고의 결승전도 3루 쪽 덕아웃을 사용한 광주일고가 승리했다.
/보경S&C㈜ 대표, 전 일간스포츠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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