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야구에서 국가대표 감독이라고 하면 먼저 ‘국민감독’이라고 불리는 김인식 감독, 베이징 올림픽 전승 금메달을 이끈 두산의 김경문 감독, 그리고 이번 광저우 아시안 게임 대표팀 사령탑을 맡은 조범현 KIA 감독이 떠오른다.
그런데 거의 주목을 받지 못하는 형편이지만 국제 무대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감독들이 또 있다. 광저우 아시안 게임 직전인 10월21일 대만 타이중에서 개막되는 대륙간컵 대회는 김정택 상무 감독이 국가대표를 지휘한다. 대한야구협회는 대륙간컵 대회에서 기필코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 이상일 한국야구위원회 사무총장에게 프로 구단들의 선수 파견 협조를 요청해놓았다. 따라서 이번 대륙간컵 대표는 아마 프로 혼성팀이 될 전망이다.
금년 국제대회에서 한국 국가 대표를 이끈 감독은 한-미 대학야구선수권대회의 양승호 고려대 감독, 세계대학야구선수권대회 이연수 성균관대 감독, 그리고 제24회 세계 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의 신일고 최재호 감독이었다.

한국은 한-미대학선수권에서 5전 전패의 수모를 당했고 세계대학야구선수권 4위, 세계 청소년선수권 7위에 머물렀다. 1위 쿠바, 2위 미국, 3위 일본에 이어 4위를 차지한 세계대학야구 선수권이 그나마 체면치레를 한 성적이다. 현재 국제야구연맹의 공식 세계 야구 남자 랭킹 순위와 일치했다. 야구의 세계 랭킹은 국제야구연맹(IBAF)의 홈 페이지(www.ibaf.org)에 들어가면 초기화면 하단에 나온다. 여자 세계 랭킹은 1위 일본, 2위 미국, 3위 호주 순이며 한국은 8위에 처져있다.
중요한 점은 국제야구연맹이 주관하는 대회의 조 편성이 세계 랭킹에 의해 이뤄진다는 사실이다. 이번 광저우 아시안 게임이 좋은 예이다.
2개조로 나뉠 경우 월드 랭킹에서 아시안 게임에 출전하는 국가들의 순위에 의해 조가 짜여진다. 현재 월드 랭킹에서 아시아 국가들만 뽑은 순위는 1위 일본, 2위 한국, 3위 대만, 4위 중국 등이다. 대만은 월드랭킹에서 5위, 중국은 15위이다.
따라서 아시안게임 조 편성은 A조 1, 4, 5, 8, 9위, B조 2, 3, 6, 7위 순 등의 조합에 따라 1위 일본이 4위 중국과, 2위 한국은 3위 대만과 같은 조가 되는 것이다. 만약 한국이 아시아랭킹 1위였다면 중국과 같은 조가 된다.
현재 상태라면 한국은 대만과의 예선에서 조 1위를 차지하는 것이 손쉽지는 않아 보인다. 해외파들을 포함한 대만 대표는 자국에서 열리는 대륙간컵에서 1차로 손발을 맞춰보고 실전 감각을 익힌 뒤 그대로 광저우로 넘어 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한국대표팀도 이에 대비해 대륙간컵에 전력 분석 요원으로 파련해 대만을 분석한다.
일본은 우리 관점에서 보면 납득하기 어려운 국가대표팀 구성을 했다. 일본은 대륙간컵 대표에 프로 출신들을 포함시킬 예정이고 광저우 아시안 게임은 24명 중 사회인 야구 23명, 대학 선수 1명으로 구성했다. 노출이 돼 있는 프로가 없다 보니 일본의 광저우 아시안게임 대표가 어느 정도의 전력일지 객관적으로 평가하기 어려운 상태이다. 국제 야구계에 의하면 일본은 아시안게임을 대륙간컵 대회보다 수준이 낮은 대회로 평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문제는 국제야구연맹 월드랭킹의 기준이 되는 한국 국가대표팀의 국제 대회 성적이 갈수록 형편없어진다는 것이다. 금년에도 참패를 당해 대한야구협회 이재원 부회장의 긴급 제안으로 9월17일 협회 회의실에서 9시간에 걸친 마라톤 대책회의가 열렸다. 그러나 현 제도 하에서는 뾰족한 수를 찾을 수 없으며 프로 측의 긴밀한 협조가 시급하다는 결론만 재확인했다.
이번 회의에는 금년 국제 대회에 참가한 국가대표 감독 3명이 모두 참가했다. 이 자리에서 양승호 감독, 이연수 감독, 최재호 감독은 일제히 어려움을 하소연하며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한국야구의 미래는 절망적일 수밖에 없다고 한 목소리를 냈다.
양승호감독은 “대학 선수들의 경우 미국과 비교하면 고교와 중학 수준이었다. 감독으로서 제대로 된 작전 사인 한번 내보지 못했다. 프로의 경우 월드베이스볼 클래식과 올림픽에서 눈부신 성적을 냈다. 그런데 현재 우리 야구의 근본인 아마추어를 생각하면 앞으로 한국야구의 국제적인 위상에 어떤 변화가 올지 알 수 없다”고 밝혔다.
이연수감독은 “기술적인 면을 극복한다고 하더라도 체력적인 면에서 쿠바와 미국을 넘어서기는 쉽지 않다. 일본의 경우도 기량과 전력 분석에서 차이가 난다”고 말했다.
회의 중 나온 설명 가운데 현재 우리 대학 야구의 실정을 정확하게 보여준 수치는 투수들의 볼 스피드였다. 한-미대학선수권대회에 참가한 미국 UCLA 대학의 투수 게릿 콜은 최고 시속 158km를 기록했다. 그는 투구 후 자신의 볼 스피드를 반드시 확인해 ‘스피드 왓처(speed watcher)’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세계대학야구선수권대회의 경우 이연수 감독은 일본이 도쿄 6대학 선수들을 위주로 팀을 구성했는데 마무리를 맡은 오니시가 154km를 던졌다고 소개했다. 이연수 감독은 “일본의 선발 투수들은 기본적으로 시속 145km 이상의 패스트볼을 가지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대학 무대에서 이 정도 스피드를 찾아보기 쉽지 않다”고 덧붙였다.
세계청소년선수권대회에서 7위로 예상 밖의 부진을 보였지만 신일고 최재호 감독의 말은 의미가 있었다. 최재호 감독은 “청소년 대회는 분명히 싸워 볼 만 했다. 사실 한국야구의 문제는 그 다음부터 라고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고교를 졸업하는 유망주들의 대부분을 프로에서 스카우트하고 있는 현실에서 대학 선수들의 수준이 급락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조금이라도 잠재력이 있으면 신고 선수의 형태로 모두 프로가 데려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현재의 상태라면 한국야구에 있어 중장기적으로 프로 아마의 균형적 발전은 불가능하다는 것이 중론이다. 반드시 활로를 찾아야 한다.
/보경S&C㈜ 대표, 전 일간스포츠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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