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윤호의 인사이드 베이스볼]김선우, 조국이 아닌 두산이 그를 불렀다
OSEN 홍윤표 기자
발행 2010.10.04 07: 30

1998년 방콕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야구 국가대표 자리를 놓고 그 어느 대회 때보다 치열한 경쟁이 펼쳐졌다. LA 다저스의 박찬호까지 참가하는 ‘드림 팀’이 출범될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금메달을 따내면 병역 특례 혜택이 주어졌다.
 
흥미롭게도 11월 개최되는 광저우 아시안게임과도 상황이 비슷했다. 일본은 방콕 아시안게임 때도 사회인 야구를 중심으로 구성한 대표팀을 파견했다. 당시 일본 대표팀 투수 중에는 시속 150km 이상의 강속구를 구사하는 투수가 한 명 있었는데 박찬호와의 차이는 컨트롤 능력이었다. 박찬호는 제구를 할 수 있는 150km 이상의 패스트볼을 던졌고 일본 투수는 컨트롤이 되지 않았다. 결국 그 수준 차이를 보여주며 한국은 일본을 제치고 금메달을 따냈다.

방콕 아시안게임 대표 선발은 당시 미국에 진출해 메이저리그 도전에 나선 한국 선수들에게도 큰 관심사였다. 그 중에는 1997년 고려대를 중퇴하고 보스턴 레드삭스 행을 택한 김선우(33)도 포함돼 있었다. 그 때 마이너리그 시즌을 마친 한국 선수들이 LA 코리아타운의 한 호텔에서 만나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눈 적이 있다.  특히 ‘병역 특례 혜택 때문에 방콕 아시안게임 대표에 선발되기 위해 한국에서는 여러 선수들이 열심히 로비(?)를 한다는 소문이 있다’는 얘기가 나왔다.
이에 대해 김선우는 의연한 태도여서 매우 인상적이었다. 아마시절 국가대표 에이스 출신인 그는 “조국이 나를 필요로 하면 부를 것이다”라고 자신감을 나타냈다.
그러나 당시 조국은 그를 부르지 않았다. 절친한 친구인 뉴욕 메츠의 서재응은 선발됐으나 김선우는 빠졌다. 성균관대 재학 중이던 김병현도 대표에 선발됐다. 김선우는 자신의 야구 인생에서 처음으로 자존심에 큰 상처를 받았다.
김선우가 마침내 조국의 부름을 받은 것은 메이저리그에 진출해 주목 받게 된 이후인 2006년 제1회 월드베이스볼 클래식 때였다. 4강 진출의 쾌거를 이룩하면서 당시 정권에 영향력이 컸던 신상우 총재의 노력으로 이례적인 병역 특례 혜택을 받았다. 최희섭 등이 당시 대상자들이다.
김선우는 몬트리올, 콜로라도 등을 거치며 메이저리그에서 뛰다가 2008년 1월 두산 유니폼을 입고 한국프로야구에 데뷔했다. 1996년 두산에 고졸 우선 지명된 그는 두 번째로 두산이 자신을 필요로 한다며 입단을 추진하자 받아들였다.
그에 앞서 일본 프로야구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도 김선우의 영입을 추진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불발된 바 있다.
그런데 김선우는 한국프로야구 첫해인 2008년 6승7패로 부진했고 지난 해도 11승10패 평균 자책점 5.11로 기대에 못 미쳤다. 그가 메이저리그 출신으로 명예를 회복한 것이 금년이다. 13승6패, 평균 자책점 4.02로 에이스 구실을 하면서 팀을 페넌트레이스 3위로 이끌었다.
그리고 마침내 롯데와의 준플레이오프 최종 5차전 선발의 중책을 맡았다. 두산은 홈에서 2패를 당한 뒤 사직 원정에서 기적적으로 2승을 거두고 균형을 이뤄내 승부를 5차전까지 끌고 왔다. 김선우는 이번 포스트시즌을 앞두고 ‘2010 Champions’라고 새겨진 글러브를 특별 주문해 보관하고 있다고 한다. 그 만큼 팀의 한국시리즈 우승에 대한 염원이 간절하다는 것이다.
지난 2006년 5월 LA의 다저스타디움에서 LA 다저스 서재응과 콜로라도의 김병현이 역사적인 선발 맞대결을 펼친 적이 있다. 그 다음 날인 5월24일(한국 시간) 오후, 콜로라도의 또 한 명의 한국인 투수 김선우는 다저스타디움 원정팀 클럽하우스 트레이너실에서 반신욕을 하며 열심히 만화를 읽고 있었다.
 
시즌 개막 직후 예상치 못한 컨디션 난조로 4월19일부터 부상자 명단(DL)에 올라 있다가 한 달이 더 지난 뒤인 그 날 현역 복귀하게 된 김선우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만화를 읽는 여유를 보여줬다. 5차전 중책을 맡아도 흔들림이 없을 배짱을 지닌 김선우는 롯데와의 2차전에서 7이닝 1실점으로 호투했으나 팀이 1-4로 진 바 있다.
김선우의 5차전 선발 맞상대가 이변이 없다면 송승준이라는 점도 흥미롭다. 송승준도 1999년 보스턴에 입단했는데 현재 한국프로에서 활약하고 있는 KIA의 서재응, 두산의 김선우, LG의 봉중근이 모두 메이저리그 무대를 밟았으나 송승준은 몬트리올, 샌프란시스코, 캔자스시티 등의 마이너리그 팀들만 전전하다가 막판 오른 손목 골절 상으로 더 이상 버틸 도리가 없어 한국으로 돌아왔다. 한국 프로야구에서 2007년3월 롯데에 입단할 당시 받은 계약금도 2억 원에 그쳐 10억 원 대로 알려진 서재응 김선우 봉중근과는 달리 초라했다.
그러나 송승준은 지난 해 3경기 연속 완봉승을 기록하며 롯데의 에이스급 투수로 자리 잡았다. 3경기 연속 완봉승은 1986년 선동렬 현 삼성 감독, 1995년 김상진에 이어 한국 프로야구 통산 5번째 대기록이었다.
롯데와 두산의 준플레이오프 5차전은 메이저리그 출신 김선우와 마이너리그에 머물렀던 송승준이 자존심과 명예를 걸고 선발로 맞붙어 더욱 귀추가 주목된다.
 
/보경S&C㈜ 대표, 전 일간스포츠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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