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의 마지막 날인 31일 대만 타이중에서 버스로 1시간 20분 정도 걸리는 두리우 구장에서 2010 제17회 대륙간컵 국제 야구대회 5, 6위 순위 결정전이 열렸다. 2009 월드베이스볼 클래식(WBC)에서 우승과 준우승을 차지하면서 세계 야구계의 주목을 받았던 일본과 한국은 10개국이 참가한 이번 대회에서 5, 6위에 머물게 된 것이다. 한국과 일본 밑에는 홍콩 태국 체코 니카라과가 하위권을 형성했다. 상위권에는 이탈리아와 대만, 네덜란드와 쿠바가 3, 4위와 1, 2위를 다퉜다.
대만-이탈리아의 3, 4위전, 쿠바-네덜란드의 결승 경기가 타이중 시내의 야구 전용 구장인 인터컨티넨탈 스타디움에서 화려하게 펼쳐진 것을 고려하면 한국과 일본의 5, 6위전은 텅빈 구장에서 대만 팬들의 외면을 받으며 ‘그들 만의 경기’가 되고 말았다.
김정택 상무 감독의 지휘아래 10월14일 첫 훈련에 돌입해 21일 타이중에 도착한 한국 국가대표팀은 결국 급조된 팀의 한계를 드러냈다. 김정택 감독은 투수와 타자들의 훈련 상태를 확인할 수 없는 상태에서 수비 연습밖에 할 수 없었다.

한국은 대륙간컵에서 내외야 수비만큼은 가장 안정된 전력을 보여줬다. 그런데 투수들은 훈련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았다.
대만, 쿠바, 이탈리아전에서 선발 투수 우규민, 진해수, 조태수가 1이닝 조차 버티지 못하고 교체됐다. 김정택 감독은 투수들의 컨디션을 파악하고 빠르게 움직이면서 여러 명을 투입하는 전략으로 맞붙어 준비가 안 된 투수들을 전력에서 제외시키고 5명의 투수들을 중심으로 대회를 마쳤다.
문제는 공격에서 나왔다. 한국은 예선리그에서 세계 최강 쿠바에 0-3으로 졌고, 결선리그에서 이탈리아에 2-5, 네덜란드에 1-3으로 패해 4강 진출이 좌절됐다.
쿠바전 패배는 예상했던 일이었다. 그러나 이탈리아, 네덜란드전은 의외였다. 김정택 감독은 “물론 이탈리아와 네덜란드가 과거에도 그렇게 약한 팀들은 아니었다. 이번 대회에서 맞붙어 보니 힘과 기술에서 비약적인 발전을 한 것이 사실이다. 미국 마이너리그에서 뛰는 선수들이 많다. 한 때 한국 야구가 이탈리아나 네덜란드에 콜드게임을 거둘 수 있는 상대로 본 적이 있었다. 그러나 이제 더 이상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된다.”고 밝혔다.
일본도 예선리그 최종전에서 이탈리아에 덜미를 잡히면서 연패를 당했다. 네덜란드를 2-1로 잡아내는데 성공한 일본은 10월27일 이탈리아에 0-3으로 패하고 조2위로 결선리그에 올랐다.

이날 밤 10시30분 대회 본부이 에버그린 호텔에서 결선리그 대진 추첨이 있었는데 이탈리아에 패한 충격이 그대로 나타났다. 일본의 오카자기 감독은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고 이하라 단장은 불만스러운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일본은 이탈리아전 패배 이후 결선리그에 들어가 대만에 5-12, 쿠바에 1-4, 한국에 1-8로 무너졌다. 결선리그 3경기 전패이다.
한국은 프로 2군의 주력 선수들이 대표팀의 주축을 이뤘다. 일본 역시 프로 2군이다. 고교 통산 65홈런을 기록해 요미우리 자이언츠가 계약금 1억 엔을 주고 입단시킨 대형 타자 오타가 일본 대표팀의 1루와 지명타자를 오갔으나 투수력보다는 타자들의 파워가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았다.
대만의 경우 홈 팀의 어드빈티지를 누렸다고 해도 한국과 일본 야구가 이탈리아와 네덜란드에 맥없이 주저앉고 말았다는 것은 이번 대륙간컵의 이변이라면 최대 이변이었다.
국제야구연맹(IBAF)은 이번 대회를 마지막으로 대륙간컵 대회를 폐지한다. 그 대신 21세 이하 월드컵 대회 개최를 연구하고 있다. 대한야구협회(KBA)와 아시아야구연맹(BFA)을 이끌고 있는 강승규회장이 1일 시작되는 국제야구연맹 집행위원회에 참석해 본격적인 논의에 들어갔다.
필자는 타이중의 인터콘티넨탈 스타디움과 두리우 구장에서 한국 팀의 전경기를 지켜봤다. 김정택 감독, 노춘섭, 김대권 전력 분석원과 일본, 이탈리아, 네덜란드 등의 경기를 분석했다. 김정택 감독은 경기 후 선수 코칭스태프들이 휴식을 취하는 동안 상대 팀의 전력을 점검하기 위해 직접 구장을 찾는 노력을 기울였다. 자신의 야구 인생 마지막 국가대표 감독이라는 책임감이 대단했다.
그러나 결과는 나빴다. 김정택 감독은 “국제 대회에서 내가 거둔 최악의 성적이다. 모두가 감독 책임이다.”라고 깨끗하게 인정했다.
결선리그 최종전에서 일본에 8-1로 승리를 거둔 것이 유일하게 제대로 전력을 발휘해본 경기였다.
그렇다면 한국 대표팀이 넘지 못한 이탈리아와 네덜란드는 무엇이 달라졌을까?
필자는 월등한 신체조건에서 나오는 파워에 기술이 접목되기 시작했다고 판단하고 있다. 이탈리아의 경우 한국은 좌완 선발 쿠퍼 등 5명의 투수들을 상대로 2점 밖에 뽑아내지 못했다. 이탈리아 투수들은 무게가 느껴지는 공에 아래로 떨어지는 흔들림을 보태 눈길을 끌었는데 현재 시카고 컵스 마이너리그 투수 코치가 대표팀 투수 코치를 맡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네덜란드의 경우는 더 강했다. 선발 투수 레온 보이드에게 4와 1/3 이닝 동안 5개의 삼진을 당했다. 우완 레온 보이드(27)는 신장이 196cm에 체중 94kg의 거구였다. 정통파이지만 릴리스 포인트가 낮았으나 마운드에서 내려다보는 압박감은 엄청났다. 한국전에 등판한 쿠바 선발 노르게 루이스 베라는 39세의 노장 우완 정통파인데 190cm 안팎으로 보이는 장신이었다.
한국 대표팀의 톱타자인 좌타자 정수빈은 롯데, 삼성과의 포스트시즌 경기에서 두산의 차세대 1번으로 자리를 잡았다. 정수빈은 175cm에 70kg이다. 그가 타석에서 신장 196cm 우완 레온 보이드를 올려다본 느낌은 어땠을까?
정수빈은 “어쨌든 공은 비슷하게 오는 것 같았다. 그러나 워낙 덩치가 크다 보니 타석에서 저절로 위압감을 느꼈다”고 밝혔다. 톱 타자인 정수빈은 레온 보이드를 상대로 빚맞은 유격수 내야 안타를 쳐내 3타수 1안타를 기록했다. 네덜란드 2번째 투수 데이비드 버그만 역시 188cm에 98kg이었다. 한국 타자들의 스윙 궤적과 장신 투수들이 내려 꽂는 공의 각도가 달라 헛스윙이 계속 나왔다.
한국과 일본 야구는 탄탄한 수비력에 빠른 발, 정교한 타격을 펼치는 ‘스몰 볼’에 가깝다.
그런데 그 동안 파워만 앞세우며 둔해 보였던 이탈리아, 네덜란드가 기술을 보강해 세계 무대에 등장했다. 히트 앤드 런과 같은 작전도 적극적으로 펼치고 있다. 이탈리아 대표에는 미국 마이너리그에서 메이저 진입을 노리는 선수들이 다수 포함돼 있다.
이번 대륙간컵 대회 기간 중 여러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이 구장을 찾았다. 한국 대표 가운데는 김재환(두산)이 대상이라고 했다.
일본과 대만은 이미 세계야구의 새로운 추세인 파워(power) 야구에 동참하고 있는 분위기이다. 대만도 눈에 띌 정도로 체격이 좋은 선수들이 많아졌고 일본도 오타의 경우 188cm, 90kg의 신체 조건을 지니고 있다. 한국은 넥센 소속의 유한준이 186cm, 90kg으로 경쟁력이 있는 활약을 펼쳤다.
한국전에서 2회 조태수로부터 중월 솔로홈런을 뽑아낸 쿠바 3루수 율리에스키 구리엘은 메이저리그 보스턴으로부터 계약금 1000만 달러(약 125억 원)를 보장 받은 선수인데 망명을 못하고 있는 상태라고 했다. 쿠바 야구는 파워를 앞세운 세계 최강급이다.
유럽의 이탈리아, 네덜란드가 쿠바 야구를 추구하고 있다. 세계야구계의 판도가 재편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 제17회 대륙간컵이었다. 한국 야구의 새로운 방향 정립이 필요하다. 아울러 프로의 외국인선수 수입도 유럽야구에 관심을 가져볼 만 하다고 판단된다.
/보경S&C㈜ 대표, 전 일간스포츠 편집국장
<사진 위>10월23일 인터컨티넨탈 스타디움에서 열린 제17회 대륙간컵 대회 개막전에서 한국 대표팀의 모습. 왼쪽이 일본이다.
<사진 아래>공식 기자회견장의 한국 대표팀의 김정택 감독(왼쪽). 오른쪽이 예상을 깨고 결승전에 진출한 네덜란드의 제임스 스토에켈 감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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