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병웅의 야구 기록과 기록 사이]멈출줄 모르는 두산의 ‘화수분’ 야구
OSEN 홍윤표 기자
발행 2010.11.01 08: 00

2010 준플레이오프를 앞두고 발표된 두산 베어스의 26명 출장자 선수명단 안에는 일반 사람들의 예상을 깬 낯선 이름의 선수 한 명이 들어 있었다. 올 시즌 1군 무대 출장경험이 13경기(25타수)에 지나지 않는, 입단 4년 차의 무명 중고 신인으로 거구(185cm/105kg)에서 뿜어져 나오는 장타력에 기대를 걸고 두산이 2007년 지명권을 행사했던 내야수 이두환(22)이었다.
등번호 44번이 주는 묵직함이 하나도 부담스러워 보이지 않을 정도로 당당한 체구를 가진 그의 모습은 얼핏 같은 팀 소속인 김동주나 최준석을 떠올리게 할 만큼 무게 있어 보였다.
이어진 준플레이오프 1차전 9회말, 이두환에게 첫 타석이 돌아왔다. 스코어는 5-10으로 두산이 롯데에 크게 뒤져있는 상황이었지만, 이두환은 큰 무대에서 첫 안타를 때려내며 그의 존재감을 팬들에 알렸다

이두환 발탁 건은 하나의 단적인 예지만 두산의 야구는 그 동안 의외의 선수를 전면에 내세워 사람들을 깜짝깜짝 놀래켜 왔다.
김경문 감독 부임(2003년 10월) 이후 두산은 타 구단의 스타급 선수를 영입해 전력을 메우기보다는 2군 무대에서 가능성을 보여준 선수들을 중용하는 방식을 택해왔다.
여러 해 동안 1군 무대를 통한 기량 검증이 되지 않은 무명급 신예들을 과감히 메이저 무대에 세웠다는 사실이 편하게 생각하자면 무모한 시도로 생각될 수도 있지만, 2006년을 제외하고 두산이 해마다 포스트 시즌 진출 티켓을 거머쥐었다는 결과물을 놓고 보면 분명 말로 설명되지 않는 그 무엇이 있지 않나 하는 추측까지 들게 한다.
2004년 손시헌, 2006년 고영민과 이종욱, 2007년 김현수와 민병헌, 2008년 김재호와 유재웅 그리고 오재원, 2009년 정수빈과 용덕한, 2010년 신인왕 양의지까지 두산 무명 선수들의 본격 반란은 쉼 없이 달려왔다.
그리고 이른바 ‘화수분 야구’로 일컬어지는 두산의 무명 반란은 타 팀에서 이적해 온 선수들까지 그 범위를 넓혀나갔다. 최준석과 이원석(이상 롯데), 이성렬(LG), 임재철(한화), 그리고 이제는 두산을 떠난 채상병과 이대수 등 과거와 현재에 걸쳐 두산의 주력부대로 자리매김했던 선수들 모두가 두산에 둥지를 틀었을 당시에는 크게 주목을 끌거나 받지 못하던 선수들이었다.
이번 포스트 시즌에서 두산 선발 라인업에 이름을 올렸던 9명의 타자들 중에서 대표적 프랜차이즈 스타인 김동주를 제외하면 8명이 포괄적 의미의 화수분 야구 출신들이었다.
그런데 옹달샘처럼 마르지 않는 두산의 화수분 야구는 2011년 이후 또 다른 이변을 예고하고 있다. 앞서 말한 이두환 외에도 잠재력과 가능성 있는 제2, 제3의 선수들이 또 도사리고 있다는 얘기다.
2010년 퓨처스 리그의 성적표를 들여다보면 유난히 눈길을 사로잡는 선수가 하나 있다. 2006년 두산에 입단한 북부리그의 최주환(22. 현 상무)이다. 최주환은 올 시즌 100경기에 출장해 3할8푼2리의 고 타율로 압도적인 타격 1위를 차지했는데 타율보다 더 놀라운 것은 그가 세운 기록의 내용이다. 안타수 151개는 1군 경기 기준인 133경기로 환산하면 200안타 돌파가 가능한 수치다. 게다가 2루타(26개), 3루타(11개), 홈런(24개)을 합친 장타가 61개로 그의 장타율은 무려 6할8푼6리에 이르고 있다.
2006년 지명 받을 당시 2차 6라운드 46번에 가서야 이름이 불린 선수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지금 최주환의 모습은 말 그대로 일취월장이다. 22세라는 젊음 자체가 갖고 있는 최대 무기를 고려하면 앞날이 더 기대되는 선수라고 하겠다.
여기에 타격 7위( .324)에 자리한 2009년 지명선수인 허경민(내야수. 현 경찰청)과 타격 8위( .316)에 오른 2008년 지명선수 김재환(포수. 현 상무)도 두산의 미래로서 주목해 볼 만한 선수들이다. 특히 김재환은 21개의 홈런을 앞세워 유일하게 100타점(101타점)을 돌파한 선수이기도 하다.
1위 최주환에 이어 타격 2위( .362)에 랭크 된 이두환까지를 포함하면 타격 10걸 안에 두산 지명선수들이 무려 4명이나 올라있는 셈이다. 특히 홈런 랭킹 부문으로 넘어가면 1위부터 4위까지(최주환 24개-이두환 21개-김재환 21개-윤석민 17개)가 모두 두산 소속이다.
물론 야수가 아닌 투수 쪽에서도 두산 화수분 야구의 맥을 찾아볼 수 있지만 여기에서는 논외로 하겠다.
재물이 자꾸 생겨나 써도 줄지 않는 다는 뜻의 어원을 가진 화수분. 지금까지 두산 야구가 그래왔다.
생겨난 새로운 재물인 1군 선수들은 또 다른 재물과 경쟁구도를 형성하며 끊임없는 서바이벌 게임을 벌인다. 고영민이 좋지 않을 때 오재원과 김재호가 그 자리를 채우고, 이종욱이나 김현수가 헤맬 때 정수빈이 빈 자리를 메워나간다.
처음 어렵게 찾아온 기회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듯, 그들은 자신의 자리를 지켜내기 위해 또 한번 피와 땀을 쏟아 붓는 과정을 치러내고 있다. 그러고 보면 새로운 얼굴들이 나타나는 것만이 화수분 야구의 전부는 아닌 듯 싶다. 그들끼리 서로 얽혀 시너지 효과를 분출해 내는 것이 어쩌면 두산 화수분 야구의 진정한 힘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비록 우승은 아니었을지라도 두산을 응원하는 팬들에게 재미와 많은 감동을 선사했던 2010 플레이오프 내내 두산 덕아웃 한 켠에서 어린 선수 한 사람, 한 사람을 붙들고 상황에 따라 뭔가 도움이 될 만한 조언을 끊임없이 던져주던 49세의 타격 코치가 있었다.
1982년 무명이었지만 약관 19세의 어린 나이로 OB 베어스의 1루를 완벽하게 책임졌던 타조 신경식 코치. 삼성과의 한국시리즈 6차전 9회말 2사에서 당시 유격수 유지훤의 송구를 받아내 우승이 결정지어 지는 순간, 마운드에서 하늘을 향해 두 팔을 뻗어 올린 박철순을 향해 힘차게 달려갔던 그가 지금 와 생각하면 두산 화수분 야구의 발원지였다.
윤병웅 KBO 기록위원장
<사진>이두환의 타격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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