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 텍사스 레인저스가 맞붙은 2010 메이저리그 월드시리즈는 역대 최악에 가까운 시청률을 기록하면서 샌프란시스코의 4승1패 챔프 등극으로 막을 내렸다.
메이저리그의 살아 있는 전설인 놀란 라이언 텍사스 구단 대표는 경기 종료 후 며칠이 채 지나지 않은 11월5일, 월드시리즈에서 겨우 1승 밖에 하지 못한 론 워싱턴 감독과의 2년 재계약을 발표했다. 감독에 대한 구단과 팬들의 전폭적인 신뢰를 표현하면서 한번 더 기회를 준 것이다.
텍사스의 월드시리즈 진출은 구단 사상 처음이었다. 텍사스는 톰 힉스 구단주 시절 월드시리즈 우승을 위해 2000년 12월 알렉스 로드리게스와 10년간 총액 2억5200만 달러라는 엄청난 조건에 계약을 맺었다. 그리고 2001시즌 후에는 LA 다저스에서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얻은 당시 FA 투수 랭킹 1위였던 박찬호를 5년간 6500만 달러에 영입했다.

이로써 투, 타 양면에서 최고의 선수들로 전력을 보강했으나 박찬호가 첫 해 햄스트링과 허리 부상 등으로 부진, 계획에 차질이 빚어졌다. 결국 알렉스 로드리게스도 뉴욕 양키스로 옮겨 가게 됐다.
톰 힉스 구단주는 알링턴 구장을 찾을 때 헬리콥터를 타고 온다. 정장 양복에 카우보이 부츠를 신고 다니는 특이한 스타일이다. 당시 톰 힉스 구단주의 기대를 한 몸에 받은 박찬호는 “야구만 잘 하면 무엇이든 다 해줄 것 같다. 너무 극진하게 대해주니 어떨 때는 부담스럽다”고 밝힌 바 있다. 입단 계약을 공식 발표하기 위해 박찬호가 에이전트 스캇 보라스와 LA에서 텍사스로 이동했을 때 전용기를 내주었고 계약식에는 알렉스 로드리게스와 라파엘 팔 메이로가 이례적으로 배석하기도 했다. 그러나 톰 힉스 구단주의 ‘돈’으로는 월드시리즈를 살 수는 없었다.
텍사스는 2006시즌 후 구단 사상 처음으로 흑인 감독을 영입하는 ‘이변(?)’을 일으켰다. 1977년 LA 다저스에서 메이저리그에 데뷔해 휴스턴에서 1989시즌을 마치고 은퇴한 론 워싱턴과 감독 계약을 맺은 것이다.
론 워싱턴은 뉴욕 메츠 싱글 A팀 감독을 2년 했던 것을 제외하면 오클랜드에서 11년 동안 작전 주루 코치 생활을 한 것이 전부였다. 메이저리그는 물론 트리플A 감독 경험도 없었다. 론 워싱턴 감독에게는 2년 계약에 2년 옵션까지 모두 4년의 기회가 주어졌고 마침내 마지막 해인 금년에 페넌트레이스에서 90승을 거두며 포스트시즌에 진출해 아메리칸리그 챔피언십에서 뉴욕 양키스까지 제압하고 월드시리즈에 진출했다.
그 과정을 유심히 살펴보면 우리 프로야구 롯데와 비슷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야구의 도시 부산을 연고로 하고 있는 롯데는 2003년 말 두산에서 FA가 된 정수근과 6년간 40억6000만 원에 계약했다. 총액을 떠나 당시 FA 사상 최장기 계약이었다. 그리고 투수 이상목을 4년 22억 원에 잡았다. 텍사스가 알렉스 로드리게스와 박찬호를 영입해 투타 전력을 보강한 것과 같다. 그러나 롯데는 이후에도 포스트시즌과 거리가 멀었다.

롯데가 돌파구를 찾은 것은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한국프로야구 역사상 첫 외국인 감독인 제리 로이스터(58)와의 계약이었다. 신동빈 구단주가 직접 나선 것으로 알려져 있다.
로이스터 감독은 대단한 능력을 발휘했다. 야구의 기술이나 전략적인 문제를 떠나 팀 분위기를 결코 두려워하지 않는 ‘노 피어(No Fear)’로 바꾼 것이다. 계약 첫해부터 3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을 이뤘으나 모두 준플레이오프에서 탈락하고 말았다. 금년에는 두산에 2승 후 3연패를 당했다.
롯데 구단은 결국 로이스터와의 재계약을 포기했다. 준플레이이오프 진출만으로는 더 이상 만족할 수 없다는 것이다. 로이스터는 단기전에 약하다는 평가를 내렸다.
그리고 발 빠르게 양승호(50) 고려대 감독과 3년 계약을 맺고 마무리 훈련에 돌입했다. 양승호 감독의 영입은 사실 야구계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파격적인 결정임이 분명하다. 제리 로이스터 감독과 계약했던 상황과 비슷하다. 한편으로는 텍사스가 벅 쇼월터 감독을 해임하고 오클랜드 3루 코치였던 론 워싱턴을 신임 사령탑으로 앉혔던 것과도 흡사하다.
론 워싱턴 감독은 지난 해 금지 약물 테스트에서 코카인 양성 반응으로 파문을 일으켰다. 그러나 그는 정직하게 밝히고 사과했다. 당시 기자회견에 텍사스 선수들이 배석해 감독에 대한 변함없는 지지와 신뢰를 표시했다. 이 또한 로이스터 감독과 롯데 주축 선수들의 관계와도 비슷하다.
론 워싱턴 감독은 이번 텍사스와의 재계약 발표 기자회견에서 “금년 월드시리즈에서 우승을 하지 못해 실망이 컸지만 내년 시즌 우리 목표는 더 확실해졌다”고 소감을 밝혔다. 롯데 신임 양승호 감독의 목표 역시 ‘한국시리즈 진출과 우승’이다.
어쨌든 3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을 이루고도 제리 로이스터 감독은 재계약에 실패하고 타의에 의해 팀을 떠나게 됐다. 그의 팬들이 재계약을 지지하는 신문 광고를 내기도 했고 본인도 한번 더 기회를 갖게 되기를 공개적으로 희망했으나 불발됐다. 물론 팀 성적 때문이다. 롯데가 두산과의 준 플레이오프만 이겼으면 재계약이 유력했다. 구단은 로이스터의 한계로 평가한 것이다.
그러나 로이스터는 떠났지만 그를 지지했던 선수들은 남아 새로운 감독을 맞이했다. 선수들은 팀 성적 부진에 대해 책임을 지지는 않는다. 1군도 수석코치 윤학길, 투수코치 윤형배로 바뀌었다. 로이스터 시절의 박영태 수석코치, 양상문 투수코치도 물러났다. 이를 본 로이스터 감독의 심정이 어땠을지 궁금하다.
양승호 감독의 롯데가 내년 시즌 어떤 모습을 보여줄 것인가는 마무리 훈련과 스프링캠프를 지켜 봐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3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 팀을 맡게 된 양승호 감독의 부담도 엄청날 것이 분명하다. 감독 스스로 부담을 떨쳐 버리는 것이 첫 번째 과제이다.
/보경S&C㈜ 대표, 전 일간스포츠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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