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한국시리즈 챔피언 SK 와이번스가 대만 프로야구 슝디 엘리펀츠와 가진 한(韓)- 대만(臺灣) 클럽 챔피언십 1차전에서 9회말 2-3으로 역전패한 지난 4일 밤이었다.
SK 김성근 감독이 한국에서 동행한 취재와 사진 기자들을 타이중 시내에 있는 한국 음식점, 삼원가든으로 초대해 늦은 저녁 식사를 함께 했다고 한다. 필자도 10월 말 타이중에서 열린 대륙간컵 기간 중 삼원가든을 몇 번 가본적이 있는데 보통 저녁 9시면 문을 닫는다. 아마도 SK 측에서 특별히 부탁해 예약을 한 모양이었다. SK가 1승1패로 2연전을 마치고 귀국한 후 당시 자리에 있었던 모 관계자로부터 뜻 밖의 얘기를 들었다.

그는 “오랜 기간 김성근 감독을 취재해봤지만 그렇게 고뇌(苦惱)하는 모습을 본 것은 처음이다. 보통 김성근 감독이라고 하면 무조건 야구만 떠오른다. 그러나 그날 밤은 아니었다. 쉽게 생각하면 그 날 경기에서 2-1로 이기다가 9회 말 끝내기 안타를 맞고 져서 그런 것 아닌가라고 추측할 수 있지만 그날은 확실히 달랐다. 무엇인가 인간적인 고민과 근심이 있는 것이 느껴졌다”고 분위기를 설명했다.
그 자리에서 김성근 감독은 늦은 밤까지 조금씩 맥주를 마시면서 이런 저런 생각들을 얘기한 모양이다. 이를 보고 들은 기자들 가운데는 “김성근 감독은 맥주 한두 잔 이상 안 하시는 줄 알았다. 그런데 꽤 많이 드셔서 놀랐다”고 한 기자들도 있었다.
김성근 감독은 ‘일구이무(一球二無)’를 좌우명으로 삼고 있다. 공 하나에 두 번째가 없다는 말이다. 따라서 인생에도 두 번째가 없으니 언제나 혼을 다해야 한다고 했다. 그런 김성근 감독이 슝디 엘리펀츠와의 2차전을 앞두고 허허(虛虛)로운 표정으로 계속 맥주잔을 기울였으니 주위에서 이상하게 생각했을 만도 했다.
김성근 감독을 취재해본 기자들은 늘 야구 얘기만 들었다. 경기 후에 김성근 감독과 대화를 하다 보면 야구로 시작해 야구로 끝난다. 그의 경기 복기와 분석은 그 자체가 경기를 재생해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는 것과 같다.
그러나 그 날 밤은 경기 복기가 아니라 이런 저런 세상사 얘기들이 오갔다고 한다. 어쩌면 계기가 있었다. 이날 경기 전 점심 식사 후 취재를 위해 인터컨티넨탈 스타디움으로 이동하는 사진 기자들을 태운 택시 가운데 한 대가 교통 사고가 났다. 사고를 당한 사진 기자들은 곧 바로 병원으로 가 엑스레이 촬영을 하는 등 소동이 벌어졌다. 다행히 다친 기자들은 없었다는 것이다. 김성근 감독은 사진 기자들의 교통 사고 소식을 듣고 많이 놀라고 큰 걱정을 했다고 한다.
관계자들에 따르면 김성근 감독은 SK의 우승을 위해 헌신적으로 뒷바라지한 모든 구단 프런트에 고마워하고 있는데 느닷없이 민경삼 단장이 우승 후 교통 사고로 수술을 받고 입원을 하고 있는 것에 대해 무엇보다 가슴 아파하면서 미안함과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해 왔다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SK의 대만과의 클럽 챔피언십 시리즈 취재에 동행한 사진 기자들 일부가 또 교통사고를 당했다고 하니 김성근 감독이 더 놀랐음이 분명하다. 민경삼 단장은 다리를 다쳤는데 다행히 2개월 정도 후면 재활을 시작해 정상적으로 회복할 수 있다. 그러나 SK의 대만 원정과 일본 챔피언십에 동행하지 못했다.
SK는 이번 한국 시리즈 우승 후 내우외환에 시달리고 있다. 한국시리즈 중 감기 몸살 증세를 보이던 이만수 수석코치가 대구에서 삼성과의 4차전 우승 확정 직후 경북대 병원 응급실로 실려가는 일이 벌어졌다. 정밀진단 결과 내 혈관 수축이라고 하는데 큰 이상은 없다고 했다. 이만수 코치는 우승 시상식과 각종 행사에 참석하지 못하고 병원에 입원해 있었다.
‘호사다마(好事多魔)’인지 또 나쁜 일이 이어졌다. 광저우 아시안게임 국가대표인 에이스 김광현이 갑작스런 안면 근육 마비로 대표팀에서 빠져 치료를 받고 있다. 예기치 못한 민경삼 단장과 사진 기자들의 교통사고까지 발생했다.
이런 혼란 속에 SK는 대만과의 챔피언십 시리즈를 1승1패로 마치고 돌아와 13일 일본 도쿄돔에서 일본시리즈 챔피언 지바롯데 마린스와 단판 승부를 벌여 0-3으로 완패했다. 겨우 2안타를 친 영봉 패에 3회부터 9회까지 7이닝은 단 한 명도 출루조차 못하고 말았다.
김성근 감독으로서는 ‘속수무책(束手無策)’이었다. 대만 슝디 엘리펀츠와의 2차전에서 7이닝을 호투한 일본 용병 카도쿠라를 지바롯데전에 선발 등판시켰으나 일본 챔피언 지바롯데는 슝디 엘리펀츠와 확실히 달랐다. 2년 만에 고국 무대에 선 카도쿠라는 2와 2/3이닝 동안 7피안타, 2실점하고 마운드를 전병두에게 넘겼다.
경기 전체 흐름을 살펴보면 김성근 감독이 할 수 있었던 것은 1회초 1번타자 박재상이 좌전안타를 치고 출루하자 2번 임훈에게 보내기 번트를 시킨 것과 카도쿠라를 전병두로 조기 교체하고 불펜을 가동해 버텨낸 것뿐이다.
광저우 아시안 게임 대표 차출로 SK는 ‘이’가 빠졌고 반면 지바롯데는 올시즌 후 메이저리그 진출을 선언해 현재 LA 다저스와 월드시리즈 우승팀,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가 포스팅시스템에서 맞붙을 예정인 니시오카 쓰요시(26)가 1번 타자에 포진했다. 그리고 역시 메이저리그에 도전하는 마무리 고바야시 히로유키(32)까지 9회 마운드에 올랐다.
니시오카는 올해 206안타를 치며 퍼시픽리그 타격왕을 차지했고 유격수를 맡고 있다. 206 안타는 메이저리그에 진출해 시애틀에서 올해까지 10년 연속 골드글러브 상을 수상한 이치로가 1994년 일본에서 210안타를 친 후 한 시즌 최다 안타 기록이다. 일본 프로야구에는 내야수까지 메이저리그에서 탐 내는 선수들이 있다는 것이 어쩌면 한국 프로야구와의 객관적인 수준 차이 같다.
SK가 베스트로 나섰어도 지바롯데는 쉽지 않은 상대였다. 김성근 감독도 해볼 도리가 없었다. “SK 감독을 맡은 이후 4년 동안 3번이나 도쿄 돔에서 져 너무 아쉽다”며 새롭게 도전에 나선 김성근 감독이 겨울 동안 어떻게 전체 분위기를 수습하고 팀을 안정시켜 나갈지 주목된다.
/보경S&C㈜ 대표, 전 일간스포츠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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