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체육관광부가 지난 11월29일 ‘여자 축구 활성화 지원 종합 계획을 발표하면서 2013년까지 모두 185억 원을 지원하겠다고 밝혀 스포츠계는 물론 전 국민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정확한 내용을 확인해보니 정부가 185억 원을 새 예산으로 편성해 투자하는 것은 아니라 일부를 맡고 대한축구협회가 스포츠 토토 등에서 나오는 육성 기금 중 상당 부분을 여자 축구 발전을 위해 쓰기로 했다는 것이다.
여자 축구는 올해 20세 이하(U-20) 월드컵 3위, 17세 이하(U-17) 월드컵 우승에 이어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도 중국을 누르고 동메달을 획득했다. 전문가들은 한국 여자 축구의 열악한 상황을 감안할 때 ‘기적’에 가까운 성적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특히 간판 스타인 지소연은 ‘지메시’라는 별명을 얻으며 TV 광고에도 출연 중이다. 1949년 서울운동장에서 신문사 주최로 열린 전국여자체육대회에서 공식적인 첫 선을 보인 우리 여자 축구는 51년 만에 역대 최고의 성적을 올리며 국민적인 사랑을 받게 됐다.
현재 우리나라 여자 축구는 초, 중, 고, 대학 57개 팀을 포함 실업까지 63개 팀에 1400여명의 선수들이 뛰고 있다. 일본의 경우 1224개의 여자 축구팀과 2만7000여명의 선수들이 활동하고 있음을 감안하면 한국 여자 축구가 국제 대회에서 거둔 성적은 정말 대단한 것임이 분명하다.

이에 축구계는 물론 정부까지 나서게 된 것이다. 대한축구협회와 한국프로축구연맹은 매년 10억 원을 여자 축구계에 지원하기로 했고 학교 축구 팀을 2013년까지 45개팀을 더 창단해 모두 102개교까지 늘릴 계획이다. 실업팀도 국민체육진흥공단과 스포츠 토토가 각각 1개 팀을 창단하기로 해 6개에서 8개가 된다.
이로써 한국 여자 축구는 전폭적인 지원을 바탕으로 2012년 런던월드컵 4강을 목표로 전력 투구를 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됐다.
그렇다면 한국 여자 야구의 현실은 어떨까? 여자 축구 지원 계획이 발표된 다음 날인 11월30일 한국야구발전연구원(원장 김종 한양대 교수) 회의가 있었다.
한국여자야구연맹(WBAK. 회장 전여옥)의 부회장인 이광환 베이스볼 아카데미 원장 겸 서울대 감독이 이 자리에 참석했고 자연스럽게 여자 축구와 대비되는 한국 여자 야구의 초라한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이 터져 나왔다.
이광환 원장은 “여자 야구에 대한 지원도 절실한 상태이다. 전여옥 회장님이 열심히 뛰어 다니고 임원들이 개인 주머니를 털어 힘겹게 연맹을 끌어 가고 있다. 여자 야구도 축구처럼 정부 차원에서 지원을 해주면 빨리 자리를 잡는 것이 가능해진다”며 “필요하면 정부와 관계 부처의 지원을 구하는 서명 운동이라도 벌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야구발전연구원은 내년 초 ‘한국 여자야구 발전 방향’을 놓고 세미나를 열어 널리 관심을 이끌어 내기로 계획을 세웠다.
한국여자야구연맹은 2007년 3월7일 서울 올림픽 파크텔에서 창립 총회를 열고 공식 출범했다. 여자 야구의 역사는 통상적으로 6년 여 정도라고 얘기한다. 그 이유는 아직 여자야구에는 학교 팀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여자 소프트볼 팀은 있으나 여자 야구팀을 운영하는 학교는 없다. 여자 야구는 투수 안향미가 남자 야구에 도전하겠다고 나서 잠시 화제가 됐다.
최근에는 지난 8월 베네수엘라에서 열린 제4회 세계 여자야구선수권대회에 주성노 감독이 이끄는 대표팀이 참가하면서 관심을 모았다. 그런데 대회 초반 엉뚱한 사건이 벌어져 여자 야구가 흥미를 끌며 주목을 받게 됐다.
수도 카라카스의 군기지 구장에서 열린 홍콩-네덜란드 경기 3회말 종료 후 홍콩 대표팀 3루수 탁완이가 어디선가 날아온 9mm 권총 총알을 왼쪽 다리에 맞아 피투성이가 된 것이다. 이 사실은 ‘해외 토픽’으로 전 세계에 알려졌고 홍콩은 선수단을 철수시키는 사태가 이어졌다.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지자 한국 선수단 내에서도 돌아가자는 주장이 있었으나 다행히 대회는 안전을 보장받고 마라카이로 구장을 변경해 진행됐다. 한국 여자 야구는 남자 국가 대표팀이 이번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2번이나 누르고 금메달을 획득했던 대만에 예선에서 2-12로 패하는 등 참가 12개 팀 가운데 최하위권 성적에 그쳤다.
대표팀 주성노 감독은 “쿠바전을 예로 들겠다. 우리가 쿠바에 3회까지 8-1로 이기다가 8-21로 역전돼 6회 콜드게임 패를 당했다. 우리 투수들은 3회를 넘으면 힘이 떨어져 던지지를 못한다. 바로 이런 것이 우리 여자 야구의 전력이다”라고 설명했다. 쿠바전 선발 투수는 부산의 클럽팀인 ‘부산 올인’의 언더스로 배수영이었다.
힘이 떨어진다는 것이 도대체 무슨 말인지 궁금해 질문을 했더니 “우리 여자야구는 리틀야구나 여자 소프트볼 거리인 14m 정도에서 투구를 했다. 그런데 국제 대회는 남자와 같은 정규 거리인 18.44m가 투포수간 거리다. 이 거리에서 연습을 해본 것이 얼마 되지 않는다. 따라서 당연히 체력이 되지 않았던 것”이라고 덧붙였다.
사실상 우리 여자 야구 대표팀은 소프트볼 선수 출신으로 급조했다고 보는 것이 옳다. 구장 확보가 어려워 훈련을 충분히 하지도 못한 상태에서 ‘한국에서도 여자 야구가 발전되고 있다’는 것을 국제 무대에 알리기 위해 참가를 결정한 것이었다. 대회 경비는 여자야구연맹 전여옥 회장이 어렵게 마련해줬다고 한다.
더 심각한 문제는 여자 야구의 경우 학교 팀이 하나도 없어 엘리트 스포츠화가 불가능 하다는 것이다. 20여 개의 클럽 팀이 취미 생활을 조금 넘는 동호인 수준으로 경기를 하고 있다. 남자 야구가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 제2회 월드베이스볼 클래식 준우승, 광저우 아시안게임 금메달의 화려한 성적으로 거두고 있는 동안 여자 야구는 음지에서 뿌리도 제대로 내리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여자 야구에 대한 야구계와 정부의 관심이 절실하다.
/보경S&C㈜ 대표 이사, 전 일간스포츠 편집국장
화보로 보는 뉴스, 스마트폰으로 즐기는 ‘OSEN 포토뉴스’ ☞ 앱 다운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