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3월24일 LA 다저스타디움에서 열린 제2회 월드베이스볼 클래식(WBC) 결승전에서 한국은 일본에 3-5로 패했다. 2006년 제1회에 이어 마지막 순간에 끝내 일본 벽을 넘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제2회 WBC에서 보여준 기량을 발판으로 한화 소속이던 김태균과 이범호는 시즌 후 FA 자격을 얻은 뒤 일본 프로야구 무대에 진출하게 됐다. 김태균은 지바롯데 마린스 유니폼을 입고 시즌 중반 슬럼프에 빠지기도 했으나 첫 시즌에 소속팀을 일본시리즈 우승으로 이끌었다. 지바 롯데는 퍼시픽 리그 3위로 시작해 우승까지 하는 이변을 연출했다. 그리고 김태균은 곧바로 광저우 아시안게임 대표로 출전해 금메달을 따냈고, 화려한 결혼식을 올렸다.
반면 일본야구의 ‘영웅’ 왕정치 감독의 강력한 추천으로 소프트뱅크 호크스와 2년간 계약한 3루수 이범호(29)는 첫 시즌을 사실상 2군에서 보냈다. 시즌 후 구단의 보류선수 명단에는 포함됐는데 계약 마지막 해인 내년에도 1군에서 활약하기 어렵다는 것이 지배적인 의견이다. 한화 복귀설이 나오고는 있으나 이 또한 여러 여건 상 쉽지 않다. 12월26일에 결혼하는 이범호는 ‘빨리 내년 시즌 거취가 정해져 훈련에 몰두하고 싶다’고 답답한 마음을 밝혔다.

이런 가운데 김태균의 동료로 지 롯데의 일본시리즈 우승에 공헌한 내야수 니시오카 츠요시(26)가 포스팅 시스템을 통해 메이저리그에 진출했다. 공개 입찰 방식인 포스팅 시스템에서 미네소타 트윈스가 가장 많은 이적료 530만 달러(약 58억 원, 이하 1달러 1100원 환산)를 써내 우선 협상권을 획득한 뒤 3년간 총액 925만 달러(약 102억 원)에 입단 계약을 했다.
니시오카는 2010시즌 144경기에 출장해 3할4푼6리로 퍼시픽 리그 타격왕을 차지했다. 시즌 206안타는 1994년 오릭스 소속이던 이치로(현 시애틀 매리너스) 이후 첫 한 시즌 200안타 이상의 기록이다. 유격수와 2루수를 모두 소화할 수 있고 빠른 발까지 갖추었다.
물론 이범호와 니시오카의 기량을 객관적으로 비교하는 것은 어렵다. 다만 현재 한국과 일본, 그리고 메이저리그에서 나타나고 있는 현상만을 놓고 볼 때 한국의 타자들이 여전히 일본에 뒤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국민 타자’ 이승엽이 LA 다저스의 유혹을 뿌리치고 화려하게 일본에 진출했을 때, 그리고 추신수가 클리블랜드의 간판타자로 자리잡으면서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모두를 압도하는 타격 기술을 선 보인 것만은 예외로 봐도 좋을 것이다.
한국 타자가 일본에 뒤진다는 주장을 가장 확실하게 한 외국인 선수는 대만 출신으로 LA 다저스에서 활약하고 있는 투수 궈홍치(29)였다. 궈홍치는 이범호와 1981년 생으로 동갑이다. LA 다저스의 릴리버 궈홍치는 2006년 제 1회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을 회고하면서 '한국의 타자들은 (우승팀) 일본의 타자들과 비교할 때 한 수 아래'라고 평가했다.
그해 4월4일 LA 다저스-애틀랜타 브레이브스의 2006 시즌 개막전에 구원 투수로 등판했던 궈홍치는 경기 후 클럽하우스에서 가진 대만 케이블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WBC에서 분석해보고 또 직접 상대를 해보면서 일본 타자들이 한국 타자들보다 더 정교한 타격을 했고 뛰어났다"며 "일본 타자들에게서 삼진을 빼앗기가 매우 힘들었다"고 밝혔다. 당시 궈홍치는 WBC에서 일본전에 등판했으나 한국을 상대로 마운드에 오른 적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의견을 말해 눈길을 끌었다.
지난 9월말 대만 타이중에서 열렸던 대륙간컵 대회 한국-대만의 개막전에서 시구를 해 대만 팬들의 열렬한 박수를 받았던 궈홍츠는 광저우 아시안게임 때 대만 대표로 출전하지 않았다. 대만 출신의 해외파 가운데 두 명의 최고 투수들이 빠졌는데 일본프로야구 주니치의 에이스인 천웨인과 궈홍츠 모두 좌완이었다는 사실은 중대한 의미가 있다.
일반적인 타격 이론으로 순수하게 가정하면 궈홍츠, 천웨인이 모두 출전했다면 좌투수에 약점이 있는 좌타자 추신수가 광저우 아시안게임 야구 대만과의 2경기에서 어떤 활약을 보였을지는 미지수이다.
궈홍츠의 2006년 주장은 아직도 일리가 있는 것일까? 이범호가 처해있는 난처한 상황에서 한국의 타자들이 최고 수준의 국제 무대에서 어떤 수준으로 인정받고 있는가를 짐작해 볼 수 있다.
/보경S&C㈜ 대표, 전 일간스포츠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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