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저리그 개척의 선구자로 미국에서 한국야구를 대표했던 박찬호(38)와 한국은 물론 일본까지 아시아권에서 최고의 홈런 타자로 인정받았던 이승엽(35)이 올해 나란히 일본 프로야구 오릭스 버팔로스 유니폼을 입고 시즌을 치르게 됐다.
그런데 이를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는 변화의 후폭풍이 엉뚱하게도 한국 프로야구에 거세게 몰아칠 것이 유력해져 우려의 목소리가 커져 가고 있다. '심각한 위기'라고 표현해도 좋을 정도로 상황이 급격히 나빠져 가고 있어 한국야구위원회(KBO)와 프로야구계는 물론 전체 한국 야구 차원에서 시급하게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의 분위기는 지난 1997년 전후와 비슷하다. 박찬호가 1996시즌 구원 투수로 LA 다저스의 풀타임 메이저리거가 되면서 우리 야구 팬들의 관심이 메이저리그로 옮겨 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1997년 제5선발 자리를 확보해 당시 IMF 사태에 시름하던 국민들의 유일한 낙은 5일 마다 마운드에 올라 폭발적인 패스트볼로 삼진을 잡아내는 박찬호의 투구에 집중됐다.

1996시즌 한국 프로야구 총 관중은 449만 명이었는데 박찬호가 화려하게 떠오른 1997년은 390만 명으로 감소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박찬호의 성공으로 한국의 국가대표급 간판 투수들의 메이저리그 행이 줄을 이었다. 김병현, 서재응, 김선우 등이 한국프로야구를 거치지 않고 메이저리그로 직행했다. 그 여파로 1998시즌 관중은 1997년 390만 명에서 무려 126만 명이 급감한 264만 명으로 추락했고 이후 1999시즌 단 한차례 322만 명을 제외하면 2000년부터 2004년까지 줄곧 200만 명 대에 머물렀다. 한국의 유력 방송사는 메이저리그 중계권으로 연간 100억 원 안팎을 지불했다. 그래서 박찬호와 메이저리그 진출 한국 선수들의 연봉은 한국에서 지불하고 있는 것이라는 얘기까지 나왔다.
박찬호와 이승엽을 영입한 오릭스 버팔로스는 한국의 케이블인 <SBS 비즈니스 네트워크>와 홈경기 72게임의 중계권 계약을 한 것으로 1월28일 보도됐다. SBS는 이승엽이 요미우리 4번으로 활약할 당시 요미우리 경기를 중계하기도 했다.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한 때 메이저리그 정상급 마무리 투수로 애리조나 시절 월드시리즈 마운드에 섰던 김병현이 일본프로야구 라쿠텐 이글스에 입단했다. 주니치 감독 시절 팀의 마무리 투수로 선동렬 전 삼성 라이온즈 감독과 함께 했던 라쿠텐의 호시노 센이치 감독은 김병현의 재기 가능성에 대해 그 누구보다 높이 평가하고 있다.
김태균이 활약하고 있는 지바롯데 마린스도 중계권 계약을 추진 중이고, 총액 약 190억 여원에 야쿠르트와 3년간 재계약한 임창용도 일본프로야구 구원왕 도전을 선언한 상태이다. 일본 프로야구가 단숨에 한국 야구팬들의 큰 관심사로 떠올랐다.
이렇게 급격한 변화가 휘몰아치는 가운데 한국 야구계는 제9구단 논의를 지속하고 있다. 신생 구단 창단 문제는 여러 가지 신중하게 고려할 부분이 있고 구단 간 이해 관계도 걸려 있어 쉽게 결정할 사안은 분명히 아니다. 그러나 순수한 야구 팬들의 시각에서는 엔씨 소프트가 공개적으로 창단 신청서를 내고 창원시가 새 구장 신축 등의 전폭 지원까지 약속한 마당에 왜 빨리 진행되지 않고 있는지가 납득이 되지 않고 심각하게는 한국 프로야구계에 대해 실망하게 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다시 돌아보면 오랜 기간 침체됐던 한국 프로야구는 김인식 감독이 국가대표 사령탑을 맡아 4강 신화를 이룩한 2006년 제1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다음 해인 2007년 총 관중 수 410만 명을 기록했고 2008년 525만 명, 2009년 592만5285만 명, 그리고 지난 해 592만8626명으로 역사상 최다 기록을 작성했다.
그리고 올시즌 대망의 600만명 돌파 기대를 부풀리고 있다. 한국 프로야구가 르네상스를 구가하게 된 것은 2008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감독 김경문), 2009 월드베이스볼 클래식 준우승(감독 김인식) 등의 국제적인 성적과 KBO, 8개 구단, 전 야구인들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메이저리그에 진출했던 선수들이 속속 한국프로야구로 복귀하고 박찬호도 부상에 이은 슬럼프로 메이저리그에 대한 팬들의 관심이 다시 한국프로야구로 돌아왔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와 같은 과거를 고려하면 우리 팬들의 관심이 올 시즌 일본 프로야구로 옮겨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박찬호가 일본 프로야구 선발 로테이션이라면 일주일에 한번 정도 선발로 마운드에 오르고 이승엽은 매 경기 중심 타선에 포진하게 된다. 여기에 김병현 임창용이 마무리로, 김태균은 지바롯데의 간판 타자로 나선다. 일본이 우리와 동 시간대이기 때문에 야구 관련 스포츠 뉴스의 상당 부분이 일본 소식으로 채워질 것이 분명하다.
한국의 지상파 3사인 KBS, MBC, SBS가 올해부터 4년간 한국프로야구 중계권을 확보했다. SBS는 스포츠 케이블에서는 한국 프로야구를 중계하고 다른 채널인 SBS 비즈니스 채널에서 오릭스 경기를 맡는다.
그런데 조선, 중앙, 동아일보와 매일경제가 종합 편성 채널을 확보해 방송시장에 뛰어들었다. 이들 4사가 본격적으로 방송을 시작하는 금년 후반기부터 라쿠텐, 지바롯데, 야쿠르트 등 한국 선수들이 소속된 일본 프로야구 팀들의 중계권은 그 가치가 급등하면서 우리 안방으로 들어올 전망이다.
한국프로야구에서는 세계 프로야구사에서는 유례를 찾기 어려운 7관왕을 차지한 롯데 이대호를 놓고 연봉 조정을 벌여 선수가 요구한 7억 원과 구단 제시 6억3000만 원 사이에서 구단 손을 들어줬다. 어느 쪽 주장이 옳고 그르냐를 떠나 7000만원의 차이를 놓고 선수 본인의 상처는 물론 롯데 팬들의 안타까움도 커졌다.
이제 기회가 오면 이대호도 일본 진출을 추진할 것이 확실해 보인다. 롯데 구단은 만년 하위 팀을 맡아서 3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을 성공시킨 첫 외국인 감독 로이스터를 보내고 초보인 양승호 감독에게 사령탑을 맡겼다. 따라서 선수들의 사기를 위한 투자에 더 적극적일 것으로 예상됐는데 그렇지 못했다.
한화의 경우 연고권을 가진 박찬호를 잡지 못하고 이범호마저 KIA에 빼앗겼다. 넥센은 구단의 미래라는 투수 고원준을 지난 시즌 후 롯데로 트레이드 했다. 겨울 동안 약 팀들의 전력 보강은 이뤄지지 않아 올 시즌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한 전력 차를 드러낼 가능성이 있다. 이는 팬들의 외면으로 이어진다. 로이스터는 떠나고 한국야구를 상징하는 스타 선동렬 감독도 사령탑에서 물러났다.
메이저리그에서는 추신수가 클리블랜드의 간판으로 확고하게 자리잡고 매일 중심타선에 나선다. 해외파들에 대한 관심도 제고는, 상대적으로 국내야구의 위축을 불러올 개연성이 있다. 출범 30주년을 맞는 금년 한국프로야구는 총 관중 600만 명을 시원하게 돌파할 수 있는 ‘마케팅 툴(marketing tool)’이 없어 보여 우려가 크다. 심각한 위기 상황이다.
/스타뉴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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