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병웅의 야구 기록과 기록 사이]기록의 서자(庶子), 비공식 기록들
OSEN 홍윤표 기자
발행 2011.03.21 07: 30

지난 3월 13일 대전에서 치러진 한화와 LG의 시범경기에서는 이날 선발로 등판했던 레다메스 리즈(27, LG)의 한국프로야구 최고구속 기록경신 소식이 각 언론매체의 헤드라인을 장식한 일이 있었다.
1회초 한화의 톱 타자 강동우를 상대로 던진 2구째의 구속이 전광판에 159km로 표출되면서 보는 사람의 탄성을 자아낸 것이었는데, 양팀 전력분석 요원이 갖고 있는 스피드 건에는 이보다 더 높은 160km로 나타났다고 해서 더욱 화제가 된 일이었다.
종전 최고구속 기록은 2003년과 2004년, SK의 엄정욱 투수가 인천 문학구장에서 두 번에 걸쳐 기록한 158km가 최고기록.

그러나 리즈가 13일 수립한 시속 159km 또는 160km라는 투구 최고구속 기록은 그저 참고기록일 뿐 공식적인 기록으로는 인정받을 수 없었다. 그 이유는 스피드 건 기계 자체가 갖고 있는 물리적 측량치의 오차범위 때문이다. 
구단마다 사용하는 스피드 건 종류가 각각 다르고, 같은 기계라 하더라도 구장별 환경에 따라 또는 설치 위치와 각도에 따라 약간씩 다른 결과가 나타나는 기계적 특성상, 그 기록 결과를 그대로 믿고 공식화하기에는 현실적으로 다소 무리가 있는 것이다.
야구기록에는 이처럼 새로운 기록이면서도 공식적으로 인증을 받지 못하는 기록들이 여러 형태로 존재한다. 일명 비공인기록, 비공식기록으로 불리는 기록들이다. 의미 있어 보이는 일정 기록들이 공인 받지 못하고 비공식 기록범주에 머무르게 되는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첫째는 최고구속을 작성한 리즈의 경우처럼 기록을 재는 측량기구가 매번 일정하고 동일한 결과를 나타내지 못하거나, 환경에 의해 측량기구의 결과가 달라진다는 불신(?)의 벽에 부딪쳤을 경우다.
육상 종목의 100미터 달리기에서 바람이 초속 2.0m를 초과하면 신기록을 세워도 공식기록으로 인정을 받지 못하는 것도 그러한 까닭이다.
과거 2005년 올스타전(인천 문학구장) 막간 행사로 마련된 야수들의 투구스피드 측정 이벤트에서는 3루수 정성훈(당시 현대)이 152km를 기록해 1위를 차지했는데, 육안에 의한 비교나 다른 야수들의 투구스피드를 참고로 했을 때 조금 과하다 싶게 나온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불러일으킨 것도 따지고 보면 스피드 건 불신의 대표적 사례라 하겠다. 
여기에 여타 구장보다 인천 문학구장의 스피드 건 측정치가 조금 더 높게 나타나는 일이 잦다는 야구계의 중론도 기록의 신뢰성에서는 마이너스 요소.
둘째는 각 나라나 리그에서 공식적으로 집계하는 항목에 들어가지 않는 기록들이 비공식 기록에 속한다. 지난해 류현진이 메이저리그의 밥 깁슨이 보유하고 있던 26경기 연속 QS(1967~1968년) 기록을 넘어 29경기 연속 QS(2009~2010년)와 단일시즌 23경기 연속 QS라는 양질의 세계신기록을 수립했지만, 9경기 연속홈런을 날리며 역시 세계신기록을 작성한 이대호(롯데)와 달리 공식적인 시상과 기록 대상으로 인정받지 못한 이유는 선발투수의 역량을 재는 QS라는 집계항목이 공식적으로 추출되고 관리되는 기록항목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셋째는 과거 비교기록 자체가 아예 존재하지 않는 관계로 가치판단이 어려운 경우이다. 삼성 라이온즈가 지난해 세운 5회까지 리드 시 53경기 연속 승리기록도 같은 조건에서 이뤄진 과거의 기록들을 집계하지 않았던 관계로 추정만 가능할 뿐, 공식적으로는 신기록 여부를 가려내기가 어렵기 때문에 비공식적인 범주에 담아 참고기록으로 관리되고 있다.
넷째는 기록의 완성에 필요한 최저 기본 단위를 충족하지 못한 관계로 비공식기록으로 처리되는 경우다. 지금까지 한국프로야구사에 노히트노런의 대기록이 작성된 것은 모두 10차례. 그런데 11번째 줄에 별표(*)를 달고 늘 빠지지 않고 등재되는 선수가 한 명 있는데, 롯데 박동희다. 박동희는 1993년 5월 13일 쌍방울전(사직)에서 5회까지 노히트노런 기록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우천으로 경기가 5회 강우콜드게임으로 끝나는 바람에 미완성의 비공식 노히트노런 기록 작성자로 역사에 남아있다. 
야구의 기록이란 경기에서 일어나는 선수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수치화해 팀별, 개인별 기량과 역량을 평가하고, 막연한 주관적 짐작이 아닌 객관적인 비교를 위한 평가의 척도로써 없어서는 안될 승부 못지 않은 야구의 또 다른 중심이다. 
하지만 리그 공식기록들만으로는 채워지지 못하는 부분과 좀더 합리적이고 세분화된 평가자료의 시대적 필요성 때문에 재야의 비공식기록들은 해마다 하나 둘 늘어가고 있는 추세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생소하기 짝이 없던 WHIP(투수의 이닝당 출루허용률), OPS(출루율+장타율), RC(득점창출력) 등과 같은 통계자료의 등장도 결국은 그러한 맥락에서 생성된 것으로 역시 비공식기록들이다. 야구의 통계가 갖는 맹점을 커버하기 위해 끊임없이 시도되는 다각도의 야구기록 수량화 작업을 한 마디로 대변한다고 볼 수 있는 세이버메트릭스(Sabermetrics)도 결국 비공식기록들의 가치를 극대화시키는데 성공했기 때문에 오늘날 그 존재감을 인정받고 있는 것이다.
상을 수여 받고 공로를 만인이 알아주는 공식기록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팬들의 큰 관심을 끌기 힘든 비공식기록들이 기록성격상 홀대 받는 처지를 벗어나기엔 쉽지 않겠지만, 재미있고 풍성한 야구를 만드는데 있어 없어서는 안될 요소이기에 그 존재가치는 공식기록에 견주어 모자람이 없다 하겠다.
윤병웅 KBO 기록위원장 
<사진>LG 트윈스의 새 외국인 선수 리즈의 투구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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