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규섭의 스포츠 손자병법] 진정한 서포터스는 영욕을 함께 한다
OSEN 최규섭 기자
발행 2011.04.05 09: 04

 “도란 백성으로 하여금 위와 더불어 한뜻이 되게 하여, 함께 죽고 함께 살며 위험을 두려워하지 않게 하는 것이다(道者 令民與上同意 可與之死 可與之生 而不畏危也).”(孫子兵法 第一 始計篇)
 
“너는 회계의 치욕(會稽之恥)을 잊었느냐?”

 
월왕 구천은 오늘도 스스로에게 되물었다. 좀처럼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잠자리 옆에 매단 쓸개를 핥았다. 쓰디썼다. 20년이 흘렀지만 변함없는 쓴맛이었다. BC 494년, 회계산에서 겪었던 수치와 모욕의 망령 때문이런가? “아, 정녕 뇌리에서 씻을 수 없는 망령이란 말이냐!” 절로 새어나오는 탄식이었다.
마침내 구천은 군사를 다시 일으켰다. 건곤일척의 대회전을 앞두고 구천은 심기를 가다듬었다. 한 장수가 술을 한 병 올렸다. 승리를 기원하는 헌수(獻酬)였다. 구천은 그 술을 냇물에 쏟았다. 모두가 깜짝 놀랐다.
 
그러나 구천은 의연했다. “<황석공 삼략(黃石公 三略)> ‘상략’에 이런 말이 있다. 병사들의 우물이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장수가 목마르다고 해서야 되겠는가? 이를 ‘장수의 예’라고 한다.”
냇물에 술 한 병, 물론 술맛이 제대로 남아 있을 리가 없다. 구천은 그 물을 모든 장수와 병사들과 함께 기꺼이, 또한 맛있게 나눠 마셨다. 군사들은 왕이 자기들과 기쁨과 괴로움을 함께한다(同甘共苦)는 데 감격, 몸들을 내던지며 투지를 불살랐다.
 
장수의 예를 갈고 닦은 구천과 사기충천한 군사들이 어우러졌으니 그 기세는 욱일승천이었다. 오(吳)는 스러졌다. 구천은 천하의 패자(覇者)가 되며 역사의 한쪽을 장식했다. 반면 망국의 길을 걸은 오왕 부차는 초라하게 역사에서 사라졌다.
 
손자는 승부를 미리 알 수 있는(知勝) 방법으로 다섯 가지(道ㆍ天ㆍ地ㆍ將ㆍ法)를 들고, 그 가운데 하나로 상하가 한마음을 이뤄야 함(道)을 들었다. “상하가 하고자 하는 것이 같으면 이긴다(上下同欲者勝)”(孫子兵法 第三 謨攻篇)고 갈파했다. 태공망이 “천하의 이익을 함께 나누려는 자는 천하를 얻고, 독차지하려는 자는 천하를 잃는다”(六韜 文韜 文師)라고 한 말도 같은 맥락이다.
“요즘 성적이 좋지 않아 얼마나 올지….” 한웅수 FC서울 단장은 말끝을 흐렸다. 전북전(4월 2일․ 서울월드컵경기장)을 앞두고서다. ‘이런 때일수록 서포터스가 좀 더 힘을 내줘야 할 텐데’라는 빛이 엿보였다.
 
서울에 3월은 잔인한 한 달이었다. 정규리그서 1무 2패, 승리의 단맛을 느끼지 못했다. 2010시즌 챔프의 풍모를 찾을 수 없는 초라한 성적이다. 고작 1득점(6실점), 그것도 상대의 자책골(대전전․3월 12일․대전 월드컵경기장)이었다.
 
한 단장만의 갈급한 심정이었나 보다. 이날 서울 서포터스 수는 3000명이 채 되지 않아 보였다. 지난해 잘나가던 시절 서포터스 규모의 절반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서울은 2010시즌 최다 관중 기록을 세웠다. 18경기(정규리그 14․리그컵 4) 48만 9638명, K리그 사상 최소 경기 최다 관중의 금자탑이었다. 물론 정규리그 평균 관중(3만 849명)도 최고 기록이었다.
 
이날 전북전 관중 수는 2만 7406명이었다. 지난 시즌 평균 관중보다 11.1% 준 수치다. 그러나 서포터스 감소율에 비하면 매우 양호했다.
 
서울은 빅카드로 꼽혔던 전북전에서 개가를 불렀다(3-1승). “황무지 같은 대지에 싹을 틔워야 하는 4월”(T S 엘리엇)의 서곡을 힘차게 연주했다. 부활의 날갯짓이 돋보인 생명의 환희를 노래했다.
 
누가 기쁨을 함께 했는가? “갈 곳이 없으면 단결이 굳어진다(無所往則固)”(孫子兵法 第十一 九地篇)고 했다. 황보관 서울 감독을 비롯한 선수단은 그랬다. 경기 후 “선수들이 맹수처럼 그라운드를 누볐다”는 황보 감독의 말에서도 그 실체를 쉽게 엿볼 수 있었다. 그렇지만 서울 서포터스는 과연 이 말의 묘체를 느낄 수 있을는지.
 
“하나같이 함이 군대를 다스리는 방법(若一政之道也)”(孫子兵法 第十一 九地篇)이라고 하지 않았나?  모두가 하나가 돼 모든 순간을 함께 할 때, 위기와 고난 앞에서도 서로가 서로를 향한 믿음과 사랑을 저버리지 않는다. 역발산기개세(力拔山氣蓋世)를 뽐내던 초패왕 항우였건만 결국은 스스로 생애를 마감했다. 백성과 하나를 이루지 못해 민심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FC서울을 그 누구보다 사랑한다고 자부하는 서포터스, ‘수호신’ 아닌가.
                                                      
전 일간스포츠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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