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규섭의 스포츠 손자병법] '전주시여, 깨어나 전북의 상승세에 앞장서라'
OSEN 최규섭 기자
발행 2011.04.22 09: 58

국도 26번 전주-군산 간 도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벚꽃 길이다. 이맘 때면 전군가도 백 리 길은 벚꽃 구름과 벚꽃 터널의 장관을 연출한다. 만발한 벚꽃을 보노라면 절로 넋을 잃는다. 4월은 이 고장 사람들에게 내린 하늘의 작은 선물이다.
 
그래서일까. 프로축구 전북 현대는 이달 안방에서 신명을 내고 있다. 홈 3연전(10일 수원․16일 광주․20일 세레소 오사카)에서 2승 1무의 신바람이다. 꽃망울을 빼어나게 맺지 못했으나(수원전 0-0무) 갈수록 흐드러지게 핀 꽃은 만개의 아름다움을 뽐냈다(광주전 6-1승, 세레소전 1-0승).

 
광주와 치른 한판은 더욱 그랬다. K리그 2011시즌 한 경기 최다골을 터뜨렸다. 주역은 이동국이었다. 절정의 솜씨(1골 3어시스트)를 떨치며 6라운드 MVP에 뽑혔다.
 
끝이 아니었다. 세레소를 맞아 활짝 다 폈다. 국제 무대라 더욱 볼 만한 만개였다. 2011 AFC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서 세레소 오사카를 1-0으로 물리쳤다. G조 1위(3승 1패) 자리를 다시 빼앗아 기쁨이 더했다. 결승골, 마지막 한 점(畫龍點睛)은 역시 이동국이 찍었다.
 
벚꽃과 더불어 찾아온 완연한 상승의 기운이다. 그러나 이철근 전북 단장은 마냥 즐겁지 않다. 아니, 기뻐할 수 없는지 모른다.
 
밤이 지난 21일 새벽, 전주월드컵경기장 주변을 둘러보는 그의 얼굴은 어두웠다. 마음 한구석부터 시나브로 벅적지근해졌다. 짓누르는 안타까움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이른 새벽이건만 경기장 주차장에 ‘포진’한 차들이 시선을 지배했다. 빼곡하다 할 만큼 많은 차들이다. 분명 새벽의 풍경이 아니다. 정상적 주차장이라면 이 시간에 이렇게 많은 차들로 넘쳐날 리 없다. 4400여 대를 수용할 수 있는 주차장의 위용을 찾아보기 힘들다. ‘폐차장인가’라는 의문이 일 정도다.
 
전주월드컵경기장 주차장은 주차료를 받지 않는다. 그래선지 매일 많은 차들이 진을 치고 있다. 이곳을 중간 집합지로 이용하는 나들이객들도 많다. 각자 차를 몰고 와 이곳에 주차한 뒤 한 차만으로 구경에 나서는 사람들이 심심찮게 눈에 띈다.
 
요즘 이 단장의 마음은 더욱 무겁다. 전주 지역 시내버스 공용차고지로 변모한 듯한 ‘낯선’ 상황에 주름이 는다. 지난해 말부터 다섯 달 가까이 이어지고 있는 전주 시내버스 파업의 불꽃이 엉뚱하게 이곳에 튀었다.
 
전주 시내버스 회사들은 노조원에 의한 버스 훼손을 두려워해 이곳으로 차량을 옮겨 장기 주차하고 있다. 그 탓으로 주차장 1/4 정도가 본래의 기능을 잃었다. 경기 관전 편의를 위한 시민과 팬의 주차장이 아닌, 몇몇 기업의 사설 주차장이 된 이상한 모양새가 됐다.
 
그런데도 전주시는 손을 놓고 있다. 이렇다 할 대책을 전혀 내놓지 못하고 있다. 아니, 그런 데까지 신경 쓸 힘이 어디 있겠냐고 생각하는지 모른다.
 
전북 구단은 이름에서 보듯 도민 구단이다. 전북 도민의 열망이 모아져 탄생한 구단이다. 1994년 12월 12일, ‘전북 도민에게 꿈과 희망을’ 안기기 위해 출범하지 않았는가. 전주는 전북의 얼굴이다. 전주 없이 전북을 생각하기 힘들다. 그렇다면 전북 도민 구단은 곧 전주 시민 구단이라 할 수 있다.
올 시즌 그라운드에서 전북의 경기력이 가장 빛났던 그날(16일), 스탠드는 썰렁했다. 대첩의 기쁨을 누린 팬은 고작 8455명, 수용 규모(4만 4000명)의 1/5이 채 되지 않았다.
 
왜? 당연하다. 현대 프로스포츠는 가족과 연인을 바탕으로 꽃핀다. 그들의 나들이에 차는 이제 필수다. 편안한 관전의 한 필수요소다. 더구나 대중교통에 의한 접근이 어려운 전주월드컵경기장은 더 말할 나위 없다. 이곳에 오는 시내버스 노선은 전무하다고 할 정도다. 전북 구단의 끈질긴 요청을 받아들인 시의 행정지도에 따라 연장된 한두 개 노선이 운행되는 게 전부다. 접근도 어렵고, 설사 다가갔다 할지라도 주차가 힘드니 가려는 마음이 사라짐은 인지상정이다.
 “승리하는 군대는 먼저 이기고서 전투를 추구한다(勝兵 先勝而後求戰)”(孫子兵法 第四 軍形篇)고 한다. 준비 태세를 갖추지 않고 승리를 갈구함은 무모한 도전에 지나지 않는다. 설령 단기적으로 개가를 부를지 몰라도 궁극적으로 패배의 나락에 떨어진다. 군수품이 받쳐 주지 못하는 군대는 상승(常勝)의 군병이 아니다.
 
곧 팬과 유리된 팀은 결코 정상에 오를 수 없다. 승리를 원하는 나라(전주시)라면 원활한 군수품 조달에 마땅히 많은 힘을 기울여야 한다. 이를 소홀히 할 때 먼저 싸우고서 뒤에 승리를 추구하는(先戰而後求勝), 패배하는 군대(敗兵)로 전락한다.
 “내 하루를 살아도 전북 승리와 함께.”(Green Union 1998) 팬들의 외침이 들리는지 모르겠다. 팬들은 지금 원한다, 전주시가 깨어나기를.                           
 
전 일간스포츠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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