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병웅의 야구 기록과 기록 사이]‘땅볼’ 에도 족보가 있다
OSEN 홍윤표 기자
발행 2011.05.03 12: 56

야구장 전광판에 표출되는 오늘의 기록 중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를 꼽자면 단연 ‘땅볼’이다. 10번 타석에 나와 3번만 안타를 쳐도 훌륭한 타자로 대접받는 것이 야구라 나머지 7번은 결국 아웃 된다는 얘긴데, 그 아웃 된 내용을 다시 추려보면 땅볼과 뜬공 그리고 삼진 정도로 대충 축약해 볼 수 있겠다.
그 중에서 뜬공과 삼진은 별다른 변수가 없지만 ‘땅볼’은 기록적인 해석상 겉보기보다는 상당히 복잡한 내면구조를 가지고 있는 항목이라 할 수 있다.
억지 삼아 비유하자면 신라시대에 같은 귀족이면서도 왕이 될 수 있고 없음의 신분상 거리를 두고자 구분 지으려 했던 제도인 ‘성골(聖骨)’과 ‘진골(眞骨)’의 예처럼, 야구의 땅볼은 기록상으로는 같은 땅볼일지라도 그 태생에 따라서는 대접(?)이 전혀 다르다.

땅볼을 간단히 표현하자면 공격 측 타자나 주자가 아웃 되었음을 전제로 ‘땅에 먼저 닿은 타구’ 쯤이 되겠다. 야수의 글러브에 닿기 전, 땅에 먼저 닿은 타구라는 말이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접하는 땅볼은 대개 이런 유형의 타구다.
그런데 땅에 먼저 닿지 않고 야수의 글러브나 몸에 타구가 먼저 닿았을 때에도 땅볼로 기록되는 경우가 있다. 야수가 노 바운드로 포구하려 했지만 실패했을 경우의 타구가 그렇다. 
기록상으로는 위의 두 가지 유형 모두 땅볼로 기록되고 있다. 그러나 각각의 땅볼타구에서 파생되는 후속 플레이에 있어 그 신분상(?) 차별에서 비롯되는 결과적 기록차이는 상당히 편차가 크다.
지난 4월 16일 넥센과 SK전(목동구장)서는 ‘땅볼’이 갖는 태생적, 신분적 차별이 어떤 결과적 기록차이를 만들어내는지를 아주 극명하게 보여준 상황이 2회초에 벌어졌다.
당시 SK의 박정권은 무사 만루상황에서 2루수(김민우) 오른쪽으로 직선타구를 날렸다. 넥센 2루수 김민우가 몸을 날렸지만 타구는 2루수의 글러브에 들어갔다 나오며 땅에 떨어졌고. (타구성격상 직선타구였지만 결과적으로는 땅볼이 된 상황). 2루수 김민우가 재빨리 공을 주워 유격수에게 송구해 1루주자를 포스 아웃시킨데 이어 유격수도 1루수에 공을 던져 타자주자를 아웃시키며 ‘4-6-3’의 더블플레이를 완성. 이 사이 3루주자는 홈을 밟았다.
일반적으로 타자의 땅볼타구로 더블플레이가 되고(병살타) 3루주자가 득점했다면 타자의 타점은 인정되지 않는다. 아웃카운트를 2개씩이나 희생시켜가면서 1득점 한 것은 팀에 해를 입힌 것으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날 결과적 땅볼타구로 더블플레이를 당하며 1득점을 올린 SK의 박정권에게는 의외로 타점이 주어졌다. 
이쯤 되면 병살타를 쳤는데 왜 타점이 기록되었는지에 대한 질문이 당연 따라 붙지 않을 수 없었다. 타자의 타점이 인정된 이유는 어디에 있었을까?
그 까닭은 땅볼의 신분(?) 차이에서 찾을 수 있다. 서두에서 언급했던 바와 같이 땅볼에는 성골과 진골이 있다. 처음부터 땅에 닿고 야수에게 날아간 타구는 신분상 완벽한 성골성(?) 땅볼이다. 박정권의 타구가 2루수에 닿기 전, 땅에부터 닿았다면 병살타로 기록됨과 동시에 타점도 무산된다. 
그러나 박정권의 타구는 땅에 닿기 전, 2루수 김민우가 직접 포구를 시도했고, 김민우의 글러브에 닿고 난 뒤에서야 땅에 떨어진 타구였다. 땅볼은 땅볼이지만 신분상 땅볼이 아니었는데 후천적으로 땅볼로 타구성격이 변질된 것이다.
이러한 경우 더블플레이로 연결되더라도 타자에게는 병살타의 기록이 주어지지 않으며 따라서 타점기록 역시 소멸되지 않는다. 
물론 타자는 완벽한 성골성 땅볼이든, 후천적 진골성 땅볼이든 아웃 되면 기록상 다 같은 땅볼아웃이다. 하지만 주자의 처지에서 보면 상황은 백팔십도 판이한 상황이 된다. 
타구가 처음부터 땅에 닿았다면 포스상태의 주자(밀려가는 주자)들은 무조건 다음 루로 뛰어야 한다. 그렇지만 타구가 땅에 닿지 않고 야수쪽으로 직접 날아가는 경우에는 주자들은 다음 루로 스타트를 마음 놓고 끊을 수 없다. 바로 이점에서 기록적 차이가 갈라진다.
타구가 직접 야수에게 잡히면 원래의 루로 되돌아가야 하는 주자들은 야수가 잡다 놓친 것을 확인한 뒤에야 비로소 다음 루로 스타트를 끊을 수 있다는 주루플레이의 한계와 정상참작이 타자에게도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따라서 야수가 직접 잡으려다 포구에 실패한 결과적 땅볼타구나 야수의 몸에 1차적으로 먼저 닿고 난 뒤 땅에 떨어진 결과적 땅볼타구는 이후 상황이 더블플레이나 트리플 플레이로 연결되더라도 병살타로 기록되지 않으며, 아울러 타점 등 타자의 기록에도 아무런 파장이 전달되지 않는다.
평소 하찮게 여겨온 야구의 ‘땅볼’, 그 안을 파고들면 이처럼 전혀 다른 이중의 잣대와 판이한 세계가 존재하고 있다.
 
윤병웅 KBO 기록위원장
<사진>박정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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